이건 있잖아... 고질병인가봐. 도리도리
가난한 농부가 딸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왕한테서 황토밭 한 뙈기를 얻어 농사를 시작했는데, 밭을 일구다가 금 절구 하나를 발견했다.
농부가 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절구를 왕에게 바치자 왕은 딸이 예상했던대로 절굿공이도 가져오라며 농부를 감옥에 가두었다. 농부가 딸의 말을 안 들은 것을 후회하는 한탄을 들은 왕은 농부의 딸을 시험해 보려고 “옷을 입지도 벗지도 않은 상태로 말이나 수레를 타지 말고 궁궐로 오면 아내로 삼겠다.”는 전교를 내렸다.
그러자 농부의 딸은 옷을 벗고 그물로 온몸을 칭칭 감은 뒤 당나귀 꼬리에 그물을 매달아 이끌린 채로 궁궐로 들어갔다. 왕은 그 영리함에 감탄하여 농부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왕의 잘못된 판결로 망아지를 빼앗긴 한 농부가 왕비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했다. 왕비는 자기가 알려줬다는 말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절묘한 해결책을 알려주었다. 그 해법이 농부의 것일 리 없다고 생각한 왕은 농부를 닦달해서 왕비가 개입한 사실을 알아냈다.
왕은 농부의 딸에게 자기를 속였으니 더 이상 아내가 될 수 없다며 원래 살던 오두막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다만 제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 한 가지를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왕비는 왕에게 작별의 술잔을 나누자고 청한 뒤 술에 수면제를 타 왕을 곯아떨어지게 했다. 그리고는 그를 수레에 태우고 집에 데려와 침대에 눕혔다. 잠에서 깨어난 왕이 어찌된 일인지를 묻자 농부의 딸은 “제가 가장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한 가지를 가져왔습니다.” 하고 말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하는 아내여, 당신은 내 것이고 나는 당신의 것이오.” 하고 화답했다. 왕은 그녀를 성으로 데려가 또다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림형제 민담집> 94번 이야기 <농부의 영리한 딸>의 사연이다. 그녀가 자기보다 더 똑똑하다는 사실 앞에 기분이 상해 명분을 내세워 그녀를 내보내려 한 왕의 행위는 여자 입장에서 억울하여 화내면서 떠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저 여인의 대응책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당신을 믿고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인 일이었다. 그러자 상대방이 훌쩍 돌아와 눈물로 그를 끌어안는다.(열린어린이, 2014)
따져보면 잘못은 왕비보다 왕한테 있었다. 사실 이게 바로 맨스플레인지 무엇인가. 맨스플레인의 가장 큰 문제는 여자가 모르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그녀가 알고 있는지 확인하지도 하지 않고 쓸데없이 "친절히" 알려주려 한다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왕비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상대를 감싸는 데 그것은 가부장적 위계에 따른 행위와 신분적 약자의 생존 전략이라는 해석(열린어린이, 2014)과 함께 가장 남성이 원하는 식의 해결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그들이 말하는 "현명한 여자"가 할 법한 행동이 아닐까.
그들이 원하는 건 그러니까 이런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