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접 느낀 안전도 그리고 살해사건
작년에는 처음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와서 조금 설레기도 한 마음으로 눈에 콩깍지가 씌여진 상태에서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바라봤다면 몇몇 사건들을 겪으면서 결코 안전한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회사 동료들 중 몇몇의 집에 도둑이 들어 가전 및 숟가락 포크까지 싹 다 가져갔다는 이야기에도 놀랐었는데... 총기소지가 합법이긴 하지만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하기에 소유를 한 사람은 많지 않아보인다. 그래도 합법적인 소유가 가능한지라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일어난 이슬람 사원 테러 처럼 언제든 사고의 위험에는 노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곳에서 나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전 배우자 또는 동거인을 칼로 살해하는 일이다.
올해 6월 초 갑작스레 우리집 차고에 있던 차 타이어가 모두 펑크나는 일이 있었다. 자고 일어나서 아이 유치원을 데려다 주려고 차를 탔는데, 굴러가지 않아 깜짝 놀랬었다. 이웃집 중 유일하게 우리 차만 망가졌고, 너무 놀라 경찰에 바로 신고를 했지만 경찰에서는 10대들이 장난친 것이라며 심각성을 무시한 채 넘겨버렸다.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비싼 돈 들여 타이어를 갈고는 가까운 샤오미 매장을 가서 바로 비디오를 샀다. 집도 나무로 된데다가 마당 앞 문도 높지 않아 누구나 맘만 먹으면 또다시 집에 침입하여 무슨일이라도 벌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뉴질랜드가 평화롭다고 생각하여 가끔은 문잠그는 것도 잊고 지내다 경각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1주일이 지나 같은 화요일 아침 눈을 떠보니 집 앞에 주차했던 나의 차에 빨간색 스프레이가 여기저기 뿌려져 있었다.
놀란 마음을 겨우 가라앉히며 경찰에 다시 신고를 하고 (별 도움 안되는 이나라 경찰이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겠다는 심정이었다..) 남편과 함께 설치했던 카메라를 확인했다.
아이들 옷을 갈아 입히느라 방불을 환하게ㅜ켠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170cm 정도의 키에 깡마른 듯한 몸집 그리고 모자를 꽉 눌러쓴 모습이 십대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는 도저히 가늠이 되질 않았다.
옆집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가 직접 나와 손수 페인트도 지워주시고 사과파이를 구워 나를 위로해 주셨다. 영국에서 오래전 이민 온 부부인데 잔디깎을때 우리집까지 같이 해주실 정도로 잘해주시던 분들이었다. 사과파이를 받아든 순간 울컥해서 너무 눈물이 쏟아졌다.
살면서 남에게 민폐한번 안끼친 우리 가족에게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다.. 때마침 지금 다니는 회사의 최종면접 때문에 시드니에 가야할 판이라 마음은 더 조여왔다. 내가 집 떠난 사이 우리가족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분명 나는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또 다시 일주일이 흘러 이번에는 죽은 쥐가 우체통에서 발견되었다. 동물을 죽일 수 있으니 사람도 죽일 수 있다는 협박인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범인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돈이라면 벌써 훔쳐가고도 남았을텐데.. 매주 화요일마다 이렇게 저녁 7~8시경 괴롭히는 이유가 뭘까...
경찰은 이번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낮에 잠시 찾아와 가로등을 밝은 것으로 설치하면 어떠냐는 둥의 별 도움안되는 조언만 할 뿐이었다. 하루는 내가 너무 속이 터져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 담당 경찰관에게 하소연을 했다. 경찰의 수가 너무 모자라 일을 다 처리하기 어렵다고 했다. 우리집 사건을 담당하던 경찰도 루마니아에서 이민온 사람이었다. 루마니아에서 온 그 경찰도 처음에 뉴질랜드에 와서 너무 놀랬다고 했다. 선진국이라 가난한 사람도 없을 것 같았는데 오클랜드에 출동한 집집마다 4~5가족이 한집에 발 딛을 틈도 없이 불청결하게 살기도 하고..(집값이 워낙 높으니 그럴만도 하다...) 오클랜드 남쪽은 갱단도 많고 10대 미혼모들이 낳은 수많은 아이들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었다고 한다. 두 아이의 엄마로써 가족을 지켜야하는 나의 심경도 이해를 해달라는 나의 눈물젖은 호소에 돌아오는 화요일에는 111으로 전화를 하면 바로 출동해 주기로 했다. 나의 느낌상 또 그 범인이 같은 날 모습을 보일 것 같았기에...
이사를 바로 하고 싶었지만 집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잠시 지낼 곳을 알아보려했지만 집에 있는 짐 걱정도 되고 집세와 호텔비를 동시에 내기는 쉽지 않았다.
또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이번에는 협박편지가 우체통에서 발견되었다.
크라이스트 처치 테러 이후로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뉴질랜드라 이번에는 경찰관 6명이 개 4마리를 끌고 바로 출동해서 범인을 추척했다. 한시간동안 거리를 뒤졌지만 잡지 못했고 약 한달간 밤새 무슨일이 생길까 잠을 거의 못잤지만 이 편지를 받은 당일날은 정말 밤을 꼬박 세었다.
내가 일하고 있던 호텔의 총지배인이 우리가족 소식을 듣고 전화가왔다. 집을 구할때까지 호텔에서 묵으라는 것이었다. 호주사람인 우리 총지배인은 크라이스트 처치 사건때도 희생자들을 깊이 추모하며 슬퍼했던 사람이었다. 그 배려에 너무나 고마웠다. 경찰은 본격적인 사건 수사에 들어갔고 우리 부부는 부동산 중개인을 불러 계약이 종료가 되지 않았지만 더이상 살 수가 없으니 주인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흔쾌히 우리의 청이 수락되었고.. 집주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싶어 한다기에 날을 잡아 만나기로 하였다.
본래 우리가 살던 집은 중국인 집주인 아주머니의 아들 내외가 살던 집이었다. 아들이 호주로 직장을 이전하면서 집이 비게 되었고, 우리가 첫 세입자인 셈이었다. 이사갈 곳을 알아보면서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호텔 동료들과 총지배인의 도움으로 NZ Herald의 기자들과 만나 인종차별에 대한 사건을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한국에서 흔히들 말하는 '기레기'와 비교될 정도로 뉴질랜드 기자들은 있는 사실을 정말 그래도 다 적어 주었고... 심지어는 기사가 나가고 나서 커뮤니티 센터나 정부기관등 그들에게 연락온 곳을을 우리가족에게 소개해 주어 도움을 받게끔 해주었다.
우리 기사가 나가자 아이들 유치원 엄마들이 찾아와 혹시 정말 십대들이라면 함께 찾아봐 준다고 했다. 마침 주변에 고등학교가 하나뿐이라 그곳에서 부터 조사하기로 했다. 학교 교장을 찾아가 기사를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나름 사건을 해결해보겠다고 이리저리 뛰던 중 또 하나의 협박편지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우체국을 통해 우편으로 날아왔다.
2주를 줄터이니 그 사이에 집을 비우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가만 안두겠다고... 그 '함께' part of my problem 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편지 였다. 혹시 집에 관련된 것일까 싶어 다음날 만나기로 한 집주인을 바로 만났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아무래도 본인의 전 남편인 것 같다고 했다. 15년전 이혼했지만 14년동안 괴롭힘을 받아왔기 때문에 접근금지 (protection order)를 신청하고 집주소를 모르도록 도망다니는 데도 집요하게 찾아낸다고 했다. 4월즈음 집 근처의 직장이었던 도서관 (아주머니가 도서관에서 일했다.) 에 찾아왔길래 얼마있다 관두고 요즈음에는 버스타고 시내에 있는 도서관으로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전남편이란 사람이 화가나면 남의 차나 집을 훼손시킨다고 한 부분 및 4~5월에 근처에서 아주머니를 발견하고 난뒤 사라지자 우리를 괴롭혀서 아주머니를 불러내려고 한 듯 보였다.
이 일은 경찰에 넘기고 우리가족은 회사 동료들의 도움으로 잠시라도 지낼 집을 구했다.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경찰에서 연결해준 한국인 상담사 분과 상담을 하며 2주를 보냈는데... 그 집을 떠나고 정확히 3주 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오전 8시에 살인사건이 났다고 신문에 크게 난 기사를 보았다.
https://www.nzherald.co.nz/nz/news/article.cfm?c_id=1&objectid=12254430
관련기사까지 찾아가며 쭉 읽는데 60대 남성이며 전 동거인이라는 소리에 주인아주머니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혹시나 그분이 아니기를 바라며... 하지만 전화는 받지 않고 결국은 꺼져있기 까지...
이틀 뒤 경찰과 일전에 나의 기사를 내주었던 기자를 통해 피해자가 아주머니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나는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 사건 이후 뉴스를 좀 더 자주 찾아보게 되었는데 전남편 또는 전부인이 칼로 찔러 살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다. 미국처럼 총기난사가 자주 있지는 않지만 특히나 칼로 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쌍한 아주머니는 오전 8시경 일하러 가려고 버스정류장에 서있다가 뒤에서 칼로 공격하는 범인에 의해 수차례 찔려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기사가 났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바로 경찰을 불러 범인은 잡혔지만.. 손주를 본지 얼마 안된 주인아주머니였기에 그 가족을 생각하면 더 마음이 아프다.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자리에 추모하며 꽃을 남겨, 나 역시 꽃을 두러 사건 장소에 갔었다.. 마음이 너무나 먹먹했고 마침 우리 가족은 다른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어 이 일은 그렇게 차츰 잊혀져 갔다.
하지만 여전히 오클랜드의 범죄율은 올라가고 있고... 밤 늦게 까지 일하는 몇몇 여성 동료들은 밤에 혼자 다니는 것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들 이야기한다. 길가던 깡패에게 당해 지갑을 뺏긴 남자동료도 있었고... 안전으로 따지자면 한국이 훨씬 안전한 것 같다.
이렇게 큰 사건을 지내고 나니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치고 한국이 정말 그립기도 했다.
얼마나 더 뉴질랜드에서 지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우리 가족 모두 안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