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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Apr 08. 2021

그 노란 스쿨버스는 어디에 있을까?

미국에서는 고교 졸업식날 친구들과의 마지막 밤을 맘껏 즐기는 그랜 나이트(Grand Night)라는 게 있다. 졸업식날 밤에 스쿨버스를 타고 디즈니랜드에 가서 밤새 놀고 다음날 새벽 학교로 돌아오는 ‘올나잇’이다. 


졸업식날의 하이라이트는 부모님과 짜장면 먹는 거였는데 밤새 디즈니랜드에서 논다는 거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한국에서 온 학생이 나를 포함 세명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듣도 보도 못한 그랜 나이트를 가게 된 것이다. 


졸업식 날 밤, 다시 학교에 모여 스쿨버스에 올라타는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대부분 이성친구 또는 친한 친구들이 무리 지어 함께 왔는데 우리는 여자애들 세 명이었고 무엇보다 우리 옷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야외서 올나잇을 하려면 겨울잠바에 편한 운동화를 신었어야 했는데 우리는 졸업식에 입었던 원피스에 흰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래도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기분은 좋았다. 도착해서 미국애들을 따라 디즈니랜드에 입성했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지도교사' 없이 새벽까지 제멋대로 밤새 노는 거였다. 거기다 우리 학교 졸업생뿐만 아이라 수십, 수백 개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모두 모여 그 넓은 디즈니랜드는 북새통이었다. 


우리 셋은 '이제 어디로 가서 뭘 해야 할지' 난감했는데 디즈니랜드 한가운데서 생음악이 쾅쾅 들려왔다. 그 당시 인기그룹 쿨 앤 더 갱 (Kool & The Gang) 이 부르는 ‘셀러브레이션’ (Celebration)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내내 댄스파티에 익숙한, 댄스가 생활인 미국 아이들은 신이 났지만 우리는 춤을 추지 못했다. 춤은 포기하고 놀이기구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2시간씩 줄을 서야 했고 밤이 깊어지면서 춥고 배고프고 발도 아팠다. 우리는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몸을 숨기며 긴 밤을 새웠다. 디즈니랜드가 누구 말처럼 '뒤질랜드'로 돼버린 밤이었다. 사람은 넘쳤지만 외롭고 쓸쓸했다. 


드디어 새벽이 왔다. 집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 먹고 푹 잘 생각을 하니 행복했다. 우리는 디즈니랜드 출구를 빠져나와 우리가 타고 온 노란 스쿨버스를 찾았다. 오 마이 갓! 끝이 보이지 않는 그 넓은 디즈니랜드 주차장은 똑같이 생긴 노란 스쿨버스로 꽉 차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그 노란 스쿨버스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디즈니랜드 주차장이 그렇게 넓은 줄 몰랐고, 똑같이 생긴 노란 스쿨버스에 질려버렸고 집에 못 갈까 봐 두려웠다. 


우리 셋은 나름 모든 데이터를 모아봤다. 우리가 타고 온 그 눔의 노란 스쿨버스를 찾기 위해서… 그런데 매번 실패했고 발뒤축에서는 피가 나기 시작했다. 디즈니랜드고 올나잇이고 다 원망스럽고 절박했다. 해가 떠오르고 그 많던 노란 버스들이 우르르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남은 몇 대의 버스에서 우리가 타고 온 그 노란 스쿨버스를 찾았다.  


지칠 대로 지쳐 버스에 올라타는데 미국 아이들이 우리를 정말 무섭게 째려봤다. 우리 때문에 장시간 떠나지 못하고 기다렸으니 밤새 광적으로 놀아서 피곤한데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정말 미안했지만 우리도 이미 죽기 일보직전이라 몸을 구겨 넣고는 이내 잠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틀을 몸살감기로 앓았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쿨 앤 더 갱의 '셀러브레이션'이 흘러나왔는데 깜짝 놀랐다. 그 날밤 그 춥고, 넘치는 인파 속에서도 쓸쓸하기만 했던 디즈니랜드가 생각나서.

 

지금도 나는 길에서 노란 스쿨버스를 마주치면 생각한다. '저 버스는 어디에 주차할까'라고. 그리고 아무리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도 몇 번째 줄 어느 칸에 주차했는지를 두세 번 확인한다. 그 노란 스쿨버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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