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번외전

영하 (-)8도의 여행 (전편)

겨울 이야기1

by 병욱이


회룡포5.jpg 황산 2리 용계로

운명의 장난


아침 기상 알람이 켜져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신나게 울려되는 알람 소리에 한겨울의 태평한 아침이 벼락이 맞은 듯 눈을 떳다. 다행이라면 전날과 다르게 한가한 일정을 소화시키면 되었기에 다행이라 여겼다.

어제 그제 오늘 계속적으로 북극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연일 한파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그 추위가 무서운 건 아니다. 느긋이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늦은 아침밥을 김치와 김으로 싸서 간단히 먹고 몸 단장까지 끝냈지만 시간은 1시간 남을 만큼 여유로웠다.


그때였다. "오늘 추운데 나가지마" 라는 말과 함께 둘 사이의 묘한 기류를 타고 언쟁이 쏟아졌다. 낮 기온마저 영상으로 오르지 못하고 영하 5도 머무른다는 소식. 서로의 의견은 충돌하고 언성은 점점 높아지고 머리는 뜨거운 불씨를 올려놓은 것처럼 혈압이 상승했다. 모든 열기는 머리로 쏠리고 서둘러 집밖을 나서야 끝나지 않을 논쟁이 끝날 것처럼 느껴졌다.


뉴스와 스마트폰의 날씨 APP으로 춥다는 것을 이미 감지했기에 장갑과 모자, 조끼에 패딩으로 몸을 둘러싼 후 밖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눈밭을 헤치고 버스를 타기 위해 2km를 걸어가야 할 뿐이지만 한파라는 놈이 무서웠다. 한파라는 게 사실일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은 가뿐하고 따뜻했다. 그건 아마 아직 집안에서 받은 온기와 식지 않은 머리 온도 때문일 것이다.

뽀얗게 쌓인 눈은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지만 쌀쌀맞게 불어되는 바람에 엊그제의 눈은 그대로이다. 그 눈길위엔 내가 아닌 고라니, 고양이 등의 동물 발자국만이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20분 쯤 걸리 것 같았던 거리는 그건 나만의 오만이고 생각의 오류였을지도 모른다. 7년의 어린 시절을 매일 걷고 다녔던 길. 멀게만 느껴졌던 길이 이렇게 몽땅 연필처럼 짧아졌을리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축지법을 사용했었나? 읍내에서 12시 1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맞추고 맞춰 고려한 시간이 어긋났다. 12시 10분이 되기도 전에 이미 버스 정류장까지 도착한 난 멀둥멀둥 앞에 펼쳐진 연못을 바라뿐이다. 꽁꽁얼어버린 추위에 인기척하는 없는 썰렁한 찬바람만 불어 닥쳤다.

이런 저런 시간 계산에 20분후면 버스가 온다는 믿음을 가졌지만 그것마저 변덕을 부린다. 아마도 이틀 동안 내린 눈의 행각이 아직까지 말썽으로 이어졌다. 시골길은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와 다르게 버스도 드물고 버스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울컥 올라온 불안감에 얌전하든 추위는 몸을 야금야금 엄슴해왔다. 추위로부터 몸을 지켜주던 오리털 잠바와 장갑도 무용지물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다.


버스를 타고 얼마가지 않아 만나게 될 꿈 같은 풍경에 너무 깊숙이 빠져 있었던 걸까. 들릴 듯 말 듯한 안내 방송은 라디오 방송에 묻혀 내려야 할 정류장은 말도 되지 않는 정류장을 지났다. 한껏 귀를 기울렸지만 버스 기사 아저씨의 농락에 당한 기분이다. 떠나간 버스에 손 들어봐야 소용없는 짓. 용궁 버스정류장에 내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묘색하는 것이 최선이다. 슈퍼마켓과 정류소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 건물안쪽으로 들어서 시간을 확인했다. 1시 50분 무지, 회룡포로 가는 버스 시간이 눈에 띈다. 행운이라면 행운을 가진 사나이 50분 후면 버스를 타고 되돌아 갈 수 있다. 50분을 알차게 보내려는 굳은 마음에 주변을 살피기로 한다. 활활 타오르는 열정은 영하 8도의 날씨도 막긴 힘들다. 도로 군데군데 쌓인 눈은 녹아 물이 되고 얼음이 되어 빙판길을 만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빙판길을 요리조리 피해 먹이감을 찾아 발길을 옮겼다. 5분, 10분이 지나고 열정을 바람에 타고 날려오는 눈보라에 멈춰버렸다. 얼굴로 목으로 눈물이 녹아 겨울은 한층 더 차가웠다. 깨어질 것 같은 손가락 끝마디에 엉뚱한 장소에 떨어진 나, 어디로 가야 할지 엄마, 아빠를 잃어버린 미아가 되고 말았다. 다시 정류소를 찾은 나는 의미없는 시간을 견디며 버스가 1분이라도 빨리 오기만을 빌뿐이다.

회룡포2.jpg 비룡산 등산로

당신이었어...


정류장 매표소를 지키는 아주머니에게 다시금 확인 절차에 나섰다. "혹시 여기서 회룡포 가는 버스가 있나요." " 1시 50분에 있습니다." 눈으로 확인은 했지만 듣고 싶었던 말을 듣고 나니 더욱 확신에 찼다. 창을 향해 곧 다가올 버스만을 눈이 빠지도록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상황에 억울하고 침울하다. 그 기분을 쉽게 억누를 수 조차 힘들다. 어떤 식으로든 화를 삭혀야 속이 풀릴 것만 같았다.


코앞에 도착한 버스에 발을 올리며 한마디를 던진다. "저기~ 회룡포 가나요"

회룡포 입구를 들려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지난 시간, 그렇지 못한 의심에 먼저 선수를 쳤다. '나는 이곳을 가야하니 꼭 들리주길 바랍니다.' 라는 버스 기사 아저씨에 대한 경고였다. 운전에 몰두한 버스 기사 아저씨를 유심히 쳐다보지 왠지 낯익은 선글라스에 온몸을 검정색 옷으로 감싼 모습이 익숙하다.

"얼토당토한 하차를 하게 만든 12시 10분 발 버스 기사 아저씨가 당신이었던 것이야!"

기사 아저씨 얼굴을 보는 순간 화가 난 개가 되고 싶었다. 분노를 삭히길 위해서 잃어버린 시간과 빼앗긴 요금을 보상받고 사과까지 받아야 마당했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저 안내방송에 더욱 귀를 곤두세우고 경청이 살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고 여기쯤이었을 때 버스 기사 아저씨가 회심의 한마디를 던졌다. "여기 내릴 실 건가요" "여기서 내리면 되나요." 대답을 했지만 다시 질문을 던지는 버스 기사 아저씨. 뭔가 조금 이상했다. 잠시 침묵을 가졌다. 나에게 했던 말이 아니다. 버스벨을 누른 다른 손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이렇게 이유없는 농락을 또 한번 당하는 것인가 라는 자괴감이 솟구치고 입이 간질간질거렸다. 뭔가라도 쏟아내지 않으면 화병으로 하루가 엉망진창이 될 게 분명했지만, 마음뿐인 외침은 단전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창밖으로 불어가는 겨울 날선 찬바람이 나의 마음이었다.



전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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