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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Tree Feb 17. 2021

반갑다 '제주 무'

밀도, 당도 그리고 그 아삭 거림이란!!!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아칸소주의 농장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삶을 담은 영화 ‘미나리’에서 주인공 남편은 ‘매해 3만 명의 한국사람들이 이민을 온다니까 농사를 지어 한인마켓에 납품하면 돈을 벌 수 있다’며 한국 농산물 재배에 열정을 쏟는다. 맞는 말이다. 


2020년 미국 센서스국에 의하면  미국 전역에 한인 인구는 총 186만 명으로 집계됐고 이중 캘리포니아에만 54만 명이 밀집되어 있다.  그리고 한인마켓은 한인뿐 아니라 중국사람들도 단골이다. 제품이 다양하고, 믿고 살 수 있고, 가격도 적당하기 때문에. 


근교 한인 농장에서는 사막 토양인 캘리포니아에서 다양한 한국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지만 한국의 맛을 낼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고구마, 참외, 배추, 토마토, 열무, 풋배추, 꽈리고추, 오이, 무 등이다. 참외는 맛없는 무 같고, 고구마는 심이 많고 당도가 떨어지고, 열무는 질기고 뻣뻣하고, 배추는 푸석푸석하고 꽈리고추는 여리고 달달한 맛이 아니라 엄청 질기고 맵기만 하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달라졌다. 참외는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이 나고,  고구마는 제법 달다.  배추도 한국의 고랭지 단단한 배추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먹을만하다. 그런데 무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겨울에만 잠시 단단하고 약간의 단맛이 날 뿐  늘 축 쳐져있고, 바람이 많이 들고, 질기고, 맵다. 익으면 괜찮을까 싶어 맛있는 양념으로 정성껏 만든 깍두기도 푸석거리고 매운맛이 가시지 않아 먹지 못한 때가 많다. 


그런데 작년부터 겨울 이맘때면 한인마켓에 ‘제주 무’가 나타났다. 멀찌감치 서도 제주 무는 빛난다. 길쭉하고 통통하고 푸른빛이 선명하고 어찌나 깨끗하고 매끈한지 마켓 야채부의 명품이다. 한국 요리프로를 보면 무는 껍데기를 벗기지 말고 잘 씻어서 조리하라는데 미국에서 재배한 무는 흙이 많고 쭈글쭈글하고 상처도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는데 이제 알 것 같았다. 


매년 이맘때면 제주도 무를 손꼽아 기다린다. 드디어 제주도 무가 나타났다. 광채가 나는 제주도 무를 만나는 순간 반갑고 설렌다. 깍두기를 담기 위한 칼질에서 제주도 무는 살아있다 그래서 통통 튄다.  미국에서 자란 무가 근접할 수 없는 밀도, 당도 그리고 그 아삭 거림이란!!! 이 제주도 무가 마켓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쉽고 두려워 욕심을 낸다. 또 마켓으로 달려가 한 보따리 사 왔다, 내년까지의 기다림이 벌써 아쉽고 놓치고 싶지 않아서…


제주도 무를 먹으면서 주책같이 울컥한다.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은 가기 어려운 한국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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