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번외전

열두 살이 만난 바다 그리고 <나도 작가다> 공모전

by 병욱이


황금 코트를 걸친 바닷가, 모래밭을 휩쓸 것 같은 파도가 심장을 두근두근 끓어오르게 한다. 넓게 펼쳐진 모래밭 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분주하다. 사륜오토바이를 타는 연인들, “오빠~~ 달리자 GoGo 오~빠~ 아아악 간다. 꽉 잡아라이!” 한편에선 아저씨 한 분이 “야아~ 천천히 안 달릴래. 여기 니들이 전세 냈냐? 공공장소란 말이다” 라며 이마에 핏줄을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바다 위로는 바나나 보트가 날 듯 파도를 가로지르고, 일렬로 정렬된 대형 우산 아래에는 제집처럼 집주인들이 태양을 피해 숨어있다. 8살이 된 조카가 조른다.

“삼촌 빨리 모래성 만들자”

“응~ 빨리”

“기다려봐! 먼저 바닷물을 막는 성을 쌓고 뾰족한 지붕을 만들고 나서 하는 거야”라는 말을 하는 순간 큰 파도에 모래성이 부질없이 흐무러져 버렸다. 조카는 짜증이 난 것인지 발로 무너져가는 모래성을 짓밟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도와 장난을 친다. 한참을 그렇게 파도 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조카를 보고 있으니 내가 바다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내가 바다를 처음 본 건 어느 여름 가족모임에서였다. 망상해수욕장에서 해양경찰 근무를 하시는 이모부 덕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망상은 작은 돌멩이 하나까지 아름다운, 그야말로 발전되지 않은 숨은 곳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12살이었다. 12살에 처음으로 만난 바다는 뭐랄까.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검고 짙푸르러 두려우면서 한편으로는 짠 내 풀풀 풍기는 새로운 공간이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건 백사장이었다. 하얀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백사장은 폭신폭신한 톱밥처럼 포근했고 걸을 때마다 보들보들한 느낌이 발바닥의 신경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에 전율을 울렸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위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마음이었다. 바다로 뛰어가 살짝 발을 담가보았다. 파도가 밀려오면서 나의 발등 위로는 모래가 어부바를 하고 그 모래가 또 밀려가며 발가락을 간질이기도 하였다.


초록빛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에서 우리는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씨름을 했다. 무작정 비슷한 동갑내기 동생들의 첫 번째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겨라 이겨라’라는 응원을 할 새 없이 첫 번째 판이 싱겁게 끝났다. 동생이 이겼다. 다행히 두 번째 판은 사촌 동생이 이겼다. 승부를 판가름할 마지막 세 번째 판은 동생의 승리로 끝났다. 씩씩~, 사촌동생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아빠 이거 다시 해야 해. 억울해. 저 녀석 손이 먼저 땅에 닿았단 말이야 아빠, 야 ~ 한판 더 해”

급기야 사촌동생은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니야 니 무릎이 먼저 모래에 닿았단 말이야.”

“어디서 뻥을 쳐! 내가 이긴 게 맞아 메롱~ 메롱~ 내가 이겼지 내가 이~겼다.”

동생은 혀를 날름날름 하며 사촌 동생을 놀렸다.

서른이 넘어 다시 망상을 찾았다. 백사장은 파도에 깎여 어느새 절벽이 되어버렸고 파도와 함께 쓰레기가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여유롭게 모래밭을 걷던 옛 시간은 점점 멀어지고 바다는 사람들로 몸을 앓느라 고단해 보였다. 하지만 추억을 잡아 삼킨 그 바다에서도 낭만은 여전했다.

“삼촌 게 잡아줘.”

“여기 게가 어딨어. 없어”

“있단 말이야. 좀 전에 어떤 애가 게 잡아서 갔단 말이야. 잡아 달라고 잡아 달라고 아~ 아앙~”

“알았으니깐 찡찡되지 좀 마”

8살과 6살, 두 형제가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에이! 안 되겠다. 바다 물벼락이나 받아라.”

“하지 말라고 옷 버린다고”

황량하고 촌스러운,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예전의 바다 모습은 아니지만, 아직도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차악차악’하며 바위와 모래를 휩쓰는 파도 소리는 여전히 정겨웠다.

“야~ 그 튜브는 내꺼야. 내놔~”

“니꺼란 증거 있으면 말해봐, 없잖아. 봐~ 어디 어디 봐 보라구.”

“내가 탈 거야. 바보~ 가지고 싶으면 뺏어가 보시던지”

또다시 동생들의 작은 전쟁이 벌어졌나 보다. 뒤돌아보니, 거기엔 내가 아닌 또 다른 12살의 바다가 있었다. 누군가의 동생이고 어쩌면 나일, 그 아이들의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12살의 작은 희망


그때부터 난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간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난 바다처럼 매섭지도 못하다. 바다처럼 강하지도 못해 운동도 잘하지 못한다. 그저 나에게 있는 작은 감성과 상상의 나래가 그림을 칠하게 했고 글을 쓰게 만들었다. 12살의 나, 깊은 마음속에 곤히 잠들어 있던 바다. 모래 위에서 장난치던 그 모습에 눈을 뜬 채 지금의 바다를 바라보고 작은 희망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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