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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Mar 10. 2023

작은 인연의 길

물드는 이호테우


작은 인연의 길


조 선생님을 알게 된 지도 아니 만남도 세 번째다. 시작은 우연이라지만 그 이후는 눈곱만큼 정도라도 만들어낸  만남이라 할 수 있다. 3월 7일 포기해 버린 길을 다시 찾았다. 두뇌의 오류로 뜻밖의 올레 16코스를 걷게 되고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 앞에 오름과 숲은 강행하기에 겁이 많은 나에게 감옥행이었다. 갈림길에 묶여 갈팡질팡하는 10분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1코스와 21코스의 콜라보처럼 16코스의 갈림길을 벗어나 바다를 마주하며 해변 도로를 따라 17코스의 중간 이음을 향해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였다.


해변길 위 17코스는 외도포구에서 시작이다. 맵을 켜 거리와 시간을 따져보았다. 거리는 올레 16코스 완주 거리와 맘먹는 13.5km 정도다. 만만하게 생각되었지만 오후 3시의 상황에서 조금 버거울 같다는 결론이지만 어쩌면 갈 수 있다는 의욕이 생겼다. 이미 반쯤은 발을 들여놓았기에 밀고 나갔다. 얼마 안 가 큰 오판이자 자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쉼 없이 계속 걸었지만 목적지가 가까워지기는 커녕 몸은 힘들고 급해진 마음만 조급해졌다. 시선은 자꾸 시간과 남은 거리를 확인할 뿐이다. 태양은 하늘을 환하게 밝혔지만 오후 4시가 지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일절의 망설임도 없이 포기라는 단어를 꺼내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16시 30분이라는 시간을 지난 후 다시 찾은 이호테우 해변을 걷고 있다. 이호테우 해변의 상징인 빨간 말과 하얀 말 등대가 멀리서 시작을 알렸다. 조 선생님도 몇 분 전 이곳을 지나갔다. 이번에는 결단코 만나리라 했지만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만들려 급히 움직였지만 역시 억지스러운 만남은 힘들다. 잔디밭에서 바늘을 찾는 꼴이다. 16코스와 17코스의 콜라보를 이어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되새겼다. 그런 나를 향해 등대는 여전히 ‘반갑다.’는 이야기를 보내왔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이면 만나지 않을까 포기하면서도 작은 불씨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작은 희망의 실마리를 꽉 잡는다. 한 사람의 찾아 주변을 살피는 눈동자와 급해진 마음에 숨만 차오른다. 쫓는 자가 얼마나 힘든지를 현실적으로 느낀다.


도두 추억의 거리를 지나 도두봉을 오르지만 있어야 할 올레 리본이 모습을 감췄다. 예전과 다르게 도두봉 올레 탐방길이 폐쇄되어 갈 수도 없는 조건이다. 끊어진 올레길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이호테우를 지나부터 뒤따라 오던 중후한 남자 두 분. 복장의 차림을 보아서는 올레지기임이 당연했지만 어떻게 보아서는 나를 졸졸 따라오는 기분이다. 마치 올레길 안내자가 된 것 같다. 돌아가 올레길이 바뀌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마 그들도 알고 있다. 10분도 안돼 금세 정상에 올랐다. 모든 생각과 상황이 변했다. 이미 끝나버린 만남, 생각에도 없던 도두봉 쉼터에 앉아있는 조 선생을 넓더란 등이 아니골덴 바지가 보였다. 연결고리가 철커덩 연결되는 시점이다.


“안녕하세요. 여기 계셨네요” 다행히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준다. 조 선생도 말할 상대가 그리웠던 걸까? 닫혀있던 입이 터졌다. 뒤이어 연륜이 있어 보이는 두 남성이 도착했고 역시 한 분의 주도하에 사진을 담기 시작한다.


“야~ 야~ 저기 서봐 비행기 지나갈 때 멋지게 찍어줄게” 도두봉 위에서 제주공항이 옆집 담너머 안마당을 들어다 보듯 환하게 보였다. 몇 대의 비행기가 있는지 알 정도다.


태양을 마주하고 찍어야 하는 상태로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5분 안팎으로 활주로를 날아오르는 비행기에 도전은 계속되었지만 쉽게 허락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거 안돼. 그만 찍자”


나이가 있어 보이지만 그들은 친구 사이였고 거리낌 없는 20대의 말투였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친구란 게 느껴졌다.


바로 그때 조 선생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선생님 흑백으로 찍으면 된다네요. 저도 지금 막 전문가한테 배웠어요.”


휴대폰 카메라 기능을 이제야 알았다는 것에 놀라웠지만 큰 목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끌렸다. 옆에 한 여성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비웃는 듯한 묘한 표정이 역력하다. 어쩌겠는가 나이 든 어르신 아니겠나. 설명에 이어 다시 도전에 나섰지만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그런 그들에게 손쓸 방법이 없다. 옆에 서 몰래 찍고, 찍은 사진을 보내줄지 말은 건네기만 하면 되다. 포기한 그들 앞에 조 선생이 나도 한 장 찍어 달라며 위치를 잡는다. 처음으로 사진을 찍어달라는 그에게 조금은 더 편해졌음을 느낀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17코스가 끝나고, 밥을 먹고 동문 시장을 들려 회를 사고 일몰을 보기 위해 이호테우 해변까지 하루의 일과를 이어갔다. 하루동안 입을 다물 수 없는 수다에 목이 아플 지경이다. 마스크는 입김으로 오랜만에 샤워를 한다. 붉은 태양을 보내며 우리도 서로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내게 좋은 사람이라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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