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얻는 브랜드
[동아일보] [손보미의 Girl in Tech]
맹자나 순자를 논하지 않고도 2000년을 이어온 논쟁이다. 얼마 전, 베르베르나르의 희곡 작품을 바탕으로 한 연극 '인간'을 봤다. 외계인에 의해 납치되어 우주 행성의 유리 감옥에 갇힌 인류 최후의 한 남자와 한 여자 이야기. 두 남녀는 성별만큼이나 옷차림도, 사고방식도 다르다. 남자 과학자 라울은 "인간이 해온 짓을 생각하면 이대로 멸종하는 게 죗값을 치러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여자 조련사 사만타는 "인간은 서로 사랑할 줄 알고 발전 가능성을 봐야 한다"라며 이대로 멸종하게 둘 수 없다고 반박한다. 한쪽은 인간에 대한 잔인함과 이기심에 대한 비판을, 다른 한쪽은 인류의 아름다움과 애정을 칭찬하며 뜨거운 토론을 벌인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수천 년간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 않은가. 인간의 다양한 모습 중에서, 특정 행위(어떤 것을 구매하고 어느 서비스를 소비)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가서 서로 기대치 않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싸우고 돌아온다는 여담이 있다. 즐겁기에도 바쁜 여행 중에 함께 한 친구의 새로운 성향을 발견하곤 깜짝 놀란다. 누구보다 그 친구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창피할 정도로. 상대방의 색다른 취향, 예상치 못한 습관, 동선을 짜거나 예산을 사용하면서 우선순위가 나와 다른 것 등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다양한 여행 선택과 계획 기능 등을 제공하는 세계 최대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의 최고 마케팅 담당자(CMO) 바바라 메싱(Barbara Messing)은 미국 매체 매셔블(Mashable)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업무상 조언으로 가장 강조한 것은 '타겟 고객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2억 명이 넘는 월별 순 방문자와 250만 개가 넘는 숙박시설, 식당 및 관광지 등을 포괄해 1억 건이 넘는 리뷰 및 의견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여행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는 그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 그것은 바로 '타겟 고객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으로부터 동기부여를 받는지', '두려워하는 것이나 불편한 것은 무엇인지' 등 고객의 목소리이다. 여행을 함께 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에게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데,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을 상대로 서비스하는 트립어드바이저의 마케팅은 고객에 대해 누구보다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보통 마케팅에서는 고객을 정의하기 위해 가상의 인물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흔히 말하는 페르소나 마케팅은 고객의 성별, 직업, 직장, 취향 등을 최대한 가시적으로 문서화하고, 일부는 그룹화해서 타겟 고객을 분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개개인이 소비한 형태를 추적해 데이터로 분석하는 마케팅이 정량적인 방법의 고객을 정의하는 일이라면, 페르소나 마케팅은 정성적인 내용들을 좀 더 시각화하는 작업에 가깝다.
사람을 뜻하는 '퍼슨(person)'의 어원인 '페르소나(persona:가면)'는 연극에서 시작된 용어로, 일종의 가면을 뜻한다.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지낼 때, 가족들 앞에 투정을 부릴 때, 연인을 대할 때, 예비군 훈련에 나갔을 때 등 장소, 상황 등에 따라 사람들의 모습은 다르다. 즉,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실체는 여러 페르소나가 합쳐진 모습이다. 다양한 페르소나 중에 유독 우리 고객의 특징을 잘 설명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이 고객을 이해하는 접점을 발견하는 일이다.
우리의 브랜드나 상품을 소비하는 고객들은 어떠한 이미지와 가치를 느끼는 것일까. 이들이 원하는 모습을 우리의 서비스나 상품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잘 구축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마케터들 사이에서는 '상품'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마케팅을 더 잘 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궁극에는 프로덕트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럴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잘 알고 있다는 자세보다 겸손한 자세로 호기심을 갖고 고객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한국 스타트업이 기존 한국의 '미(美)'에 대한 통념에 대한 반기를 든 경우가 있다. 사람마다 키와 체형이 다른데, 유독 한국은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를 무조건 44 또는 55라는 획일화된 기준에 아름다움을 재단한다. 요즘은 인위적인 볼륨보다 나에게 맞는 'Fit'을 추구하는 시대라 생각했다고 한 스타트업 럭스벨(Luxbelle)은 이러한 인식에 반기를 들었다. 여성 개인 체형을 온라인 핏 테스트로 수집해 분석한 후, 각자 체형에 맞는 자체 제조한 브래지어(브라)를 추천하고 판매하는 '사라스핏(Sara's Fit· sarasfit.com)'을 서비스한 것. 럭스벨 김민경 대표는 시장조사 삼아 기존 브라를 고객 체형별로 추천하는 서비스를 진행한 결과 구매율이 참여 고객의 절반 정도를 기대했는데 70∼80%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를 토대로 요즘은 방문 컨설팅을 중점적으로 진행한다.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그간 쉬이 말하지 못했던 고객의 숨은 니즈에 대한 이야기와 피드백을 부지런히 듣기에 바쁘다. 향후 얼마나 다양한 고객의 이야기와 맞춤형 제품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고객을 잘 알기 위해 우리는 소설가처럼 생각해야 한다. 소설의 인물과 같은 캐릭터를 상상해보자. 소설 속 캐릭터는 자신이 소비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 이상의 속마음을 말한다. 혼자서 독백하거나 상상하는 모든 속마음이 독자만 볼 수 있게 활자로 그려져 있다. 문제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이런 속마음의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객의 진짜 소리'를 듣기 위해 다양한 설문지와 더불어 고객 대면/비대면 인터뷰를 자주 실행해야 한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배우 차태현(극중 견우)은 자신의 연인(전지현)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한다.
'여자다운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술은 세 잔 이상 먹이면 안 된다. 아무나 패니까.', '카페에 가면 콜라나 주스가 아닌 커피를 마셔야 한다.', '만난 지 100일째 되는 날 장미꽃 한 송이 들고 강의실로 찾아가면 엄청 좋아할 것이다.', '그녀가 때리면 아파도 안 아픈 척, 안 아파도 아픈 척하는 걸 좋아한다.', '가끔 죽인다고 협박하면 진짜 죽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야 편하다.', '가끔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신발도 바꿔 신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애, 글 쓰는 걸 좋아하니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한다.'
물론 영화 속 한 장면이지만, 그의 모든 말은 연인을 잘 알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통계치로 숫자로 설명된 것은 없지만, 그녀의 성향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문장들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얻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모든 브랜드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들이 진짜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 비즈니스를 이용하고, 추구할 수 있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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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동아일보 칼럼에 함께 기재되었습니다.
동아일보 링크: http://news.donga.com/3/all/20170217/829184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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