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번외전

용문사 가는 길 <버스 타고 다시 걷고1>

국보가 있는 용문사로

by 병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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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도보 여행


아침 8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주말이 되면 비가 내린다 한다. 버스도 타야하고 걷기도 해야 한다. 눈꺼플은 아직 200근이다. 찬물을 얼굴 위로 쏟아부으니 꿈틀꿈틀되던 정신이 번쩍든다. 잠이 훅하고 날아간다.

산새의 조용한 만남을 꿈꾸며 버스를 타려 정류장으로 갔지만, 8시 40분이던 버스는 떠나고 말았다. 젠장 다음 버스는 1시간30분 후로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버스 시간을 체크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온 내 잘못이다. 으이구~ 바보 스스로에게 짜증이 마구 밀려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 길이 없다. 떠나버린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냥 멍하니 버스 시간표만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릴 뿐이다.

한숨만 푹푹 쉬는 사이 9시가 되었고 버스 한대가 다가왔다. 아무데나 갈까? 그때였다. 버스 앞 유리에 꽂힌 팻말에 용문사가 적혀 있다. 손을 들고 잽싸게 버스를 세운다.

“용문사 가나요.”

“네”

이게 뭔 일이람? 분명히 버스는 떠나고 없을 것이다. 그런 버스가 유령처럼 스르륵 다가왔다. 행운일까? 악연일까?

어쨌든 다행이다. 기막힌 타이밍에 딱 알맞은 시간이지만 ‘호사다마’, ‘새옹지마’다. 잘 굴러가던 버스의 엔진에 이상이 생겼고, 버스는 버스 차고지로 이동했다. 시간이 조금 늦긴 했지만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버스를 갈아타고 용문사로 달렸다. 버스 안에는 기사를 포함해 4명뿐이다. 첫 주자로 아주머니가 내리고, 다음으로 모자를 꾹 눌러쓴 할아버지가 내렸다. 결국 버스엔 기사와 나 뿐, 텅 빈 좁은 공간은 어색한 감정만 감돌았다. 참고 있던 입을 열었다.

“기사님 용문사 앞까지 가나요. “

“네.”

정작 말을 걸었지만 짧은 대화만 오고 갈뿐, 20석 되는 작은 공간의 정적을 깨기엔 힘이 부쳤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 다음 정류장에서 두 명의 할아버지가 정적을 깨며 버스에 올랐다.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에 조용함은 산산조각이 났다. 알 듯 말 듯한 대화의 줄거리는 코믹스럽기도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는 명작 중에 명작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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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에 도착하다>


읍내에서 30분, 드디어 목적지인 용문사 주차장이다. 심장보다 마음이 먼저 미친듯이 뛰며 사찰을 한바퀴 돌았다. 차오른 쉼은 내쉬고, 맑은 공기를 양것 들이키며 돌담길을 따라 올랐다. 성보 박물관 건물을 지나 5층 석탑과 3층 석탑이 품은 보광명전을 마주한다. 그 이후 스님 한 분이 보광명전으로 들어가고 앰프에서 ‘지지직’ 잡음이 사찰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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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똑똑똑” 목탁 치는 소리와 스님의 청량한 염불소리가 용문사를 가득 채웠다. 장소를 옮기려던 발걸음이 멈추고 스님이 읊조리는 불경소리에 내 몸은 다시 보광명전 앞으로 향했다. "나미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사찰을 가득매운 스님의 중후한 목소리에 멍하니 넋을 잠시 내려놓는다. 태양은 뜨겁고 더위에 짜증이 밀려오던 중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역시 난 사찰 불교를 따라야 할까?

눈을 감고 듣던 염불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어 눈을 떳다. 염불소리만 사라진 게 아니다. 불상 앞에 앉아 있는 스님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하하' 보광명전 옆으로 스님이 축지법을 보이고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으니 스님도 밥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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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를 만나다>


용문사는 천연고찰로 대장전과 윤장대가 2019년에 국보 제328호가 있다. 그로 영주의 부석사의 ‘무량수전’을 비롯해 최고의 자리에 앉은 샘이다. 예천이란 작은 ‘군’이 명성을 좀 떨칠 수 있게 되었다. 국보를 보존해야 하는 스님들의 임무도 한층 더 막중해졌다.

허기진 배로 몸에 축척되었던 에너지가 고갈되어 갔다. 다리마저 후들거렸고 몸은 땡볕에 익었다. 윤장대 앞 계단에 잠시 엉덩이를 붙인다. 바람이 솔솔 불어와 흐르는 땀방울을 식힐 때 가방에 가져 온 초코파이 하나를 꺼내 먹는다. 덥지만 달콤한 초코는 허기진 배를 달랬다. 대장전과 윤장대를 돌아 국보만큼 무시 못 할 문효 세자 태실로 올랐다. 430m의 거리로 5분이면 충분하다.

만월당과 관음전을 지나 풀과 나무가 우거진 시멘트길로 들어섰다. 한낮이었지만 풀숲이라 모기때가 극성을 부린다. 옷으로 드러난 살에 주사기를 꼽고 피를 빨아들인다. 원하지 않던 현혈을 하지만 그 고통이 장난 아니다. 가려워 손이가고 또 손이가고 뻘겋게 부어오른 발목과 팔뚝에 현혈의 상처만 볼록볼록 올랐다.

안내판에 적혀있던 5분은 7분이 되었고 점점 깊이 숲속을 향했다. '부스럭' 작은 소리에도 심장이 깜짝 놀란다.

15평 되는 땅 위에 아기 태항아리를 묻고 봉분을 만들고 비석이 세워 놓았다. 22대 조선의 왕 정조의 맏아들로 1984년에 세자 책봉되었으나 홍역으로 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문효세자. 홍역만 아니었다면 왕이 되었을 것인데... 그럼 용문사는 없던 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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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을 누비고 쉬며 2시간이 흘러갔다. 하필이면 기온이 33도. 온몸이 태양의 열기에 불탔고 뜨거움은 몸의 허물을 벗겼다. 시간이 언제 올지 모를 버스의 행방은 묘연하다. 주변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구세주를 만날 수 있는 희망이 없다. 5.6km에 달하는 초간정을 향해 아스팔트 도로를 그냥그냥 따랐다.


“걷기에는 딱 좋은 날씨네.” 헉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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