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1 관문주흘관에서3 관문조령제까지]
습도는 58%, 온도가 33도 하늘은 파랗다. 햇볕이 닿는 순간 하얀 피부가 익어가는 하루다. 그나마 바람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공기의 흐름을 바꿨다. 몸 구석구석 바람의 소용돌이가 휘감아 더위를 뺏는다.
이렇게 쉬운 줄 몰랐다. 그전에 이렇지 않았는데, 어찌 버스가 이렇게 많아졌을까. 버스를 타고 1시간이면 문경시 상초리 새재 도립 공원 주차장에 다다른다. 다소 한산한 주차장은 그림자 하나 없이 뜨거운 볕만 내리쬔다. 뭐라 말할 것도 없이 더위로부터 도망치듯 나무 그늘로 향했다. 그것이 끝이었다면 섭섭했을 것이다. 그 너머 흐르는 냇물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시끌벅적 외침이 시작된다.
맑고 쾌청한 물의 흐름에 귀가 뻥 뚫렸을 뿐 아니라 마음마저 상쾌하다. 습도의 분포가 낮은 이유로 그늘의 향기가 더 차갑다. 끝 같은 맺음은 시작으로 이어졌다. 나무 그늘을 벗 삼아 문경새재 1 관문 조령제로 향했다.
옛길 박물관을 지나 너른 공터 앞 커다란 성문이 눈에 들어온다. 심장이 콩닥콩닥 흥분을 취해 땀이 삐질삐질 쏟아진다. 지글지글 끓는 땡볕에 그대로 노출된 몸을 방어할 그늘조차 보이는 않는다. 솜털 구멍을 파고 나온 땀이 몸을 지배할지라도 지금의 쾌락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흘관 성문 앞에 가만히 서서 성문의 모습을 바라보고 또 지켜본다. 열기에 빙그르르~ 일어난 현기증. 순간이지만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봇짐을 둘러메고 한양을 올라가는 선조들의 쿵쾅대는 심장이 느껴진다. 열기에 두뇌도 잠시 오류가 일어났다.
잔디밭은 누비며 공기 포를 쏘아대는 아저씨들의 움직임에 혼미한 정신을 돌이킨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성문을 향해 사라진 아저씨들. 사라진 공터엔 크르릉 되는 기계의 울음소리는 여전하다. 마치 “정신 똑바로 차려”라며 혼쭐을 낸다. 주차장에서 1 관문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많은 사람이 찾는다. 문제는 3km의 거리에 있는 2 관문으로 조곡관이다.
숙종 34년 설치된 1 관문 주흘관을 통과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주흘산 4.5km, 혜국사 2.0km 등을 알렸지만 2 관문으로 가는 길이 없다. 어쩔 수 없이 평탄하고 나무로 우거진 산책로를 택했다.
2 관문 조곡관까지의 거리는 3.1km. 평소에 걷던 걸음걸이를 따져보니 어림잡아 1시간 안팎이면 충분하다.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뒤를 따라오던 아빠와 꼬마가 휑하니 나를 제치고 앞서 나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떻게 나를 제치고 앞을 갈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쉬지 않는 토끼라며 자부했던 나였다. 언제가 자신도 모르게 게을러져 꾸물거렸던 걸까. 혹시 걸음이 빠르다고 자만에 빠져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든다. 2 관문의 조곡관까지 금방이라지만 홀로인 건 나뿐, 주변을 돌아보니 삼삼오오 나선 동료와 부부가 꽤 많다. 약간의 부러움이 생겼지만 그라라치면 유유히 나타나는 자연의 부름에 넋을 잃는다. 그들 사이를 누비며 온전한 숲을 안는다. 그늘이 우거진 숲길은 날씨 예보처럼 폭염의 사태는 벗어났지만, 공기의 온도는 잡지 못했다. 마스크 사이로 뿜어 나오는 열기에 쪼르륵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떨어진다.
계곡을 따라 끊임없이 물이 흐르고 작은 물고기들이 기거했다. 물고기의 모양을 보아 1 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가 확실하다. 시원한 물에서 헤엄친다는 것만큼 부러움의 대상일 수 없다. 입안은 건조하고 목이 말라왔고 몸은 찝찝한 샤워를 즐긴다. 가방에 얼러 온 생수가 열기에 뜨뜻미지근해져 차가움을 잊어버린 초비상 사태. 그럴 수만 있다면 흐르는 냇물에 풍덩 들어가 아이들처럼 놀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맛있는 음식을 본 것처럼 침만 꿀꺽꿀꺽 삼킬 뿐, 메마른 식도를 따라 미지근해진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꼴각꼴각” 시원함은 없지만 목마름을 한결 달래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역시 땀은 나를 지배했다. 그럴지언정 아직 버티는 중이다. 땀은 온몸을 적셨지만 열기에 타들어 가든 몸은 차츰 식어갔다. 그렇게 땀과 전쟁을 치르며 한참을 걷다가 또 신기함을 마주한다.
조금만 더 가면 문경새재의 제2 관문인 조곡관이다. 그전에 만나야 할 것도 많다. 첫째로 조곡 계곡을 따라 유유히 돌아다니는 문경새재 계곡의 주인 버들치다. 두 번째로 누구의 간섭에도 주눅 들지 않고 지저귀는 산새들의 수다다. 걷는 내내 지겹게 들었지만 때로는 자동차의 소음에서 벗어났음을 알게 한다. 그 위로 진득한 숲의 향기와 풍경이 내려앉는다.
눈알을 요리조리 돌리다 보면 유독 산을 가득 채운 바윗돌이 있음을 깨닫는다. 나에겐 입을 벌린 악어로 보이는 바위지만 앞으로 툭 튀어나온 지름 틀 바위를 꼽을 수 있다. 한동안 자연이 품은 조각에 푹 빠졌다면 20분 뒤엔 출장을 오가는 관리들에게 숙소의 장소였던 조형 원 터를 지나 교귀정이란 작은 정자 하나를 만난다. 새로 부임하는 신구 경상도 관찰사가 만나 관인을 주고받았던 교귀정. 난 그곳에서 무엇을 할까? 아무도 눈을 주진 않는 정자에 올라 잠시 쉼을 돌린다. 다시 코끝엔 바람의 꼬리가 살랑살랑 간지럼을 태운다. 멍하니 길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보며 그 옛날, 이 고개를 넘던 선조들의 감흥과 애환을 떠오른다. 문경새재의 옛길은 만만치 않은 상대다. 험악하기는 말할 것도 없으며 온갖 짐승들이 날뛰었을 게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때 그 시절의 선조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눈에 띄는 비석 하나에 붉은 글씨로 “산불됴심”이라 적혀 있다. 주흘산과 조령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같이 산불을 막기 위해 쓰인 것 같다. 조선 시대의 유일한 한글 비석이다. 지방문화재 자료 226호로 지정되었다.
역사의 순간도, 주변의 풍경도 현재와 잘 어울려 또 다른 신비감을 자아낸다. 2 관문을 다다를 즘 마지막으로 조곡 폭포가 시원하게 물을 뿜으며 기다린다. 어찌 보면 그저 그럴법한 모양을 갖췄지만, 자세히 보면 3단 폭포라 할 수 있을 만큼 장관을 이룬다. 처음 마주한 그들에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좁은 도랑을 따라 흐르는 물의 정체의 비밀이 풀리는 찰나다. 이제부터 250여 m만 가면 조곡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