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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Jul 01. 2023

개좋은 날 개 나쁜 날

20.06.03



아침 5시 기상. 무슨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잠자리가 불편해서이다. 4-5년전부터 알게 된 동생이 비행기 삵이 싸다며 제주로 놀려온 것이 발단이다. 숙박도 자동차도 예약을 모두 끝낸 상태이니 할 말조차 가슴속에 묻어야 했다. 나의 집은 제주 삼도일동이지만 졸지에 육지에서도 잘 하지 않는 외박을 강요당하게 생겼다. 동생은 숙박을 취소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그것도 문제가 심각하다. 코로나로 인해 취소도 그렇지만 대락난감한 상황에 닥쳤다. 싸게 예약한 숙박의 취소 수수료가 숙박비만큼 비쌌다. 이해되지 않는 바가지를 씨우려는 어느 건물주의 농간이다. 이러지도 저럴수도 없는 노릇에 생각지도 못한 외박을 저질려야 할지도 모른다. 밤의 시간은 이렇게 잠을 못들게 한 원인은 외박이란 한단어로 시작되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고 했는데 의문이 드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 새는 피곤하지 안할까? 밤새 닥칠 천적에 잠을 잘 수는 잘까? 새벽 1시를 넘기고 눈을 감았지만 신경의 세포는 낮보다 더 활발했다. 째깍째깍 시간은 가고 살짝 눈을 뜨는 순간 또 다른 하루가 눈을 떳다. 자는 둥 마는 둥 아침해가 밝았다. 

지뿌둥한 눈을 비벼 뜨며 휴대폰을 손에 들고 하루의 신고식을 치른다. 

날씨 상태를 보아선 "와~" 하늘도 파랗고 바람도 없다. 이런 날엔 산이 재격이다. 

"어디가죠. 어딜가요." 연신 나에게 질문을 보내는 동생에게 단호히 한마디를 던진다.

"산, 이럴때는 산이야." 산은 날씨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제주 날씨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오늘밖에 없다며 갈팡질팡하는 동생을 설득에 나선다. 말 주변도 입담도 그렇게 없는 나의 말에 결국에 ok. 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제주의 산이라고 해봤다. 설문대 할망이 돌멩이 하나를 휙~ 던져 만들었다는 1951m의 한라산 뿐이다. 그외 작은 오름도 365개 있지만 성에 차지 못한다. 설문대 할망도 동생이 왔다는 반가움을 알아챈 듯 기온은 덥지도 춥지도 않게 적당히 시원한 바람의 입김을 불었다. 1951m의 백록담이 흔히 보이는 정상은 아니지만 한라산을 처음 오르는 동생은 벌써부터 흥분에 빠졌다. 목을 채운 줄을 풀면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강아처럼 보인다.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스럽게 조건을 파악한 상태다. 지금이라면 한라산 남벽이 보이는 영실에는 철쭉이 만개할 것이다. 비록 틀린 답정너가 될지라도 100%로 확신감을 가졌다. 

"준호야 가자" 무겁지만 빵빵한 가방을 메고 출발은 산뜻하다. 영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작은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첫번째 고난의 길로 진입이다. 90도라면 뻥이고 진심을 담아 80도는 될 것이다 숲을 지나면 평온을 맛봤던 심장이 요동친다. 낚시줄에 걸린 물고기가 살기 위해 도망치려고 팔딱팔딱 뛰는 모양새다. 손을 살며시 심장위에 올려본다. 살아있음을 느꼈지만 이렇게 빨리 뛰어도 괜찮을 걸까. 걱정과 두려움이 휩싸인다. 난생처음 심장의 요동을 느껴보는 듯하다. 

가자~ 숲을 지나 눈깜짝할 새 시야가 트인 첫번째 쉼터다. 와아~ 감탄사가 터질만큼 전망이 좋지 않다. 쉼을 잠시 고르고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헉헉 숨이 금방 다시 차오르고 몸을 타고 찝찝한 빗방울이 몸을 덥친다. 이마를 닦아도 닦아도 줄줄 흐르는 땀, 맑은 하늘에서 머리위로 비를 뿌렸다.

참지 못한 땀방울은 땀구멍을 뚫고 정상에 닿을 때까지 계속이어졌다. 눈을 침입해 눈이 쓰라렸고, 입가로 흘러들어 뜻하지 않은 소금물을 섭취하기까지 이르뤘다. 1L의 땀 배출로 인한 수분이 급선무다. 바짝 마른 입안은 단내가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준호야 물 좀 마시고 가자"

"전 아직 괜찮은데.."

"젊음이 좋긴 하구나"

"에이 뭐~ 형도 아직 그 나이면 젊은데 뭘요."

100세 시대라는 현대에 들어서 45세라면 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30대 중반이 말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나이를 떠나 체력은 내가 한 수 위다. 죽도 못 먹었을 법한 마른 몸매지만 한라산 백록담을 동네 뒷산 오르듯 오르는 나이다. 눈, 코, 입을 방해하는 땀만 아니라면 한라산의 4.5배 높은 8839m의 에베레스트 산도 거뜬하다. 

정상이 가까워지는만큼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장관을 이룬다. 서쪽으로 뻩은 사제비, 만세, 민대가리, 망체오름 등의 현람함과 서쪽의 끄트머리 바다앞 산방산과 송악산까지 제주의 반을 눈안에 담는다. 앞서 봤던 영실 병풍바위와 기암도 빼놓을 수 없다. 구경꺼리는 그뿐이 아니다. 정상을 향한 계단을 따라 줄지어 선 여행자의 행렬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입은 어느새 "안녕하세요" 란 말을 자동적으로 내뱉는다. 몇번이나 인사를 나눴을까? 덩달아 뒤를 따르던 준호도 인사말을 던지기에 바쁘다. 

한라산의 단상에 오르자 세계적으로 가치를 입증받은 구상나무의 고목이 눈길을 빼앗는다. 비록 앙상한 뼈만 남겼지만 고귀함이 뿜어져나왔고 신의 기운이 깃던 듯이 기운이 덮쳐온다. 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준호야 어여 달려가 서봐"

포즈야 그렇지만 사진빨이 좋다. 

나무데크를 감싼 구상나무 가지 사이로 한라산의 남벽이 점점 시야를 뺏어가는 순간 더 강렬한 봄꽃이 다가선다. 분홍빛을 발산하는 벌 보단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철쭉이다. 역시 준호와 나의 마음도 한 순간이다. 

또한번 삼진 아웃 감탄사를 다시 발산한다.

"와~ 오~~ 대박~"

 한라산은 백록담만 품고 있는 게 아니다. 영실이라는 금괘가 사계절을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간다. 

아직 끝나진 않은 하루가 개 좋고 개 나쁜 일로 준호와 동행의 기억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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