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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Mar 17. 2023

우주에서 온 코로나19

20. 03. 15


아직 내 마음속엔 사라 버리지 못한 하얀 설경이 마음 한편에 간직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어서 따뜻한 봄이 오고 옥죄여 오는 코로나 19가 사라지기만을 바라는 절규를 내뿜는다.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눈 오기만을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늘도 그런 심정에 답한 것이다. 

그날 엔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참을 수 없었다. 발은 동동거렸고 결국 마음이 이끄는 곳을 따랐다. 언제쯤이었던가? 벌써 이번달에만 윗세오름을 3~4번 올랐다. 그뿐만 아니다 난 분명히 제주의 한라산에 미쳤다. 2020년이 시작되자 한라산 코스(어리목, 영실, 성판악, 관음사)를 통틀어 6~7번째이다. 한라산을 동네 앞산을 오르듯 만만하게 본 것도 아니며 쉬운 상대도 아니다. 마음이 움직이고 두뇌가 시키는 대로 오르고 또 올랐다. 오를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한라산의 모습은 지루함이라고는 찾기 힘들다. 모름지기 산이란 이런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몸소 깨닫고 실감하게 만든다. 그런 와중에도 처음 한라산을 오른 사람들의 놀람이 연속이다.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각기 다른 표정을 지켜보는 재미에 푹 빠져 스며든다. 마치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오차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웃고 떠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내들끼리 아옹다옹 썰전이 펼치는 무리도 보인다. 


"내가 여길 수십 번을 올랐는데... 여기는"

"정상 올라봐. 가슴이 뻥~ 뚫린다니까?"

"조금만 더 가면 널찍한 공터가 나오는 데 거기서 막걸리 한잔 마시면... 그리고 UFO도 만나게 해 줄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침이 꼴깍꼴깍 목구멍으로 타고 흐른다. 술은 됐고 꼬불꼬불 컵라면이라도 있었으면 했지만, 오늘의 가방 안은 한 줄의 김밥과 전화요금에 포함된 할인 혜택을 받아 1100원에 구입한 크림방 하나가 전부였다. 흐르는 군침을 어떻게 하면 봉쇄할 수 있을지 생각에 빠졌다. 술렁이는 틈을 타 두뇌마저 뒤엉켜버린 그물이 되었다. 2013년 K팝 스타라는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 큰 화재를 모았던 악동뮤지션의 "라면인건가"와 2달 전 코로나와 휩쓸려 전국을 강타한 영탁의 "막걸리 한 잔"으로 우측 두뇌는 이미 난리브루스다. 뭔 상황인지 좌측 두뇌는 어리둥절. 벗어나야 하고 그것을 대체를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바빴다.

종알종알 귓가를 강타한 봄이 알리는 수다에 넋을 잃고 초점은 허리멍텅 내 몸을 잠식했다. 그때 마침 떠나지 못한 겨울바람이 얼굴을 휘갈퀴고 서귀포 남서쪽 산방산을 향해 달려갔다. 구렁텅이로 빠질뻔한 정신은 가까스로 일어서 줄지어 길게 늘어선 사람들 속에 묻혀 정상을 발길을 돌렸다. 


겨울왕국의 올라프나, 몇 개의 나라에 걸쳐있는 산(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알프스보다 아름답다느니 눈 내린 풍경에 수다를 쏟아내며 말들이 많다. 그럴 것이 어디에 내놓아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에 그저 감탄사만 내지르게 만드는 겨울의 마지막 왕국이다. 여차여차 도달한 장소는 선작지왓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하얗게 분을 바른 선작지왓은 코로나 19로 인해 각자의 얼굴을 덮은 하얀 마스크를 연상케도 한다. 줄지어 이동하는 등산객을 바라보며 한숨이 터져 나온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나부터 시작해 눈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신비로운 자연을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좋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불편한 산행에 속이 쓰라리다. 마음으로 감탄사를 유발하는 나와 다르게 몇 백 미터 또는 몇 킬로미터를 넘어서까지 들리도록 외치는 아저씨의 우렁찬 목소리에 살짝 쫄린다. 마스크 안에서 머뭇거리는 나와 비교된다. 50대 중반 아저씨의 너무나 큰 외침은 웃세 누운 오름에 차곡차곡 쌓인 2020년 겨울의 눈이 눈사태나 일으키지 않을까 심장이 콩알만 해졌다.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 곱게 단장한 웃세 누운 오름의 정상은 어딜 봐도 멋짐 자체다. 서로의 마음이 닿지 않는다는 건 얼음과 눈사이에서 평생을 살아왔을 겨울에 무감각해진 겨울마녀뿐. 눈은 오름을 덮고 다시 주변의 나무(철쭉, 조릿대 등)를 감쌌다. 태양의 햇살에 내 마음마저 훔치려 일본에서 탄생한 최고의 도둑 괴도 루팡이 달려왔다. 

한라산의 코스 중 하나. 윗세오름이란 무한한 존재의 가치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 이제 막 태어나 지구인을 못살게 구는 코로나19는 언제까지 지구에 머물지가 변수다. 벌써부터 숨이 턱 막혀 답답함이 심장을 죄여온다. 손쓸도리가 없는 막막함은 저질스러운 체력에도 이유가 있다. 쇠도 씹어먹을 10대였더라면 겁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전국을 강타한 겨울 추위는 스스로 돌아섰지만 코로나19 이 녀석은 그리 만만한 상대라 아님을 초반부터 느낌이 싸하다. 현대의 무기로서는 무리이며 방어에 치중을 둘 수밖에 없다. 앞으로 2년 아니 10년, 그것도 아니라면 평생을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 녀석들은 하얗게 변한 세상의 맛을 알지 의문이다. 

윗세 대피소는 이른 시각부터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다. 왁자지껄 대화 소리와 음식의 향연에 까마귀가 때를 쓰며 울어 된다. 잠시 엉덩이를 붙일 공간마저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컵라면도 막걸리도 없지만 허기진 위장의 외침은 아무거나 달라며 보챈다. 구석에 자리를 잡은 나는 마스크를 살짝 벗고 김밥을 먹고 달달한 크림빵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힘든 산행의 피로의 여독을 푼다. 구름 낀 하늘이지만 겨울 하늘이 이렇게 높을 줄 몰랐다. 무심코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마지막 만찬은 그 어떤 것도 덤벼들지 못한다. 영실코스의 마무리라 할 수 있는 남벽분기점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여름의 울퉁불퉁한 돌보단 새하얀 눈길이 앞선다. 편안해진 걸음걸이에 몸은 자연스레 지금의 시간을 찾는다. 유선형의 UFO다. 몰랐다 한라산 위에 아무도 모를 우주선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웃세 누운 오름이라 정해놓았을지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품고 있나 보다. 지구를 떠날 생각 없는 코로나 19는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인이 뿌리고 간 바이러스가 분명하다. 하얀 마스크로 목을 죄어 오고 있다. 


아래 비밀


유난스럽다. 


 앞에     체력만 10대였더라면 놀고 놀아도 피곤과 추위를 잊었을 테지만 역시 이젠  


하루종일 놀아도 지겹지 않을 말동거리며 굴러다니는 눈만 피곤하다. 


웃세족은 오름

웃세 누운 오름

웃세 붉은오름

방애오름

웃방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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