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작가다공모전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나의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직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라서 두려움 없이 무데뽀 정신으로 마구 달려들었다. 젊으니까 힘든 줄도 몰랐다. 단, 시간의 앞에서 자아의 상실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젊음에 비해 나만의 시간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월화수목금토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시간은 오로지 회사란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큰 건 바라지도 않는다 작은 자유를 바랬고,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이었지만 겁 없던 청춘이었기에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여건이 좋은 회사를 찾기 위해 스스럼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때의 나의 또래였다면 대부분이 그랬다.왜 난 그때 정규직을 몰랐을까?
두 번째 직장은 쇼핑 물류센터로 첫 직장보다 근무 조건은 훨씬 좋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10년이 넘는 회사 생활이 삐거덕거렸다..
근무 시간은 5일인데 비해 월급도 좋았다. 5일 근무라는 조건은 처음 만나는 나에게 천국이었다. 야근이 많다는 것뿐 넉넉한 점심시간을 제공했고 더불어 맛있는 간식도 주고 활동성이 많았던 나에게 있어 최고였다. 정신없이 멍하고 딱딱했던 처음 마주했던 직장과 달라 놀라웠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에 있어 웃음이 끊이지 않고 아침이 되면 상쾌했다. 시간은 지날수록 동료에 대해 알아 갔고, 다음날은 형과 동생으로 되고, 그다음 날엔 가족 같은 분위기에 심취해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되어버렸다. 고된 야근도 즐거운 하루였고, 하루하루 다음날이 기다려졌다. 회사란, 자고로 짜증이 나고 가기 싫은 곳인 데 반해 구미호에 홀린 것처럼 자꾸만 가고 싶었다. 남들이 이런 나를 본다면 “무슨 그런 회사가 있어. 말도 안 돼!” 반문했을 만큼 행복했다. 그러나 행복했던 시간도 몇 달 뿐 얼마 가지 못했다. 회사에 정이 들고 빠져들 때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위기에 빠져버린 회사는 구조조정에 나섰고 비정규직이었던 난 지체 없이 회사로부터 버림을 아니 떠나야 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부부간 이혼을 하더라도 일말의 통보와 시간을 주는데 느닷없이 “나오지 마세요.”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남과 북의 관계에 커다란 장벽이 가로막혀 서로의 입장을 알고 있지만 서먹서먹한 남북의 동침, 오묘한 그것과 같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내가 못해서 잘린 것이 아니다. 난 나의 능력을 알고 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취업포털 사이트를 정신없이 뒤졌다. 직장의 달콤한 맛은 한동안 잊히지 않았고 그러한 장소를 찾기 위해 손과 눈은 더욱 바삐 컴퓨터 화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고민 끝에 한 번 맞보았던 물류센터를 찾았지만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었다. 달콤한 맛에 취해 있던 난 그때까지 비정규직이란 아픔을 알 수 없었다.
세 번째 직장이 마지막 노선이 되길 바랐다. 첫 번째, 두 번째의 경험을 토대로 사람에게 다가감에 있어 순조로웠고 적응도 빨랐다. 일도 일이었지만 화장품 회사란 곳에 더 매력을 느꼈다. 화장품 회사로 출근을 한다는 전제는 ‘이제 나도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다’란 생각에 흥분과 행복이 마구 용솟음쳤다. 선물도 주고 작업도 걸어 볼 날이 오다니 총각이었던 나에게 꿈만 같았다. 주어진 일은 오더(order)가 내려오면 개수에 맡게 물건을 꺼내어 박스에 담는 일로 단조롭고 어렵지 않아 힘들지도 않았다.
가끔은 짜증도 나고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고난도 불쑥 튀어나왔지만 그다지 못 이겨낼 어려움도 아니었다. 회사 생활에 있어 잠깐씩 찾아오는 갱년기였다. 그렇게 동료들과 평화롭게 형, 동생으로 지내온 시간도 2~5년을 지나 모든 게 익숙해져 갈 무렵. 비정규직이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의 불쾌감이 찾아왔다. 최선을 다한 대가로 회사 내 최우수 사원도 몇 번 해보았지만, 정규직이 된다는 희망은 해가 지날수록 불확실해졌다. 시간이 흘러도 정규직과 다르게 대우와 급여가 낮았다.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기 싫었다. 고통을 즐기며 더욱 열심히 회사에 몸을 던지면 나아질 거라 믿었다.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나온 “김혜수”의 역할처럼 비정규직이지만 특출한 능력과 과감한 리더십을 가진 나였으면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허탈감과 잊혀간 달콤한 그리움 뒤 아무것도 없는 비정규직이란 지옥의 굴레였다.
홍대리 : “야야~ 저건 저렇게 해야지. 내가 뭐랬어. 생각이 있는 거야.”
비정규직인 나 : “네 알겠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 수정을 하고 안도의 숨을 쉬려는 찰나.
최대리 : 누가 이렇게 하라고 했어.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 생각을 좀 해”
나의 생각도 나의 의견도 없는 복종만은 바라는 상사들에게 이리저리 차였다. 감당해야 할 일은 점점 늘어났고 상사의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잦아들고 남자란 단어를 버리고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다. 다시 1년, 2년 숱한 고통을 견디며 참아왔지만 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벼랑 끝에 내몰리고 말았다. 지칠 때로 지친 몸과 마음은 결국 붉은 핏덩어리를 토했고 일주일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병명은 스트레스와 피로로 인한 위에 구멍이 뚫린 위궤양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이렇게 나를 혹독한 지옥 속에 버려놓았을까?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한 번 더 다짐을 하며 회사를 출근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고 더욱 혹독한 고난에 시달렸다. 아침마다 발길이 향한 곳은 회사란 지옥이었고, 출근은 하데스에게 끌려가는 지옥의 도살장 불구덩이였다. 오랜 시간 동안 아침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회사는 현실의 지옥이었다. 몸과 정신이 더는 견디지 못한 난 첫 직장과 같은 퇴사를 결심했고 후회는 없다. 두려움이 있어야 더 낳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나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중, 두려움도 고통도 없는 나만의 책을 만들겠다는 오직 하나의 도전뿐이다. 실패와 두려움에 꽁꽁묶여 있을 필요는 없다. 조금 더 나을 길을 걷기 위해 나의 꿈은 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