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주는 행복은?
이른 장마철이 다가왔다는 건 여름이 다가왔다는 것. 가장 버티기 힘든 계절. 다른 해보다 장마가 오래 지속한다는 뉴스에 짜증이 확 밀려왔다. 다행히 몇일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다. 신기방통 요즘 들어 잘 들어맞는 일기예보에 한 줄의 희망을 걸고 늦은 밤 서둘러 가방을 꾸렸다.
밤새 몰래 방문한 모기와 한바탕 전쟁을 벌렸다. 모기와 싸움에서 승리. 기쁨도 잠시 얕은 잠이 나를 또 괴롭혔다. 시간은 새벽 3시. 잠을 잔 듯 만 듯 아침이 밝아왔고 “Gun N’ Roses”의 “November Rain”의 알람이 울리며 새벽 아침을 깨웠다.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은 비 생각뿐. 제발 오늘만은 기상청의 예보가 들어맞기만을 기도했다. 창문을 여는 순간 실망감이 몰려왔다. 하늘을 가득 드리운 먹구름은 당장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 같다.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세면대로 향했다. 이런 젠장. 창밖으로 빗방울 소리가 살금살금 들려온다. 결국에 이렇게 기상청의 예보는 배신을 때렸다. 마주 하고 싶지 않았던 빗방울은 뚝뚝 희망을 곧 포기상태로 만들었다. 어쩔 수 없다. 내친김에 개운한 아침 샤워를 하기로 맘먹었다. 그럼 그렇지 기상 일보 널 믿었던 내가 바보다. 머리를 감고 온몸을 비누 거품을 내어 문질렀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부터 누가? 급한 일이라도 있을까. 발과 손의 비누 거품을 제거한 채 알몸으로 전화를 받으러 뛰어갔다. “여보세요” 성주에 사는 해룡이 형님이다. “아~ 오랜만이에요,” “ 잘 지냈냐. 혹시 아직 시골이니.” 성주에서 있을 팸투어에 오지 않겠냐는 제의였다. “저 지금 제주에요.” 미리 연락 좀 주시지. 꿈자리가 사나웠던가 아침부터 꼬이는 일 만투성이다. 목욕재계가 끝나고 욕실 밖을 나오니 뜻밖에 거실 바닥으로 서광이 내려앉았다. 어떡하나! 서광은 비췄지만 거실 바닥은 뚝뚝 떨어진 비누 거품을 치우려면 고생깨나 하게 생겼다. 하늘을 가득 채웠던 구름은 옅어지고 구름 사이로 태양이 얼굴을 삐죽이 내밀었다. 역시 기상청은 잘 맞춘다니까. 앞서 씹었던 생각은 1도 없이 혼잣말로 기상청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구물거려 지체된 시간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더욱 서둘러 움직였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오랜만에 꿀맛같은 새벽잠을 버리고 갖은 상황을 맞닥뜨렸더니 몸의 피곤이 빨리 찾아왔다. 한동안 한자리를 틀고 앉았더니 몸은 고목이 될 정도로 뻣뻣하기도 했다. 배는 항구를 떠났고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연히 도착 장소가 하우목동항일 것이라 의심치 않았지만 도착한 곳은 천진항.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그렸던 모든 것이 숲으로 돌아갔다. 화투를 치다가 대박 삑사리를 한 방 맞은 격이다. 난감한 상황이라도 난 앞으로 가야 했다. 그렇게 정신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이것이 여행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경쾌한 목소리가 공간을 애워쌌다.
“여기로 오세요. 가장 쌉니다.” (최대한 큰목소리로)
“제일 싼 곳이에요. 거기보다 여기가 더 싸요.”
진열된 전기 자전거와 세 발 오토바이를 대여해주기 위한 점포 사장들의 필사적인 외침이었다. 내가 겪어 왔던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옆을 지나가는 나의 고막이 피를 토할 뻔했다.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쓴맛을 보고 있을지 몰랐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을 골목길로 들어섰다. 배에서 만났더 그 많은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없다. 이런 저런 생각에 발길이 가는 곳으로 이끌렸다. 너무 허무맹랑한 장소로 와버린 다리 녀석. 걱정이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도 남자다. 자존심이 있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없다. 쓰잘때기 없는 오기를 부렸고 길을 따라 계속 앞으로 전진했다. 우도를 방문한 횟수도 4~5번, 걷다 보니 차츰 숲이 눈에 익었다. 뜻하지 않게 또 올레 1-1코스에 진입하고 말았다. 올레 1-1코스라서 실망을 한 것은 아니다. 이러지 않는다고 단, 난 새로운 길을 원했고, 무조건 다른 길로 가겠다고 마음을 다짐을 했었다. 정말 아침부터 왜 이리 꼬일까? 어찌 되었든 길은 하나다 가자.
역시 올레길은 올레길이다. 하늘은 가렸던 구름은 하나, 둘 옷을 벗어 던져 섹시한 파란 몸을 드러냈다. 그러는 중 태양은 이글이글 몸을 불태웠고 촉촉한 하늘은 메말라 갔다. 태양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겠다는 예감이 든다.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벌써 뜨거운 태양은 마중을 나왔지만, 다행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줘 땀이 흘러내리기도 전 식어버린다. 태양과 공존할 수 없는 바람의 황당한 처사이다. 평화를 가져다준 바람에 고마워해야 할지 아닐지 꿈인 듯 생시인 듯 오락가락한다. 시원한 바람이 좋았지만, 덜컥 벌겋게 끓어오른 태양이 그냥 있을 리가 없다. 가방 속을 뒤져 선크림을 꺼냈다. 피부 방어 작전에 돌입한다. 팔과 목 그리고 얼굴을 둘러가며 덕지덕지 크림을 바른다. 천군만마를 얻은 장군처럼 무엇이 닥쳐와도 안심이 되는 선크림은 효과이다. 내 슬픈 삶도 가려졌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한결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그러나 태양에서 도망쳤다고 끝난 건 아니었다. 곧곧에서 문을 두드려 왔다. ‘저기 배가 고파요’ ‘저기 목이 마른대..’ 식량과 물은 이미 동난 상태로 총체적 난관에 부딪혔다. 슈퍼마켓은 앞으로 1시간 거리. 소의 형상을 닮은 우도 그중에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132.5m의 우도봉(쇠머리오름)을 오른다. 바다를 끼고 있어서 바람이 더 힘차게 불어왔다. 현재 상태로선 컨디션이 최고라 자부한다지만 여전히 말썽은 오장육부였다. 성난 위는 밥을 원했고 입안은 사막화가 되어 바짝 말라갔다. 메마른 입안의 침을 끌어모을 수 있을 만큼 모아 침을 꿀꺽 삼켰다. 마른 입안에 가뭄을 어찌어찌 목을 축였고 기름칠은 되었다. 다만 여자 친구처럼 자꾸 졸라 되는 위가 문제였다. 방도가 없다. 손은 손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바삐 움직였고, 헉헉대는 숨을 몰아쉬며 산등선을 넘어야 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절경을 버리고 간다는 건 무책임한 행동일뿐이다. 그순간 ‘당신을 벌을 받고 말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누구야?
풍경은 카메라의 눈을 어느 방향으로 돌려도 시원찮다. 모든 걸 담을 수가 없다. 눈보다 좋은 렌즈가 없다는 소리가 생각난다. 그래도 쉴 새 없이 손가락은 셔터를 누른다. 그래야만 오늘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동, 서, 남, 북, 한 바퀴 빙글 돌며 파노라마 사진을 담는다. 일생의 쓴맛, 단맛, 짠맛, 신맛 굴곡을 절경속에 녹아있다. 내 인생도 저렇겠지.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다. 30대에 들어서 큰 전환점을 빼고는 유유히 떠도는 바다의 갈매기처럼 순탄했다. 인간은 두려움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그 어떤 동물보다 오래 산다고 했다. 그 말에 난 충족했다. 난 두려움을 잘 감지했고 위험은 피해갔다. 그러기에 쓴맛을 많이 보진 못했다.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지금일 뿐이고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다. 자연은 나의 초심의 잣대이다. 나비가 날아가고 초파리가 눈 주위를 서성이며 나를 괴롭혔다. 사회의 존재하지 않아야 할 족속 같은 녀석들이다. 불쌍하여 이리저리 손짓으로 쫓아도 말을 듣지 않는다. 굳이 그렇다면 응징의 대가를 내려야겠다. ‘안녕! 팍~’ 오직 자연만 사람이 없으면 했지만, 현실은 외롭다. 조용한 곳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여행에 있어 만남이란 하나의 추억이고 한 장의 작은 기억의 조각이었다.
지구에 있어 인간은 날아다니는 초파리나 다름없지만, 없다는 것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사진에 움직이는 피사체가 필요하다. 제주 신에게 기도를 들이면 나타나게 해 줄까? 움직임이 있어야 인사라도 나눌 텐데 풍경은 마치 현상된 사진 속에 나를 가둬놓은 기분이다. 나에게 있어서 오늘을 꿀 같은 하루를 만들어야 할 중요한 날. 모든 사람이 그렇듯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여행은 감옥 같은 작은 방구석에서 탈출한다는 것, 숨을 쉬게 해줄 산소호흡기와 같다.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를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우도 등대를 지나 질금질금 새어 나오는 거친 숨과 땀을 껴안은 채 검멀레 해변에 발을 들였다. 하고수동, 서빈 백사장과 같이 해수욕을 즐길 수는 없지만, 여름을 더위를 식히기엔 충분한 바다향기를 뿜었다. 사람 냄새가 풀풀 풍겼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떨쳤다. 쩍쩍~ 갈라져 갈 혓바닥의 수분 공급을 위해 슈퍼마켓을 찾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물 한 모금에 사막을 견디고, 행성에서 홀로 보냈는데 난 뭘까? 작은 것 하나 못 견디는 나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이 든다. 슈퍼마켓은 어딨는 거야? 여행은 오늘 나에게 많은 떡밥을 던져준다. 고통도 즐거움도 외로움도 무엇을 또 만들어가는 씨앗의 싹을 틔웠다.
[ 계속 이어집니다. 부족하지만 관심 많이 가져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