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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Feb 25. 2021

공항, 그 냄새가 그립다

나는 오늘 공항에 가고 싶다

공항에 들어서면 냄새가 난다.  내가 가본 하와이, LA, 미네소타, 텍사스, 시애틀, 뉴욕, 보스턴, 시카고샌프란시스코, 코네티컷 공항에서는 '미국 공항'냄새가 난다.


미국 공항에서는 좀 오래된 카펫 냄새, 버터 냄새, 꼬리꼬리 한 치즈 냄새, 햄버거 냄새 그리고 찌든 냄새를 없애려고 뿌린 방향제와 코를 찌르는 클로락스 소독약 냄새가 난다. 


'한국 공항' 냄새도 있다. 그 옛날 눅눅한 장마철, 김포공항에 내리면 퀴퀴한 냄새가 나곤 했다. 인천공항에서는 집 냄새가 난다. 터미널 중심에 위치한 식당에서 각종 음식 냄새가 날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집에 돌아왔음을 알리는 정겨운 냄새다. 실지 새벽 5시에 도착하는 인천공항에서는 넓은 공간을 스치는 바람 같은 좋은 냄새가 난다. 아마도 특수 공기청정기가 설치된 것 같다. 


그런데 공항에는 내 마음의 냄새도 함께 있다. 


한국을 가기 위해 미국 공항에 들어서면 조금은 흥분되고 붕 뜨고 그리고 즐거운 마음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한국 공항에 도착하면 내 마음의 냄새는 집에 무사히 돌아온 '안도감'이다. 그냥 안심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슨 일이 없을 것이고 설사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잘 해결될 것이라는 여유가 생긴다. 공항 입국심사도 늘 순조롭다, 친절하고 무섭지 않다. 


미국 공항에 내리면 내 마음의 냄새는 무조건 긴장되고 불안하고 무섭다. 거대한 체구에 총을 차고 있는 보안요원과 고압적인 입국심사 요원을 만나면서. 요즘엔 컴퓨터를 이용해 입국심사를 하지만 여전히 미국 공항은 무겁고 구멍이 뻥 뚫린 타향의 냄새다.  


내가 미국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핸드폰도 없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국들은 한국과의 단절감을 해소할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카세트테이프로 이선희의 'J에게'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즐겨 듣는 게 고작이었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코리아타운에 가서 김치찌개와 불고기를 배불리 먹는 것이 한국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LA 국제공항에 가보기로 했다. 한국에서부터 날아온 공항 냄새를 맡으러.... 대한항공 서울발 비행기의 도착시간에 가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보면 한국 냄새를 맡아볼 수 있을 거라는 웃픈 생각이었다. 드디어 한국에서 도착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때 그 공항 냄새는 더 깊은 쓸쓸함이었다.


낡은 카펫 냄새도 꼬리꼬리 한 치즈 냄새도 좋다, 그 어떤 냄새라도 좋다. 나는 오늘 공항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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