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병욱이 Jul 30. 2022

추락하는 “정(情)”

눈치 없던 나


주말을 보내고 3일 후면 2년 아니 3년쯤 되었다. 6년 전 아는 동생의 소개로 만나게 된 또 다른 한 명의 동생을 오랜만에 보게 되는 날이다. 아마 4번째 만남이 성사되는 역사적인 그날일지 모른다. 난 그 녀석을 위해 앞서 양조장 투어와 호텔에서 전시를 여는 국제화랑 미술제 초대장까지 날짜에 맡게 신청해 두었다. 기다림의 1분 1초의  설렘은 시간을 더디게 만든다. 허투루 숙박에 돈을 투자하지 말고 좀 불편하더라도 집에 내심 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녀석은 결국 첫날 호텔 같은 모텔에 둥지를 틀고 말았다.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다음 날 아침에 만나기로 한 후 내일의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8시에서 9시 사이에 보자는 녀석이 아무런 연락도 없다. 피곤해서 아직 자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참고 기다렸다. 9시 20분이 다 되어서 전화벨이 울린다.

“죄송해요, 너무 피곤해서 이제 일어났네요.”

“괜찮아. 나올 준비 마치고 다시 연락해.”

10분을 넘어가기 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저 이제 준비 마쳤습니다.”

“그래 나 여기서 10분이면 도착할 거야. 앞에 가서 전화할게.”


2020년에 터진 코로나는 여전하다. 여름이 되면 더욱 기승을 부려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화르르 타올랐다. 제주에서만 하루 확진자 수가 1700여 명을 육박한다. 조심해서 손해 볼 건 없다. 검은 정장 바지에 배낭을 메고 금방 시장을 다녀온 건지 노란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걸어온다. 몇 년 사이에 볼록 나온 배가 나이에 맞지 않게 아저씨 스멜이 피어오른다.

코로나 시대에 맞게 주먹 인사로 첫 만남을 장식한다.

어렵사리 성수기의 여름 휴가지만 가장 저렴한 렌터카 업체를 소개해주고 빌린다. 시간은 11시가 가까웠고 배도 고파왔다.

“형 근처에 맛있는 고기 국숫집 없어요. 저 그거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어서요. 맛있는 거 먹어요.”

“아~ 그래. 그럼 여기로 가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박의 말투가 돌아온다. 자기 딴에는 검색을 한 모양이다. 그럴 거면 묻지를 말아야지. 무섭게 밀어붙여 결국은 내가 추천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비빔냉 고기 국수와 고기 국수, 메밀만두까지 시켰다. 맛은 여전하지만 물가 상승의 손길이 식당까지 휩쓸고 갔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얻어먹기에 고맙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집에서 재워준다고 말에 밥까지 사준 녀석이 기특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다이소를 들러 휴대폰 거치대를 사고 용머리 해안으로 달려가면 되었다.

마침 세수 비누가 떨어져 잘 되었다 싶었다. 이렇게 방문한 겸 난 비누를 사기로 맘먹었다. 2, 3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비누를 손에 들고 1층으로 내려오니 군것질거리가 펼쳐졌다. 눈앞에 버젓이 유혹하는 과자에 위장이 달달함을 원한다. 계산이 마무리 도기 전 비스킷 하나를 집어 들고 그 녀석이 있는 무인 계산대로 향했다. 비스킷을 슬며시 계산대 앞에 올려놓으며 “야~ 이것도 하나 계산해봐” 반응은 싸늘한 한기를 내뿜었다.

“네에~ 제가요. 왜요. 전 이거 안 먹어요. 제주 왔으면 형이 사줘야죠.”  

1000원짜리 비스킷 하나쯤이야 생각했던 내 잘못이 큰 실수다. 얼굴은 부끄러움과 난처함에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4번째의 만남이지만 조심하며 지켜야 할 게 더 많은 사이였다. 계산은 3개의 비누와 비스킷 하나로 내가 처리했다. ‘가이드와 사진까지 자원봉사는 아니라도 음식까지!!’

이제 모든 준비는 마쳤지만 기분은 묘하게 꿀꿀하고 찝찝하다. 어쨌든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형님 과자는 왜 산 거에요. 그런데 그걸 왜 저한테”

“달달한 게 당겨서 그랬지.” 당황스러운 그 녀석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 맞다. 좀 전에 국수도 샀잖아요. 혹시 계속 얻어먹으려는 생각은 아니시죠.” 80세가 넘은 세계적인 권투 무하마드 알리에게 어퍼컷을 한대 얻어맞아 몸 구석구석 쑤셔오는 기분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지만 내가 샀어야 했나. 아니면 각자 자기가 먹은 것은 계산을 해야 했었다. 머릿속 두뇌가 오류를 일으켰다. 단어가 하나하나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으로 빨려 들어갔다.

“맛있는 밥 먹으러 가시죠.”란 말을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로 제멋대로 해석한 대가다. 눈치 없이 계산도 하지 않고 식당을 박차고 나온 게 잘못이다. “계속 얻어먹으려는 생각이셨어요.” 두뇌는 정내미가 뚝 떨어지는 하나의 대사를 되새기고 되새긴다. 수다스럽던 대화는 점점 줄고 유리창 앞만 바라보며 불편한 공기가 자동차안을 메웠다. 양조장 투어에 국제화랑 미술제까지 챙겨 주려했던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이다. 사회돈을 그럭저럭 잘 버는 녀석. 고마움에 밥을 사주려니 했던 나는 악마의 달콤한 주문에 걸렸던 게 분명하다. 제주에 거주한다고 재워줘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나 또한 함께 있는 게 불편할지 모른다.

말 한마디의 서운함이 재워 주고 싶은 마음도, 미술 전시회를 데려가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되려 넌 왜 나의 집에서 자려고 하냐는 질문을 수차례 던졌다.


몇 년 전 제주에서 일을 해 보겠다며 내려와 기거한 한 녀석이 있었다. 참 희한한 놈이었다. 1주가 흐르고 2주가 지나갈 때까지 평온하게 지냈다. 그러나 나의 생활도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다. 그 녀석도 그건 알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연락을 해왔다.

“형 저녁 먹었어요.”

“아니”

“그럼 치킨에 맥주 한 잔 할래요.” 난 술보다 밥인데 하는 수 없이 OK 사인을 보낸다. 썩 기분 내키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저녁밥 아닌 저녁을 때웠다. 며칠이 지나고

“야~ 계속 있을 거면 생활비라도 좀 보태라. 전기도 물도 사용하니까”

그 한마디는 그 녀석의 제주 생활에 종점을 찍었다. 밥 한 끼 먹자는 말도 없던 녀석은 다 다음날 되자, 일을 관두고 서울로 돌아간다며 통보를 해왔다. 그 녀석이 떠나고 5년이 지나갔지만 아직 연락 한 번 오지 않는다.


.

. 겉으론 good boy 속으론 bed boy


2부에서 이어집니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