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전투 (올레 1-1 코스 2)

올레 1-1코스 우도

by 병욱이

청춘의 유흥가 1


사람으로 꽉 들어선 검멀레 해변은 지구의 해충, 인간이란 동물의 천국.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는 건물, 그 자리를 가득 메운 매캐하고 신선한 냄새는 코를 자극했다. 속이 빈 위는 더욱 꿈틀거렸다. 참을 수가 없다. “꾸륵 꾸르륵~” 바닷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멀레의 푸르고 검은 해안 절벽이 한심한 듯 눈으로 나를 내려 봤다. “뭘 그까짓 것 가지고 힘들어해. 날 봐! 난 평생이야.” 서당 개 3년이면 글을 읊는다는데, 난 몇십 년을 여기에 있어도 고맙다고 떡 하나 안주니. 그렇게 바람을 타고 귓가에 속삭여왔다. 심술 난 검멀레 해변은 백여 미터의 작은 해변이다. 제주의 여느 해변보다 작지만 밀려오는 파도의 물결은 마치 검은 모레 해변의 박힌 사파이어 블루였다.

제주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하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유홍준이라고 말한다. 유홍준 작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보면 제주의 아픔과 역사를 배울 수 있다. 나에게 또 다른 제주를 보여줬다. 제주를 . 아름답기도 하지만 아픔도 많은 제주지만, 섬 속의 섬 우도만큼은 아픔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는 건 우도는 아픔이 없는 행복의 섬이다. 그렇기에 검멀레 해변의 주위는 젊음이 끓는 청춘의 유흥가다. 달콤한 땅콩 아이스크림과 매콤한 톳 짜장면, 짬뽕 등 갖가지 음식이 입맛을 유혹한다. 어린아이는 장소 불문 시시콜콜 먹고 싶다며 떼를 쓸 정도다. 또한, 다정한 연인이 눈에 많이 띈다. 솔직히 홀로 족이라면 열 받는다. “하하 호호” 달달한 연인은 그리스 신화의 고르곤의 자매 중 한 명인 뱀 머리 메두사가 있었더라면, 검멀레 해변의 돌하르방과 해녀 상을 만들고 말았음이다. 어찌 눈마다 신경세포만 열 일을 한다. 포세이돈이 지키는 바다에서도 괴성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배를 타고 검멀레 해안 절벽의 아래 빙글빙글 묘기를 하듯 내달리고 경관을 둘러본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여러 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자연이 내뿜은 음악의 연주와 수다스럽게 종알거리는 방정맞은 입. 같은 공간, 서도 다른 형태의 여행은 재미있다. 검멀레 해변 길 위의 고요함이 사라진 지는 옛날이다.


고요한 마을로


손목에 찬 시계가 2시를 가리켰다. 이제 머무를 시간도 3시간 정도. 항구에서 받아왔던 지도를 펼쳤다. 바닷길과 마을 길 중에 하나를 택해 가야했다.

“그래 결심했어. 마을 길로 가 보는 거야 어쩌면 동네 할망과 얘기 나눌 수 있는 행운을 잡을지도 모르잖아. 행운을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

1993년에 방영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중 한 코너. 이휘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단막극 인생극장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인생 선택의 갈림 길에서 선 이휘재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고전적인 예능을 살짝 흥에 겨워 따라 했다. 부끄러움은 남의 것?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왠지 꼰대의 이미지를 가진 아저씨가 된 기분이다. 얼굴이 빨개진 난 먼 산만 바라본 채 나몰라라 줄행랑을 쳤다.


드디어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로 들어왔다. 수십시간은 걸린 듯 하다. 부끄러웠던 기억은 사라지고, 마음은 들떴고 힘들었던 시간은 태양에 녹아 땀으로 흘러내렸다. 덥지만 학교 시절 시험 기간이 끝난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갈 길은 여전히 촉박했다. 눈에 띄는 것은 까맣게 내려앉은 돌담. 그냥 지나치기엔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유명 모델을 앞에 둔 것처럼 가져온 카메라의 셔터를 신중히 누른다. 요렇게 저렇게 찍어도 도망가지 않는 모델. 한 걸음, 두 걸음 좀처럼 발걸음을 뗄 수 없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이 누가 몰래 신발 밑창에 접착제를 발라 놓았던 건 아닐까? 큰일이다. 난 가야만 한다. 아직 가 볼 곳은 산더미처럼 남았고 시간은 개미 똥구멍만큼 작았다. 조용한 길거리엔 여행을 온 자전거와 세 발 오토바이만 지나갈 뿐이다. 상상했던 할머니와 대화는 온데간데없고 황량한 길 위에 난 멍하니 바보가 된다. 고요한 돌담길의 숨소리가 골목길에 내려앉았다. 집집이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생각도 없다.



밭에서 자라는 땅콩, 길 한쪽에 주차된 트럭과 경운기, 숭숭 구멍 뚫린 돌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내 전부이다. 동네 구석을 요리조리 핥고 지나갔다. 그 맛이 참 요상하다. 단맛도 짠맛도 없다. 싱겁지도 않다. 고요한 길 위에 뿌려진 삶의 맛이고, 흐르려 자라는 풀 맛이다. 동네 한 바퀴 돌고 나니 1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개미 똥구멍인데 시간 개념은 어디에 가져다 버린 걸까. 스스로 똑똑한 척했지만 뜨거운 태양에 더위라도 먹었을까? 뇌가 녹아버려 좀비가 되지만 않기를. 마을 구석구석을 돌았지만 동네분은 어딜갔는지 찾을 방법이 없다. 쓸쓸한 발을 끌며 1시간여의 동네 탐방을 종료한다.



청춘의 유흥가 2


애장품이 된 지도를 다시 펼쳤다. 앞쪽에 하고수동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다리에 터보 엔진을 장착한 후 바다로 내달렸다. 넓게 펼쳐진 해수욕장이 온전치 못한 두뇌를 식혀줄 것이라 믿었다. 온몸은 땀범벅이 되어 쩍쩍 붙은 옷은 한 몸이 된 지 오래다. 이럴 수는 없다. 바다의 바람을 도둑맞았다. 파도는 실랑실랑 맥이 없고 해파리의 몸체처럼 흐물흐물 춤을 춘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는 빨간불 위험 신호를 보내왔다. 이러다간 병원도 없는 우도에서 쓰러진다. 원하던 건 이런 것이 아니다. 당장 부글부글 달아오른 열기 속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슈퍼마켓으로 들어가 꽁꽁 언 생수와 아이스크림을 샀다. 언 생수를 겨드랑이에 끼웠다. 쉭~ 하며 열기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나가려던 정신도 돌아왔다. 달콤한 냉동고 같은 찬 아이스크림이 주는 그 맛은 천국을 갔다 왔다.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올 때쯤 눈은 휘둥그레졌다. 하고수동의 해변은 검멀레의 업그레이드로 놀 판까지 제공하는 제2의 우도 청춘의 유흥가이다. 왁자지껄한 수다는 정신이 쏙 빼놓는다. 아리따운 아가씨의 미모에 뽕 넋이 나간다. 하고수동 펼쳐진 에매랄드를 주우려면 몇시간이나 걸릴 것으로 보였다. 푸른 바다와 깨알같이 뿌려진 모래 해변은 몇 시간 후 나이트클럽이 될 게 분명했다. 생각만으로 온몸의 찌릿 전율이 돋았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주옥같은 명언이 있지만 이를 지나칠 사람이 있을까. 소크라테스를 소환해 보고 싶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지금의 난 지체할 겨를이 없다. 다음에 꼭 나 자신을 알러 머무를 것이다. 휴~ 이거면 되겠지. 나 자신을 알아보자. 하고수동의 해수욕장에 뿌러진 열정을 살짝 맛보며 자리를 떤다.


들판, 말, 다급함


자전거를 탄 연인이 갈팡질팡 길을 찾는다. 어디를 찾을까? 대화를 걸어볼까? 선 듯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런 접촉 없이 그들과 난 그대로 돌아섰다. 분명 청춘의 유흥가를 찾았음이다. 알려줬어야 했다. 왠지 뒤가 켕기는 게 생감을 한 입 크게 베어먹은 떨떠름한 뭔가 남는다. 앞으로 1시간 30분 동안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발걸음은 더욱더 빨라졌다. 심장은 쿵쾅쿵쾅 어쩔 수 없이 두뇌의 박자에 맞춰 뛰었다. 그로 인해 고생은 피부가 한다. 땀을 배출하고 열기를 조절해야 했다. 처음부터 불안했던 요소가 조금씩 육안으로 나타났다. 오랜 시간의 쉼으로 사라져 가던 살갗이 홍조가 되어갔다. 덕지덕지 발랐던 선크림마저 효과를 보지 못한 듯 보였다. 어떡할까. 고민에 쌓였고 나의 보물 상자 같은 가방 속을 다시 뒤졌다. 두 장의 손수건이 손에 잡혔다. 응급조치로 우선 제일 취약한 목덜미를 감았다. 다음으로 한쪽 팔을 감쌌다. 최소한의 보호막을 두른 채 태양으로부터 도망을 칠 수밖에 없다. 무섭던 태양을 잠시나마 가릴 수 있다는 건 큰 안심이었다. 다시금 잠겨 있던 눈은 아름다운 들판으로 흩어진 들꽃의 향기에 몸을 뉘었다. 마을을 벗어난 들판은 초록빛 풀 사이로 작은 벌레의 감미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잠시 감상에 젖는다. 빽빽한 시멘트 건물에 갇혀 산 도시인의 마음에 낙원이 그려진다. 도시의 불나방은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풀로 날아든다. 그것이 밟고 서 있는 땅 위의 축복이었다. 좁은 밭담을 돌고 낮은 엉을 넘어 마을이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엉이란 언덕을 말하는 제주어) 앗~ 말이다. “야~ 너 왜 여기 혼자 있는 거야?” “너 집은 어디야” “주인은 어딨니?”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잣말로 말에게 수다를 쏘아댄다. “말아 넌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니?”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던 말이 울부짖는다. “뭐야 알아들은 거야” 이런 큰일이다. 흉을 보고 반말도 찍찍했는데... 등을 돌린 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저런 행동으로 봐서는 삐졌을 것이다. 고비 풀고 뒷발에 까이기 전에 얼릉! 토껴야겠다. 안녕~! 다음에 또 올게.


압박감,


푸른 바다가 눈 앞을 가렸고 저 길 끝에 종착지가 눈 빠지게 날 기다렸다. 몇 미터 남지 않은 종착지 올레길을 벗어나 해안 도로로 들어섰다. 세상이 바꿨다. 도로를 꽉 채운 이륜자동차와 사람들은 한동안 벗어났던 도심으로 회귀를 서두르라 일렀다. 적응하려면 어쩔 수 없다. 이륜자동차라도 타 볼 걸 그랬나? 알맞게 도착한 하우목동항. 참고 참았던 소변을 보기 위해 우선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땀으로 쫙~ 남은 물까지 빼고 나니 몸이 더욱더 가벼워졌다. 거울 앞에 서서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이럴 줄 알았다. 태양에 폭삭 익은 목덜미는 피를 토한 것처럼 붉게 익었다. 건드리면 곧 터질 것 같은 상태다. 살결은 따갑고 근질근질. 올록볼록 물집이 생겨 살갗이 벗겨지는 악몽이 떠올랐다. 오직 집으로 가는 길에 약국을 들러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이 두뇌를 사로잡는다.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우도의 여행은 평생에 못 잊을 훈장을 기억을 심어주었다. Bye 배가 왔다. 뛰자.

매거진의 이전글여행을 담는다 1 (올레 1-1 코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