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번외전

미스터 초간정<도보에서 다시 버스로2>

용문사에서 보는 초간정 "미스터 션사인"

by 병욱이


뜨거운 볕만 없었다면 누워서 떡먹기였을 5.6km의 거리는 만만치 않다. 벚나무 가로수가 만드는 그늘을 찾아 요리조리 아스팔트와 위험한 곡예를 펼친다. 까만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정신이 혼미하다. 표면의 체온은 훅 달아올라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물씬 든다. 그늘이던 물가를 찾아 도망쳐야지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푸른 들판뿐이다.

앞도 옆도 들판으로 가로막혀 보이는 건 오직 녹색공장이다. 뱅뱅 둘러싸여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에 빠졌다. 논에선 한 달 전 모내기 한 벼가 자랐고 밭엔 콩과 고추, 옥수수 등 많은 작물이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억센 풀과 뒤엉켜 중2의 반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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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을 깬 개OO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걷는다는 건 쉬우면서도 힘겨운 일이다. 걷고 걸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 걷는 기분이다. 언제쯤 끝날지 모를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길은 평탄했지만, 초록 잎에 파묻혀 숨이 막히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간혹 사람의 그림자 보일 뿐이다.

용문사에서 부터 졸졸졸 흐르던 물줄기는 도랑이 되었고 다시 시냇물이 되어 흘렀다. 평온한 정적을 깬 건 툭하고 갑자기 튀어나와 사납게 울부짖는 한 마리의 개였다. 묶여있는 쇠줄이 끊어질 것 같이 흥분되어 나댔다. 그냥 무시하면 되겠지 했지만, 쉬이 개의 짖음은 끝나지 않았다. 나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 모양이다. 걸음을 바꿔 뒷걸음치며 눈을 부라리며 쳐다봤다. “멧돼지를 만나면 등을 보이지 말라. 눈을 마주치고 소리를 지르지 말라.” 경고문을 본 게 기억났다. 멧돼지에게만 통하는 방법인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왜소해 보이는 작은 어깨와 몸매 때문에 나를 얕잡아 봤다. 작은 어깨의 무서움을 보여주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개란 녀석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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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澗亭 <초간정>


커브 길을 돌아 서로의 모습이 사라지자 다시 고요함속에 새들의 지저귐과 물소리가 다시 들렸다. 지루 할 짝이 없다고 생각한 것들이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되어 돌아왔다.

40분이 지나 도착한 곳은 원류리 마을 앞 초간정. 암반 위에 돌을 쌓아 올린 정자로 시 한수가 읊어질 모양이 난다. 실세는 인기척 하나없이 새들마저 조용했다.

한때 이병헌, 김태리, 유연석 주연의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 방영되어 더욱 유명해진 초간정은 몸살도 알았다. 세간에 이름을 떨치고 많은 사랑을 받은 간정이가 구슬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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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이념을 이어


초간정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권문해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심신을 수양을 위해 세운 정자다. 1592년을 시작으로 불에 탄 게 2번. 온갖 고초를 격은 초간정은 권문해의 증손자의 아들인 권봉의가 새로 지었다. 그 이후 고종 7년 후손들에 의해 고쳐짓고 현재의 초간정의 모습을 이어왔다. 본관이 예천인 “권문해”는 문과에 급제하여 대구지시와 좌승부지를 지냈고,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저자이다. 그로 인해서였을까? 용문면에는 눈만 돌리면 보이는 권씨에 대한 지명이 참 많다.

정자 난관에 올라 뻥뚫린 창으로 바라보는 경치를 즐기는 사이 콧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향기마저 서로 다른면을 보이는 안과 밖의 모습은 천지차이다. 암반을 돌아 물줄기가 좔좔 흐르고, 소나무의 향기가 바람이 되어 살랑살랑 춤을 추는 듯하니 권문해가 반할 만하다. 초간정도 그의 스승 퇴계 이황이 머물던 도산서원의 명맥이 이어졌다. 학문을 다지며 놀기에 딱 좋고 잘 짜여진 구조이다. 누워서 낮잠 한 번 잤으면 좋겠다. 아스팔트 위에서 데인 볕의 뜨거운 열기가 식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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