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영어를 배운 두 아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내가 일 때문에 뉴질랜드로 옮겨 온지 만으로 2년이 다 되어간다. 당시 첫째 아이는 만 3세에서 만 4세로 곧 넘어가는 시기였고, 둘째 아이는 두 돌도 채 안될 때였었다. 한국에서 따로 영어를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첫째 같은 경우는 유튜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Elmo (Sesame Street 프로의 일부)와 디즈니 만화를 많이 보여줬었기에 100%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영어를 듣는데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었다. 해외이사를 하고 자리 잡던 첫날, 쇼핑몰에서 필요한 물품을 이것저것 구매할 때에도 또래의 남자아이를 보고 "Hello! My name is Aaron!" 하고는 거침없이 다가가 말을 걸었던 활발한 아이였다.
유치원 생활도 걱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저귀도 18개월에 다 떼었던 빠른 발달을 자랑하던 내 아이가 타지에 와 유치원 생활을 한 첫 한 달은 매일매일 침대에 지도를 그렸다. 아이와 무슨 일인지 소통을 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도통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해외 이삿짐을 받기도 전에 출근부터 했던 지라 더 신경 써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도 아프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날 내가 넌지시 "혹시 유치원에서 괴롭히는 친구 있어?"라고 물어보았다.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여자애가 자기가 다른 친구 사귀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 친하게 지내려는 친구를 가로채간 달지.. 중간에서 방해해서 속상했다고..
그다음 날 나는 아이 유치원에 내려다 주면서 선생님을 찾았다. 상담실로 함께 들어가 아이가 요즘 계속 오줌을 싸고 있어서 스트레스가 큰 것 같고, 교우관계에 있어서 힘들어한다고. 아이가 지목한 아이의 이름도 함께 이야기하면서, 선생님께서 조금 더 신경 써 주실 것을 당부했다. 선생님 역시 모르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도 안심이 되었다. 아이도 앞으로 선생님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할 것이라고 나와 약속했다. 어떤 엄마는 나에게 엄마가 영어를 잘하니 가능할 일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엄마가 영어가 유창하던 유창하지 않던 아이의 손을 잡고 선생님에게 고충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안도감을 느끼고 의지할 곳이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우리 아이의 유치원 생활은 차츰 나아져 두어 달 즈음 지나서는 원어민 친구들도 많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한국 아이들도 몇 명 있었지만, 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도 원어민 아이들과도 잘 지내어 다른 한국 아이들이 초대받지 못한 원어민 친구의 생일파티에도 초대될 만큼 친구의 폭이 무척 넓어졌다. 그래도 그 한국 아이들이 함께 모여 한국어도 쓸 수 있어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워킹맘이다 보니, 엄마들의 활동에 많이 참여를 못한 부분도 있지만 한국 아이들이 몇 명 있을 경우, 타지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끼리 서로 돕고 돕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뉴질랜드는 가족단위로 가까이 30분만 운전하면 캠핑장이나 바닷가를 쉽게 갈 수 있고, 한국처럼 키즈카페나 학원시설들이 거의 없다 보니, 집에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면서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Cake Stall이라고 해서 집에서 구운 쿠키나 케이크 등을 모아 바자회처럼 판매를 하며 기금을 모으는 행사도 많기 때문에 엄마들이 베이킹을 많이 하기도 한다. 2년간 아이들에게도 언어적 문화적으로 큰 경험이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도 엄마로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지금은 만 5세가 되어 Primary School에 입학하여 다니고 있다. 유치원에서나 학교에서나 오전 간식과 오후 간식시간이 있다. Morning Tea와 Afternoon Tea 시간이다. 뉴질랜드에서는 1년에 방학에 4번 3주씩 있는데 방학 때도 티타임을 하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집에서도 간식을 찾곤 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도 자연스럽게 티타임이 생겼는데, 엄마가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엄마 아빠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가족문화로 자리 잡아 참 좋았다. 식탁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바닷가나 공원에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 참 좋았다.
학교에서 Reading에 중점을 둔 수업을 많이 해서, 집에 오면 책가방에 항상 두 권의 책이 딸려온다. 개인 알림장을 통하여 선생님과 부모님이 소통을 할 수 있고, 집에서 부모가 책을 함께 읽고 확인 사인을 해서 학교로 보내준다. 주 1회 도서관이나 미술관 견학을 하면서 현장학습도 하고.. 코로나가 터지면서 지금은 취소되었지만 학교에서 하는 바자회도 종종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나도 아이도 많이 배워왔고 지금은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할 때는 참 흐뭇하다. 그 두 가지 언어가 점점 시너지를 내고 있는 느낌인 것이, 오늘 아침에도 함께 산책을 하며 아이가 'Plumber'에 대해서 물어봤다. 처음에는 그것이 한국말로 무엇이냐고 묻자 내가 '배관공'이라고 대답을 해주고도 아이는 역시 그 한국말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사실 산책하다가 빨간 버섯을 보고 슈퍼마리오라고 내가 하는 바람에 슈퍼마리오는 배관공 ㅠ 그래서 한국어로 한번 영어로 한번 파이프를 고치는 사람이라고 설명을 해 줄 수 있었는데, 두 가지 언어 이상을 할 경우 뜻과 단어를 서로 연결 지어 한번에 많은 연관성 있는 단어들을 떠올릴 수 있으니.. 뇌 운동이 활발해질 수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이민을 와 정착한 가족들도 많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이 Bi-Lingual의 중요함을 강조하며 두 나라의 문화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의 유치원에 가면 여러 나라의 민속품들이 전시가 되어 있는데, 중국과 한국은 새해를 1월 1일이 아닌 다른 날 지내기 때문에 그것 또한 유치원의 이벤트 중 하나로 편성을 하여 함께 축하하기도 했다. 나도 내가 오래전 가지고 있던 안 입는 여자 한복을 기증하였다. 아이가 졸업한 유치원의 벽 한 면에 전시가 되어 있다. Chinese New Year을 국가에서 함께 축하한다는 것도 참 독특한 볼거리이다. 중국의 Lion Dance를 길거리에서 이벤트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뉴질랜드에서 한국인도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많이 이민한 민족 중 하나이다. Korea New Year에 대해서도 알고 함께 축하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이 처럼 아이에게 다양한 문화를 함께 갖게 하는 것은 그 아이의 큰 재산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두 가지를 모두 존중받을 수 있는 뉴질랜드 문화도 정말 좋다. 물론, 때로는 무식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인종차별 범죄가 일어나긴 하지만은 대체적으로 받는 교육이나 문화적 배경은 다양한 문화를 끌어안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첫째 아이가 언어 말고도 또 얻어 오는 것은 세상에 피부색이나 몸집, 키드 정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다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배워오는 것이다. 같은 교실에 함께 공부하는 16명의 아이 거의 모두 다른 민족이다. 그 다양함을 이해하면서 쉽게 편견을 갖지 않는 것도 큰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하여 안타깝게도 둘째는 두 돌도 되기 전에, 즉 모국어인 한국어가 자리잡기도 전 데리고 왔다 보니, 알아듣기도 어려운 영어라는 것에 답답해하고 "영어 싫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나마 외향적인 성격의 아이라 지금은 한국어는 오빠 따라 아주 유창하고 영어도 대부분은 알아는 듣고 말은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둘째처럼 두 돌 전에 와서 지금 유치원을 다니는 많은 아이들 중에 아예 언어 자체를 거부해 버리는 부작용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모국어를 먼저 어느 정도 잡은 후에 영어가 들어가는 만 3-4세 이후가 해외 경험이 효과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어를 안정적으로 잘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영어 하러 유학을 오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그런 경우도 성공적인 케이스 중 하나이다. 일단 중심이 되는 언어가 자리 잡아야 그다음을 발전시킬 수 있다. 기저귀도 다 떼지 못하고, '보육'을 다 졸업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를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은 불편하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 선생님도 아이가 화장실 가겠다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요청하기도 쉽지 않은 데다.. 옮긴 지 얼마 안 되면 또 낯설기에.. 다행히 둘째 아이의 첫 보육 담임 선생님은 너무 천사 같은 대학생 인턴 선생님이 어서 겉모습이 다르고 다른 말을 쓰는 것에도 아이가 개의치 않고 잘 적응했었다.
하지만 영어 쓰기 싫다는 반대적인 부작용도 생겼었던 것이다. 지금은 만 3세가 넘어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유치원에서도 첫 두 달은 아이를 빨리 데리고 가라고 자주 전화가 왔더랬다. 안 쓰던 언어를 쓰다 보니 빨리 피곤해하는 것 같다고. 점심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짜증내고 피곤해한다고.. 이렇게 보면 아이에게 문제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부모에게 바로 보육을 돌려버리는 뉴질랜드에 비하면 한국에서의 선생님들은 잘 봐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영어나 다른 외국어의 조기교육은 장점이 참 많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들을 잘 생각해 두었다가 아이와 함께 극복해 나가는 것이 조기교육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어도 잘 배울 수 있는 적절한 때가 있다. 그때가 너무 이르면 또 아이에게 충분히 흥미를 줄 수가 없는 듯하다. 확실한 것은 어려서 배울수록 그 속도는 정말 상상 이상이다. 6개월 만에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첫째를 보면, 물론 언어적 소질도 한몫할 테지만, 어른들보다 효율적인 것은 확실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