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귀환 동네 한바퀴 돌고 추억속으로
나의 학교 생활을 이랬어~! 너의 학교 생활은 어린시절은 어땠니. 지금도 마을은 시끌벅적 하니?
내가 태어난 곳은 동서남북 산으로 둘러싸인 깡촌이다. 읍내를 나가려면 15분의 짧은 거리지만 그곳과 완연하게 다른 모습을 가졌다. 논과 밭 그리고 산과 몇 채의 집만 덩그렇다. 이상하게 과거보다 더 퇴보되는 것 느낌마저 든다. 1990년 그 당시에는 동네가 시끌벅적할 정도로 사람도 많았고 사람의 냄새가 났다. 작지만 생활필수품과 아이들이 좋아할 과자나 아이스크림도 파는 구멍가게보다 큰 슈퍼도 있었다. 이젠 그것마저도 사라진 지 20년이 다 되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20분이면 충분하다. 어렸을 땐 엄청나게 컸던 동네가 언제가 이렇게 작아져 스머프 마을이 돼버린 걸까? 집터만 덩그러니 남겨놓고 흔적조차 사라졌다. 풀만 무성히 자라고 숲에서 내려온 나무가 차츰 땅을 빼앗았다. 동네를 떠나가듯 짓던 개는 입을 다물고 소를 몰고 산과 들로 풀을 뜯기로 가던 동네 아저씨의 허리는 굽어 할아버지가 되었다. 곡식으로 가득했을 밭은 홀로 남겨져 풀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소가 없는 산과 들은 풀이 점령해 버렸다.
골목길마다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움직이기라도 할 때면 나를 반기는 건 지나가는 풀과 돌, 흙 길고양이를 마주칠 뿐이다. 밤중에 나온 마실에는 고양이의 날카로운 눈동자의 눈빛에 닭살이 오를 정도로 무섭고 조용하다. 10년 20년이 지나고 동네는 텅 빈 조개껍질처럼 무료하고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내가 살던 동네는 이렇게 차츰차츰 늙어갔다. 비가 내릴지도 모르지만 궁금증을 풀기 과거를 따라 길을 나섰다.
비가 내리는 날 카메라 하나를 챙겨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섰다. 제주 집을 빠져나와 시골집 생활도 일주일. 어딜가나 코로나19가 따라다녀 몸살을 알았다. 산과 들로 둘러싸인 시골 시간이 지날수록 갑갑해져 왔다. 조금이라도 걷지 않는다면 마음은 곧 폭발을 할 것 같았다.
동네를 감싼 언덕 고개를 하나 넘었다. 1990년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걸었던 구불구불한 들길이 나왔다. 가끔 눈으로 봐왔던 길, 오랜만에 직접 걸으니 그리움과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들판에는 벼, 콩, 수수 등의 곡식이 자랐고 길가에는 들꽃이 난잡하게 피어있다. 마치 반갑다는 인사를 보내듯 바람결에 살랑살랑 손을 흔든다. 아는 척을 하는 것을 보니 초등학교 시절 다닐 때 만났던 들꽃의 손자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한쪽에서는 바람을 타고 군인 아저씨의 목소리가 철조망을 넘고 들판을 가로질러 들려왔다. 훈련을 받는 걸까. 알 수는 없지만 어릴 적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내었다. 5교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항상 원칙적으로 들렸던 경계초소. 우린 10m의 공간을 띄워두고 견우와 직녀처럼 대화를 나눴다. 초등학생 때라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1시간이란 시간을 군인 아저씨에게 받쳤다. 기억도 나지 않는 대화는 어렴풋, 떠오르는 건 나도 먹을 게 없던 불량 과자나 봉지 라면을 던져줬다는 것뿐. 난 그때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소중한 걸 줄 만큼 그땐 군인 아저씨를 자체를 무척 좋아했던 게 틀림없다. 지금은 그 군인 아저씨마저 나의 어린 동생 조카가 되었고 그렇게 세월은 나에게 나이를 던져줬다. 좋아했던 군인도 커서는 싫어지더라. 세월이 흘렀다는 생각에 아련한 기억이 퐁 퐁퐁 더 그리워진다. 기억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보일 듯 말 듯 변한 길은 묘한 감정을 주섬주섬 들춰 내었고 한곳을 멍하니 바라본다. 초등학교 최대의 아찔한 순간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동생들과 집으로 돌아가려 교문을 나섰다. 그때부터 섬뜩한 기운이 주위를 맴돌았고 쫓기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한 학년 위의 한 남자 녀석이 얘가(친구) 자기를 죽이려 했다며 날카로운 과일칼을 손에 쥐고 죽이겠다며 따라온 것이다. 아무 이유도 모르는 우린 어린 마음에 죽을힘을 다해 4km쯤 거리를 도망쳐야 했다. 두려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겨를도 없었다. 친구를 위해 방어를 해 주고 싶어도 칼이란 무서움에 몸은 저절로 도망을 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에 땀은 나고 숨은 가빠져 힘들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밭을 가로지르고 산을 넘고 달려 가쁜 숨을 쉬며 집으로 들어왔고 그렇게 끝이나나 싶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일렀다. 바로 뒤를 따라 쫓아 들어오려고 했기 때문이다. 두려움 마음에 보이지 않는 엄마 아빠를 쉴 새 없이 불러댔다. 무슨일이라도 터진 줄 알고 금방 달려온 엄마, 아빠를 마주쳤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친구는 경기를 일으켜 더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전학을 가야했다. 이별의 시간도 못 가진채 이별을 고했다. 학교에까지 번진 사건은 소문에 소문이 퍼졌고 발단의 이유를 들어보니 꿈속에서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참 황당했지만, 그 사건의 두려움은 트라우마가 되어 계속 따라다녔다. 늘 그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품고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악몽 같지 않은 악몽은 스르륵 몸을 일어켰고 털을 곤두세웠다. 그때를 생각하면 겁 많던 내가 우습고 바보같고 한심해 보인다. 악몽이 깃던 자리의 들판과 산의 모습은 그대로이지만 먼지 날리던 흙길이 아스팔트로 변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나무 위에 앉은 새들의 노랫소리만 들린다. 논에 울어되는 개구리의 화음만 들린다. 바뀌었지만 익숙한 길을 살짝 돌아 그땐 어려서 가지 못했던 길로 빠졌다. “오~ 이런 길이 있었구나”. “잉~ 왜 이 동네가 여기에 있어” 과거도 미래도 기억이 없는 공간, 현재뿐인 공간이 새롭게 다가왔다. 한적한 길 위에 남은 건 들과 길과 마을뿐이었지만 왠지 그게 좋았다. 마음이 평온해져 왔다. 한참을 걷다 보니 여기가 어디쯤일지 알 길이 없었다. 단지 마을 이름이 여기라며 알려줬다. 그러고 보니 조금만 더 걷다 돌았어야 할 지점이다. 짧은 시간이었다고 생각됐지만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지나치고 말았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빗방울이 우산 아래로 뚝뚝뚝 신발에는 빗물이 들어서기 일보 진 적이다. 신발이 젖기 전에 돌아가기로 했다. 그때였다. 어떤 길을 걷던 늘 나를 사로잡는 경운기가 논길에 주차된 것이 눈에 띄었다. 걸음은 멍하니 구미호에게 홀린 듯 이끌려서 빗속에 가져왔던 카메라에 풍경을 담아 눌렀다. 찍고 또 찍고 각도를 바꿔가며 찍었지만,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경운기를 번쩍 들어 좋은 위치에 옮기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못했다. 난 천하장사도 기중기도 아니었다. 30장을 찍었을까. 그런대로 후회 없는 만족할 모습을 담았다. 난 왜 경운기라면 어딜 막론하고 사족을 못 쓰는 걸까? 촌놈이라는 티를 내는 것일지도 아니면 전생에 경운기와 같은 달구지였을지 모를 일이다. 그제 서야 누그러진 마음은 발길을 집으로 향했다. 크게만 느껴졌고 누빌곳이 많았던 곳, 이젠 작고 초라한 모습에 마음마져 서글퍼온다.
마주한 학교 앞, 간판은 사라지고 어지럽게 자란 풀은 사라져 버린 추억을 눈물로 토해냈다. 미루나무도 담벼락도 사라졌지만 그대로 남아있는 건 2층 교실 건물뿐. 저기는 1학년 교실, 또 저기는 6학년. 마치 엊그제 친구를 봤던 것 같은데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풀만 무성한 운동장에는 오징어, 삼 년 고개 등 게임에 빠져 노는 친구의 모습만 알련 거린다. 친구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고 돌아오는 건 썰렁함뿐이다. 나뿐만 아니라 학교를 찾아 올 친구들은 대부분 그러리라 생각된다. 내가 다녔던 학교가 사라졌다. 어떤 맘이 들까? 이제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7년을 오고 갔던 길로 그 모습이 궁금해져 온다. 길옆에는 친구의 집도 쉼터도 있을 것이다. 벌써 머릿속엔 그때의 그림이 그려진다.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이 길이 마냥 그립고 좋다. 다음에 또 걷다 보면 또 다른 추억이 방울방울 맺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