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괜찮지 않아
그는 소변을 본 후 젖어있는 발을 옆에 있는 화장실 앞 발수건에 닦을 줄 아는 멋진 녀석입니다. 아침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밥 달라고 징징거리고 자기만 배가 부르면 나야 다시 잠을 자건 말건 쿨하게 다시 가서 잡니다. 오전에 내가 병원이라도 데려갈라치면 짜증을 내구요. 그렇게 졸리면 아침에 좀 더 자야 하는데 왜 그렇게 너무 일찍 일어나 나를 깨우는 걸까요.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내가 엄마인 줄 아는지 나 밥 먹을 때 밥 먹고 내가 물 마시면 자기도 물 마시고 안방이나 부엌에 내가 없으면 이방 저 방 나를 찾으러 다닙니다.
이제 6살이 넘으니 의사표현도 확실해서 대화가 통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작년부터 허리디스크가 심해져서 운동도 그만두고 집안에서만 지내는 생활이 길어졌습니다. 그러니 강아지 산책도 소홀해졌고요. 원래도 산책은 싫어하고 안고 나가거나 드라이브만 좋아해서 사실 별 고민도 없었어요. 그런데 운동이 부족했던 탓인지 이 아이도 허리디스크에 걸렸습니다. 강아지도 디스크에 걸리나요? 저도 처음 알았어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산책을 안 나간 탓입니다.
여행 갈 때마다 예민한 이 녀석을 어디에 맡길지 고민했습니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이를 애견호텔에 맡겼을 때는 3일 동안 아이가 잠을 못 잤는지 집에 오자마자 내내 잠만 자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유치원을 겸한 애견호텔에 손님이 올 때마다 다른 강아지랑 합세해서 열심히 짖어댔나 봅니다. 그리고 조용한 밤에는 언제쯤 엄마가 데리러 올까 잠 안 자고 기다리고요.
그동안은 그가 항상 집에 있어서 밖에 나가기가 싫었나 봅니다. 혼자만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려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젠 집에 있기가 싫습니다. 자꾸만 문득문득 여기저기서 그 녀석이 튀어나올 거 같아서 다시 돌아봅니다. 거실에 있으면 자기 집에서 고개만 내놓고 나를 쳐다보고 안방에 들어가 있으면 어디 있나 이방 저 방 찾으러 다니는 녀석이었습니다.
바로 어제까지도 같이 수박을 먹고 저녁에 우유도 주고 내가 화장실에 가면 자기도 같이 그 앞에 있는 배변패드에 쉬를 했는데 이건 뭔가 싶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가 어떻게 우리를 떠났는지 쓸 수가 없습니다. 아직은.
집안 여기저기서 그의 모습이 보이고 소리도 들리고 아직도 그 녀석 냄새가 납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잔상이 남아서 아직도 집안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큰아이가 5학년일 때 우리 집에 와서 한참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맘을 토닥여주고 이제 그 아이가 철이 좀 드나 싶었더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금요일에 큰아이를 만나면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둘이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제처럼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려 또 실려가지 않으려면 금요일까지 숨 쉬는 법을 반복해서 연습해야겠습니다.
- 솜아 엄마가 그동안 너를 더 열심히 보살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없으니 너에게 못해준 일들만 후회로 남아 모두 다 내 탓인 거 같아서 가슴이 저려와. 다음생에는 엄마 아기로 태어나서 이번에 못해준 거 다 해줄게. 밖에 나갈 때마다 데리고 갈게. 여행도 같이 가고. 6년 동안 우리에게 사랑만 주어서 정말 고마워. 거기서는 엄마만 기다리고 있지 말고 친구들이랑도 놀고 건강하게 잘 지내 -
강아지를 보내고 다음날 베란다에 나가보니 올해는 이미 봄에 피었던 치자꽃이 다시 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이건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우리 솜이가 보내준 선물 같다고 했더니 혼자 장례를 치르고 왔던 남편이 자기가 마지막으로 솜이를 안아주면서 엄마한테 인사하고 가라고 했다고 선물 맞는 거 같다고 하네요.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 거라고 담담히 말해왔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