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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Mar 15. 2023

겨울 정복

그 아이들의 하루 22. 03. 15


다행히 만조에 이르지 못한 해수면. 푸릇푸릇 돌에 낀 이끼가 사람을 불러모았다. 광치기 해변을 지나 섭지코지까지 가야한다는 사명감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과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의 모습에 가슴만 까맣게 타들어간다. 알록달록한 복장에 감귤 모양의 모자를 쓴 아이에게 눈길이 끌린다. 바다를 활보하는 누나와 동생의 캐미가 너무 재밌어 보인다. 바다로 성큼성큼 들어간 남매는 허리를 숙여 뭔가를 찾는다. 먼저랄 거 없이 누나가 뭔가를 잡고 들어올린다. 보말껍데기에 들어간 작은 게를 훔쳐본다. 다음은 남동생이 소릴 지르며 누나를 부른다. "누나 여기 큰 게 있어" 큰 게라니 알만하다. 자칭 판매하는 홍게, 꽃게 등과 같은 갑각류는 아닐 사실은 당연하다. 5살 아이의 손바닥정도 크기보다 작은 게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것도 모자라 꼬맹이가 들어올린 게는 다리를 축 늘어트려 다리를 따라 더덕더덕 붙은 갯고동를 휘두른 이미 숨이 끊긴 상태다. 남동생과 누나는 요리조리 한참을 바라보던 끝에 잡았던 그 장소에 살포시 내려 놓는다. 표정은 살아있는 게를 잡지 못해 아쉬운 것 같으면서도 게의 죽음에 슬프고 언짢은 표정을 짖는다. 슬픔도 잠시 만족한 무엇을 찾지 못했는지 20m 남짓 거리에 솟아오른 바위로 발길을 돌린다. 동동 무릎위까지 걷어올린 바짓단이 닿을랑 말랑 파도가 밀려온다. 옷일 젓을까 엉거주춤거리며 걷는 뒷태가 귀엽기도 하지만 추운 겨울에 바닷물에 빠질까 위태롭다.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에도 바닷물이 차갑게 느껴지는 나다.  발을 몇번 담그며 적응을 마치고서 들어가야 되는 차가움은 쓰잘때기 없는 걱정에 불과하다. 겨울의 끄트머리,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의 바다라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활보한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다. 요상한 광경에 의혹이 생겼고 바닷물이 따뜻하지 않을까 손가락을 바닷물에 담갔다. 예상대로 출렁출렁 춤을 추며 밀려오는 바닷물은 화장실 샤워기에서 나오는 차디 찬 물보다 더 훈훈함이 느껴진다. 순간 얼음이 녹는 남극, 뜻하지 않은 바다에 열대어가 나타나는 현상 등의 지구 이상 기후가 머리속을 휘갈긴다. 어쩌면 좋을까? 아이들은 다행이라지만 멀고 먼 따뿐한 걱정만 앞선다.


어느새 1평 남짓 넘는 바위에 올라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며 "나 여기까지 왔어"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이다. 전쟁에서 뭔가를 거머쥔 감정보다 새로운 도전을 정복했다는 희열을 맛보는 누나와 동생이다. 2분의 쪼여오는 스릴에 힘들었던지 바위에 걸터앉은 남매는 감상에 젖는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또한 한라산 백록담을 올랐던 나만의 통쾌함이 다시 북받쳤다. 정복, 성취감이란 그것을 느껴보지 못한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맛이다. 맛중에서도 특급 스페셜이다. 추운 겨울 바다를 뚫고 3월의 파도가 치는 겨울 바다를 정복한 어린 남매의 체력이 부럽게만 다가온다. 그런 남매에 자극이 된 두뇌는 괴성을 지른다. 한반도의 가장 아름다운 한라산 1955m를 넘어 앞으로 더욱 더 높은 동북아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대만의 옥산 3,952m를 타깃으로 정한다.

1분, 5분 시간이 흐를수록 파도의 물결은 거칠어지고 밀물로 수위는 올라갔다. 남매가 잠시 엉덩이를 바위에 붙이는 가 싶더니 바로 일어나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자연의 가르침이다. 행복은 쉽지 않다고, 행복은 노력하지 않으면 잠시 왔다가는 것이라고. 더 즐기고 싶은 마음에 출렁이는 파도는 편안치 않았음이다.

마라도에서 149km 떨어진 이어도에 거쳐 거슬어오른 파도가 밀어부치는 힘은 만만찮다. 작은 체구에 자연의 힘이 버거운지 휘청거린다. 넘어질까 불안불안한 보는 사람의 심장은 이따금 조마조마, 낭떠러지 끝에 선 기분이다. 파도에 쓸릴듯 말듯 휘청거리지만 버티고 결국 건너오는 또다른 성공의 맛을 맛본다. 스릴을 맛보고 다시 바다 주변을 서성이며 무엇을 찾기에 바쁘다. 남매가 그토록 찾는 보물은 뭘까? 난 첫번째 보물을 찾았다. 하찮게 보이지만 바다의 중엄한 산맥, 거친 파도를 견디며 선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작은 바위 언덕이다. 두 남매의 거친 겨울 정복은 이제 막 서막을 여는 순간이다.



이어도 : 이어도는 제주의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km, 중국 동부 장쑤성 앞바다 가장 동쪽의 퉁다오로부터 247km 떨어져 있는 수중 암초로서 한국과 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2003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고, 해양·기상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해경의 수색 및 구난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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