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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el Jun 19. 2023

여기 육아가 쉬운 사람 손 들어봐!

라고하고 싶다

“자기는 아이가 다 알아서 하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이 세상에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가 있을까?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공부하고 싶도록 만들어주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다. 정말 때리는 거 말고는 다 해본 듯하다. 혼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일 년에 한 번은 아이들 데리고 여기저기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도 영어를 잘하면 해외여행이 쉽고 즐겁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고. 그런데 일본 좋아하는 큰아이 때문에 요즘은 일본만 간다는 게 함정이지.     


그렇다고 공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 재능이 운동이나 미술 또는 음악이라면 그것도 도와줄 참이었다. 부모가 도와줄 수 있는 범위에서 해보고 더 잘하게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은 아이의 재능이 아니라서 다른 길을 찾아보는 편이다.


학교에서 하는 계주에 선수로 매년 나가는 걸 보면서 운동에 소질이 있나 생각했었다. 아침에 등교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가서 운동하고  방과 후에도 3시간씩 연습을 한 후에 나간 전국티볼대회에서 전국 3위를 했는데도 자기는 운동에 소질이 없다며 이제 운동은 취미로만 하겠다고 했다.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4살 때 발레부터 시작해서 (아이도 몸이 유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초등 2학년 때 방송댄스 1년 그리고 합기도 2단까지 따는 동안 운동은 쉬어보지 않았다. 합기도는 3단까지는 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어서 검도를 시작했고 검도는 이사를 또 하게 되어도 다시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주짓수를 한다. 물론 시간이 없어서 방학 때나 하는 정도지만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운동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운동이 아니라 다른 것도 못하게는 안 했다. 나랑 다르게 그림을 엄청 잘 그리는 핏줄이 흐를 수도 있고 음악가가 될지도 모르니 내 유전자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 하는 건 거의 다 해보게 했다. 일본만화를 좋아해서 애니메이션 학원도 방학 동안 다녔다. 요즘 TV에도 많이 나오는 유명한 웹툰작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거기도 가보니 자기보다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이 많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그래도 조금 배운 실력이지만 중, 고등학교 때 캐릭터 그리는 수행평가가 있으면 좋은 점수를 받고 오는 걸 봐서 잘 다닌 듯하다.      


미술은 정말 소질이 없는지 초등학교 저학년 때 1년 정도 다닌 게 다였고 음악은 5살 때부터 야마하에 다니며 작곡한 곡으로 발표회도 나갔지만 그 이상을 요구하는 선생님 덕분에 학원 갈 때마다 배가 아프다고 해서 그만두었다.     


해보면 안다. 내가 거기에 재능이 있는지. 해보지도 않고 부모가 반대를 하면 아이와 관계만 나빠질 뿐 아이가 생각해 볼 기회마저 뺏는 일이다. 아이가 도전해 보고 이 일이 나와 맞는 건지 아닌 건지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아무래도 독서 같다.    

  

아이가 해보고 싶어 하는 일은 거의 다 해주었으나 딱 한 가지 못해준 건 연기수업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 같은 반에 탤런트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공부나 다른 학교생활로는 늘 칭찬을 받던 아이가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을 더 받는 친구를 보니 그 일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연기학원을 보내달라고 졸랐다. 그것도 그 아이가 다니는 학원으로. 일산에도 학원이 있는데 굳이 서울에 있는 남부터미널까지 아이를 데리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왕복 4시간) 그러려면 주말마다 온 가족이 출동해야 하는 모양새다. 그렇게 몇 달 고민하다가 그래도 그렇게 원하니 한번 보내보자 생각했는데 아이가 이젠 안 다니겠다고 했다. 너무 오래 고민을 했나.. 아무튼 그렇게 5학년이 끝나자 아이는 더 이상 연기학원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안 하게 되었다. (아마 그 친구는 태생부터 얼굴이 작다는 부분에서 포기했던 듯. 다시 태어나야 하니까)    

 

“우리 아들 이번에 서울대 들어갔어”     


서로 사느라 바빠 몇 년 동안 얼굴도 못 봤던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아이들 공부 때문에 목동으로 이사 가면서 너도 빨리 이사오라고 했던 친구인데 그렇게 열심히 하더니 결국 보냈구나 싶었다.      


“네가 고생 많았겠네. 수고했다”

“알아주니 고맙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이 정신을 안 차린다며 영등포역 앞 노숙자들을 보여주고 왔던 친구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산다고. 교육적으로 오은영 선생님께 혼날 짓이지만 엄마는 그렇게라도 아이가 현실을 알았으면 싶었겠지.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지금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들을 키워보니 더더욱 친구가 대단하다 싶다. 오늘은 또 어떻게 아들이 뭔가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 줄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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