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번외전

경상북도 할머니의 빨간 간장과 배추 전

밥과 배추전

by 병욱이

3년 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자유로운 직장을 선택했다. 회사를 관두고 몇달이 지났고 생각과 다르게 생활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돈에 대한 압박으로 녹록치 않았다.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만사 이치가 나쁜 것이 있으면 좋은 게 있다는 말 때문이다.

회사를 열심히 다니며 회사 동료와 회식을 한다는 핑계로 이집 저집 술집을 전전했다. 꼬치구이에 소주 다시 통닭과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돌며 배가 차오를 때 마지막으로 전집을 찾았다. 기름에 부친 전의 고소함이 배부른 상황에서도 콧속을 후벼 팠다. 식당 안으로 막걸리 한 주전자와 김치전을 시켰다. 빨갛게 물들은 김치전에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고 빨리 막걸리 한잔을 채워 마셨다. 카~ 걸쭉한 막걸리 한 잔에 김치전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마지 이제부터가 시작이란 것처럼 모두가 걸신이라도 영접을 한 건지 배부른 사람들 치곤 너무 잘 먹었다. 안주를 하나 더 시켜야만 했다. 메뉴판을 집어 들고 뚫어져라 쳐다보며 무엇을 먹을까 고민에 빠졌다. 이름을 보고나니 모든 걸 먹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밑 빠진 장독에 물 붓는 격이고 몸도 술도 주체할 수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술에 몸을 빼앗긴 채 입은 꼬이고 몸은 이리저리 바람에 부는 나무처럼 휘청거렸다. 결국 마지막으로 배추 전을 먹기로 했다. 배추전이 무엇인지 1900~2000년 초반에는 배추 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아마 유례도 없거니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음식이기 보다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만 먹었던 특별한 음식으로 지역적인 냄새가 가득하다. 배추 전 생각에 추억 조각 하나가 아른하게 수면으로 떠오른다. 그 맛을 알고 있다면 벌써 마법에 빠진 것이다.


어릴 적 나의 집

아련한 추억 저편 1990년

초등학생 2~3학년쯤이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의 시골집이라면 부의 상징으로 집집마다 소를 한두 마리를 집안 한쪽에 마구간을 지어 키웠다.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셨던 집도 당연히 그러했다. 할아버지가 주무셨던 방은 마구간 바로 옆, 커다란 쇠솥에 불을 지펴 소죽을 끓이고 그 불로 구들장이 놓인 방을 뜨뜻하게 데워 주무셨다. 그때는 외양간이 방 옆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소똥 냄새가 풍기는 곳에서 어떻게 잘까라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동침 아니 동침이다. 나의 기억 속 할아버지는 한 집의 기둥이자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성격에 무서웠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무명옷을 입고 두루마기를 걸치고 갓을 썼다. 그런 반면 할머니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지만 곱게 빗은 머리는 뒤로 넘겨 비녀로 곶은 단정한 숙녀의 모습이었다. 무서움보단 다정한 기억이 더 많다. 그런 할머니는 타고 남은 재로 숨겨놨던 숮불을 옮겨 불을 피워 배추 전을 만들어 주곤 했다. 집 앞마당 저 멀리 보이는 언덕언저리 밭에서 배추를 2포기 뽑아와 다듬고 물에 씻어 재료를 준비했다. 밀가루와 식용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솥뚜껑이다. 불을 지핀 까만 솥뚜껑 위로 기름을 붙고 뭉텅 잘라놓은 무로 기름을 두른다. “지지직 지지직” 무에서 흐른 기름이 요동을 친다. 다듬어진 배추를 물에 걸쭉하게 풀은 밀가루를 묻혀 솥뚜껑 위에 얹는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넓적하게 펴진 배추는 밀가루와 노르스름하게 맛있게 익어갔고 조금 전보다 소리가 난동을 부렸다. 기름이 이리저리 튀고 금세 주변은 느끼하면서 고소한 향기로 가득 찬다. 할머니의 팔위로 튄 기름이 뜨겁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할매 안 뜨거워!” “괜찮아. 기름이라 금방 헐 날아간단다.” 그땐 정말 기름이라 금방 살라지는 줄 알았다. 안심이 된 난 어느새 입안이 침으로 가득 찼고 침은 조만간 입가로 새어 흘러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10분이 지나고 뚝딱 3~4장의 배추전이 완성되어 소쿠리에 담겼다. 옆에서 멀뚱히 바라보는 손주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배추 전을 채반에 담아 마루로 가져왔다. 맨손으로 배추전을 쫙~ 찢어 빨간 간장을 콕 찍어 말똥말똥 쳐다보는 손주의 입안으로 넣으며 짖는 미소는 행복했다. 하얀 밀가루의 쫀득거림과 아삭아삭 씹히는 배추와, 배춧잎을 타고 흘러나오는 달코름하고 고소한 맛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맛이다. 할머니만이 낼 수 있는 특허 중에 상 특허이자 손맛이자 손주에 대한 사랑이다. 싱싱함은 물론이고 바로 구워서 할머니표 배추 전은 나에게 있어서 한 끼를 채우는 가장 최고의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에도 배추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할머니의 간절한 추억을 묶어 놓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때론 그런 맛을 찾아 어른들은 한잔의 막걸리 걸치며 안주로 삼기도 했다.



당황한 배추 전 에피소드!

미끌미끌 기름이 둘러진 까만 솥뚜껑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든 할머니의 아삭한 배추전은 어린 아이의 입맛을 넘어 한반도 남쪽을 점령하며 술집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경상북도를 벗어난 배추전은 어른의 입가심 술안주로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고 만천하가 다 알고 있는 명품 전의 탄생이다. 얼마 전까지 하더라도 밀가루를 뒤집어 쓴 배추라면 “이건 뭐야.” 라는 반응의 생소한 음식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 직장 동료에게 들었던 담화 하나가 생각난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먼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차 경상북도 예천군 가동이라는 마을을 들렀다. 기와지붕에 아무것도 없는 작은 동네, 처음으로 경상도라는 땅을 밟는 계기였다. 자동차를 타고 겨우겨우 잔칫집을 찾아 들어서니 사람으로 복작거렸고 도시의 높은 빌딩은 보이지 않고 풀냄새 흙냄새가 있는 시골 냄새가 풀풀 풍겼다. 바쁜 시간을 내어 찾아온 손님의 고마운 마음에 정성껏 차려 나온 한상 차림. 이름도 몰라 모양도 요상한 배추가 하얀 밀가루 옷을 입고 축 처진 몸을 접시에 누인 채 담겨 나왔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 망설여졌고 어쩔 수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때마침 옆에서 먹는 것을 보고 따라했지만 한 입 베어 먹고선 도무지 알 수 없는 맛이다. 한 입 더 베어 물었지만 역시나 밍밍한 게 내 맛도 니 맛도 없다.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이것의 이름이 뭘까?” 하며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다. 내 생에 가장 특이하고 독특한 음식이다. 그렇게 주섬주섬 먹고는 민망함에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 했다.


할머니의 생신 난, 어디 있을까?

배추전은 나의 또 다른 밥, 기억

어릴 적 옆에서 항상 웃어주던 할머니는 중학교 2학년 때 급작스런 출혈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그 이후 매년 그날이 돌아오면 큰집에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제사를 기리기 위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동그랑땡, 고구마 전, 할머니가 만들어 주던 배추전 등을 정성껏 준비한다. 코 끝 살쿰 매달린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매번 그랬듯 입안에는 침이 흥건히 고였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밤 12시가 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고통의 시간이 점점 밀려왔다. 저녁은 먹었지만 늦은 밤 기다림에 지쳐 꼬르륵꼬르륵 배 시계가 울리고 눈꺼풀이 자꾸만 망막을 덮었다. 견디고 버텨 어느 듯 시계 바늘은 12시에 닿았고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할머니에게 맛보여 드릴 수 있었다. 소박하지만 정성껏 차려진 음식에 좋아하셨을 할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눈가와 볼은 주름으로 가득하지만 반달눈으로 내려다 보며 머리를 쓰다듬을 줄 할머니가 더욱 떠올랐다. 여러가지 음식중에 할머니도 솥뚜껑에 부쳐 빨간 간장을 찍어 먹던 배추 전이 가장 맛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할머니 배추 전이 제일 맛있지.” 모든 제를 끝내고 흘러내리던 침을 훔쳐야 할 야식(제사 밥) 시간이다. 고사리, 무, 시금치 등을 넣은 밥을 비벼 한 입 가득 담고 빨간 간장에 배추 전을 하나 찍어 먹으면 더 할 나위 없는 반찬으로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맛이자 밥이다. 먹고 먹어도 맛있다. 먹고 먹어도 살찌지 않는다. 배추의 시원함과 기름에 부쳐진 밀가루는 쫀득하고 바삭거렸다. 빨간 간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회사원 시절 전집에서 먹었던 배추전은 할머니가 솥뚜껑에서 지지던 배추 전의 맛에 1mm도 못 미쳤지만 아련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준 고마운 한 끼의 식사였다. 할머니가 해 주던 배추 전은 이제 더 이상 먹을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과 현재를 이어주는 할머니의 사랑이다.




#브런치X우리가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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