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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Mar 19. 2023

유채꽃 릴레이

섭지코지 22. 03. 17

광치기 해변의 끝에 나타난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작은 언덕을 만난다. 수백 년간 지층이 뒤틀리고 쌓이고 형성된 붉은 오름으로 등대를 품고 있다. 등대, 유채꽃, 선돌 등 모든 자연이 모여서 만든 섭지코지다. 


섭지코지에 닿기 전 삼거리에서 서쪽방향. 건널목을 건너면 고운 모래가 깔린 신양해수욕장이 있다. 지나는 길에 얼핏 보았지만 지금 신양해수욕장에는 카이트보드의 머리가 하늘을 맹렬하게 움직인다. 벌써 머릿속엔 그림이 그려진다.  "재미겠다~~ 힝" 혼잣말을 읊는다. 


"섭지"는 땅이라는 의미를 ‘코지’는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땅을 가리키는 "곶"  또는 "갑"의 제주어이다. 곶은 숲을 뜻하기에 간단하게 말하자면 바다의 숲이다. "곶"이란 글자를 가진 곳은 역시 경관뿐 아니라 둘러보아야 할 곳도 지천에 깔렸다. 행복의 문, 유민 미술관, 글라스 하우스, 바람의 언덕과 잔잔한 산책로까지 줄줄이 달달한 사탕이 걸렸다. 그중 유독 봄을 향기를 뿌려 되는 유채꽃밭으로 직행이다. 마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치 못하듯 떨어진 노란 사탕을 줍는다. 바이러스도 뚫기 힘들다는 KF-94 마스크도 손쉽게 뚫고 들어오는 녀석이 겁날정도다. 그렇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유채꽃도 아쉽지만 이미 유채꽃밭은 곯을 때로 곯아버린 아픔에 멍이 들었다. 방문의 발길은 어수선했고 이리저리 생긴 통로는 난잡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란 부리에 쪼이고 쪼여 상처만 남았다. 봄에 태어난 게 무슨 죄라고 짚 밟히고 있나 서글픈 생각이 든다.


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유채꽃 넘어 제주말로 송이라는 붉은 화산재로 이뤄진 붉은 오름이 보인다. 그 아래 바다 수면을 뚫고 하늘 향해 치솟은 촛대바위를 닮은 것은 선돌 삐죽삐죽 파도를 헤치고 솟아올랐다. 용왕의 아들과 하늘나라 선녀의 슬픈 찍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온다. 선돌을 정수리를 보면 참 의아하다. 겨울이 되면 한라산의 정수리가 늘 하얗듯 치솟은 선돌 바위도 갈매기의 배설물로 한라산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1만 분의 1로 줄어든 한라산이다. 


유채꽃의 향기가 아직 코끝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더니 어느샌가 그곳에 풍덩 빠지고 만다. 70평 남짓 노란 봄날의 파티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바람의 언덕 저편 글라스 하우스 뒤로 6m 높이의 그랜드스윙이 보인다. 섭지코지에서 성산일출봉을 담으며 사진을 담을 수 있는 유일무이 포토존이다.


붉은오름의 하얀 등대는 높이 7m로 2019년 이달의 등대로 방두포등대 또는 소원 등대로 불린다. 등대까지는 철계단으로 이뤄져 있으며 하얀 등대의 난감에 올라서면 기가 막힌 섭지코지의 해안절경이 코 앞에 펼쳐지고 바람의 언덕에서 휘날리는 유채꽃은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2km의 거친 바람을 맞으며 절벽을 따라 걸으며 자연과 하나가 될 뻔했지만 유채꽃의 특유한 향기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거칠지만 우아하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길을 돌아 영혼이 머문 붉은오름과 마주한 바람의 언덕으로 향한다. 옛날 봉화불을 지피던 높이가 4m, 폭이 9m쯤의 협자연대가 보인다. 현무암 특유의 검은빛과 유채의 노란 꽃잎이 제법 조화스럽다. 붉은오름의 하얀 등대와 유채꽃 그리고 협자연대까지 벗어날 수 없는 버뮤다 삼각지대다. 오늘 집에 돌아갈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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