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가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10월쯤이었다. 간혹 덥기는 했지만, 태양의 입김은 날로 약해져 갔다. 아침 8시, 하늘은 파랗고 듬성듬성 구름이 바람을 따랐다. 역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의 나로선 밖으로 나가야 직성이 풀렸다. 1분 1초가 아까웠다. 일어난 그대로 옷만 걸치고 그냥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초라했다. 마스크를 쓴다지만 코밑과 턱밑을 시커멓게 채운 수염은 멋짐에 비해 노숙자나 다름없었다. 말끔히 변신한 후 언제나처럼 버스정류장을 향해 달렸다.
서울의 3배 정도 큰 면적으로 1,847.1㎢인 제주도는 작은듯하면서 쾌 넓다. 중산간을 가로지르는 281번 버스 탔지만, 올레 7-1코스의 시작점의 버스 도착 소요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이상이다. 태양이 어느새 중천으로 머리 위에 앉으려 한다.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걸매 생태공원까지 15.4km의 올레길 시작이다. 무엇이 심장을 뛰게 만들까? 시야를 막은 고층 건물과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세계, 시끄러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다. 처음 가야 할 곳은 엉또폭포로 거리는 올레 7-1 코스 15.7km의 4분의 1쯤 되는 4km이다. 30분 동안 2km씩 걷는다고 쳤을 때 1시간이면 충분하겠지만, 그사이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속도를 한층 더 끌어올려 걷기로 결정지었다. 점점 사라져 가는 도시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푸름이 가득한 폭이 1m 안팎의 길로 들어섰다. 발길에 모난 돌멩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나뭇가지 위 새들의 지저귐이 정답다. 얼마 되지 않아 월산봉 자드락길로 접어들었다. 가을과 겨울 사이의 낙엽이 흩날리는 자연의 품에 안겼다. 동물원에 갇혔다가 끝없이 펼쳐진 사파리로 뛰쳐나온 맹수처럼 마음에 생기가 돌았다. 강정 주민의 고통이 서려 있는 강정항의 푸른 바다가 눈부시게 다가왔다. 아픔의 눈물일까 희망일까 빛은 고요했다. 걷던 걸음을 멈추고 벌렁거리는 코와 처음 만난 자연은 공감대를 이룬다. 갑갑했던 마스크를 잠시 벗어젖히고 맑은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로 현실을 탈옥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를 찾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의 기운이 몸으로 스며들고, 스트레스받았던 장기는 활기가 넘친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길을 걷는 도중 한 사내가 나를 향해 돌진해왔다. 챙모자를 푹 눌러쓴 채 눈만 빼꼼히 내놓고 걸어오는 모습에서 영락없는 남자다. 신선한 공기 앞에선 남자는 눈에도 띄지 않았다. 무심히 길을 걸어갔지만, 왠지 말을 걸고 싶어 졌다.
“안녕하세요. 올레길 걸으시나 보네요?” “네.” “어디서 오셨어요.”(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것 같지만 기초적인 예의다) 별거 없는 대화 속에 벌써 엉또 폭포에 당돌했다. 잠깐이었지만 동료가 된 한 남자와 난 벌써 혈관의 모든 피가 폭포수처럼 뜨겁게 흘렸다. 곱게 잘 깔린 나무데크의 안내를 받으며 폭포 앞에 도달했지만, 폭포의 그림자조차 없다. 아차~ 엉또 폭포는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이 흐르지 않았다. 한두달쯤 소량의 비가 내려 헐레벌떡 달려왔지만, 쥐 오줌만큼 흘러내렸던 폭포 줄기의 기억이 떠오른다.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절벽 아래 작은 물웅덩이가 엉또폭포인 것을 증명했다. “폭포가 없네요.” “아~ 여긴 비가 올 때만 폭포가 생겨요.” 앞서 보았던 푯말의 글귀가 생각난다. “높이가 나이아가라 폭포와 맞먹는 50m이고, 물 안 내리는 폭포로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여 세계 4대 폭포가 되었다.” 웃긴 것 같으면서 맞는 말일지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럴싸한 의문은 둘째치고 남자의 표정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폭포를 마주했다면 좋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몸을 돌려 엉또폭포를 벗어나려는 순간 하나의 푯말이 또 보였다. “손님의 미모가 하늘을 찔러 비는 왔는데, 그 비가 아주 쪼끔 모자라 폭포가 없습니다.” 개그 같은 글귀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미모라? 내가 한 얼굴 하는 건 어떻게 알았지.’ 막간의 웃음과 천연 난대림에서 울리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상쾌했다. 날개를 펴고 하늘을 빙그리도는 터줏대감 황조롱이의(천연기념물 323호) "기잇기잇" 울음에 비웃는 모습에 화가 치밀기도 한다. 폭포와 가까이 있는 무인카페에서 찐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찾고 싶었지만, 일각을 다투는 하루다. 엉또 감귤 농원을 지나서 올레 7-1길을 마무리하기 위해 느긋함 속에 재빠름을 장착해야만 한다.
급하게 먹으면 체하고,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것 같은 엉또폭포의 만남은 비가 오는 뒷날로 미뤘다. 유별했던 엉또폭포만큼 엉또 다리도 제주 여느 다리와 달랐다. 무심코 지나가면 모를 제주의 상징이며 유물이자 마스코트인 돌하르방이다. 갖가지 크기별로 정원 조각으로, 식당 호텔 대문 앞의 지킴이로 수호자 역할과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한다. 고근산으로 가는 유일한 길, 엉또 다리를 지키는 돌하르방으로 자리 잡았다. 참아왔던 소피가 끝에 다다랐다. 오줌으로 꽉 찬 방광은 금방이라도 오줌을 바지 밑으로 흘려보낼 기세다.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나를 향해 동료가 희망을 던졌다. “저기 저쪽으로 가면 화장실 있네요.” 방광을 잡고 뛰었다. 지퍼를 내리자 참고 참아 눌렀던 오줌발을 뿜어져나왔다. 뿌려지는 오줌발에 아쉬움의 폭포가 울컥 생각난다. 그런 상황에 그런 생각이 웃겼지만 억눌렀던 방광이 풀리니 몸이 가벼워졌다. 비웃던 황조롱이를 잡아 굴밤이라도 한대 때릴까 싶다. 가벼워진 몸은 이제 고근산을 오를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어찌알고 축하를 보내올까. 길가 옆 돌담 너머 동백나무가 이른 꽃을 피웠다. 엉또폭포, 엉또 다리의 주변은 별종들의 모임 장소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뒤이어 동행에 참가한 동백나무의 행렬 가운데 성격 급한 녀석 한 명이 이른 꽃을 피웠다. 여러 종류의 동백꽃을 봤지만, 이 녀석도 유별났다. 붉은색도 흰색도 아닌 겹동백으로 곤지 연지 연분홍이다. 혼자 핀 게 새색시 마냥 부끄러웠던 게다. 엉또폭포, 엉또 다리의 주변은 별종들의 모임 장소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동백나무를 벗어나니 겨울의 제철인 과일 새콤달콤하면서 비타민C가 풍부해 미용에도 좋은 감귤이 마중을 나왔다. 남몰래 딴다는 건 곧 도둑이라는 걸 알면서도 선 듯 팔을 내밀어 하나 따서 먹고 싶었다. 감귤의 향기가 고근산 주변을 감쌌다. 상상뿐이지만 입안은 침으로 홍수가 일었다. 커다란 한 마리의 개가 중재에 나섰다. 우렁찬 목소리로 짖어대며 몰래 다가온 침입자를 경계했다. 타이르고 구슬려도 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목청이 찢어지라 짖는 개와 달리 집안은 조용했다. 낮잠이라도 자는 걸까. 귤의 꿈은 저 멀리 사라져 갔다.
집 뒤로 이어진 올레 7-1코스 고근산의 매력에 빠질 준비를 끝마쳤다. 짧은 팔색조의 모습을 지닌 들낭숲길로 발을 들였다. 얼마 남지 않은 고근산 입구로 가는 맛배기 여정이다. 억새가 보였다가, 자갈길이 나왔다가 끝을 알 수 없는 매력은 심신이 녹았다. 들낭숲길을 빠져나온 길. 6월이었다면 꽃잎을 피웠을 마른 꽃잎이 대롱대롱 화석처럼 남겨져 있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귤밭을 지나 새들의 노래가 시끄러워졌고 고근산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기쁨에 가득 찬 얼굴에 반전이 일어날 거란 예상은 아무도 몰랐다. 둘이어도 좋지만, 혼자였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이 머리를 휘저었다. 조용한 나만의 시간이 사라졌다. 소문에 의하면 산에 들개와 멧돼지가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얼핏 들렸다. 위험보다 안전을 택한 것으로 간주했다. 고근산의 높이는 171m로 여느 오름과 비등했고, 끝없이 보이는 계단을 마주했다. 정산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지만, 입 밖으로 한숨부터 튀어나왔다. 계단은 편안할지도 모르지만, 무릎의 고통이 뒤따랐다. 가야 할 길이나 물러설 수도 없으니 이를 악물고 올랐다. 서둘러 핀 노란 털머위 꽃이 인사해왔다. 의외로 오르는 동안 점점 가빠오는 심장과 달리 콧속이 시원했다. 나무가 내뿜는 산소가 힘을 실었다. 가파른 능선이지만 짧아서 20여 분만에 정상에 닿았다.
올레 7-1코스 고근산의 묘미는 500m~700m에 이르는 원형 분화구를 돌며 풍경을 바라봄에 있다. 서귀포 서호동 동네의 주민은 뒷산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 매력은 한라산에 버금갔다. 분화구 주위를 돌면 서귀포 구, 신시가지와 범섬, 문섬, 섶섬, 자귀도, 마라도가 걸쳐있다. 박형님이(자드락길에서 만난 분) 말을 건네 왔다. “저기 나 여기 사진 한 장만 찍어줘.” “아~ 네” 만난 지 하루도 안 되어 서로 나눌 이야깃거리가 부족했다. 그저 짧게 전해오는 질문과 답이 대화가 전부였다. 길 위의 동료로 위안을 삼았고, 귀찮은가 싶다가도 귀중한 인연임을 깨달음을 느끼게 해 준다. “형님 속도 좀 낼까요.” 소나무(곰솔)로 둘러싸인 분화구 둘레 길 15여 분을 끝맺을 무렵 전망대가 보였다. 뜀걸음으로 전망대에 올랐다. 직선으로 바라보이는 한라산의 능선으로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을 법하다. 고근산은 그만큼 당당하고 근엄했다. 전망대에선 소나무로 꽁꽁 숨겨놓았던 분화구도 얼굴을 드러냈다.
가파른 계단 길을 내려오니 다시 도심으로 들어섰다. 고층 건물과 자동차가 북적이는 완벽한 도심은 아니었지만 금세 숲이 그리웠다. 딱딱한 검은 아스팔트 길을 재촉하며 제주 본연의 모습을 만끽했다. 나무의 경호에 돌담과 돌담 사이의 오솔길을 걷다 마을에 닿았다. 노란 귤밭을 마주한 시커먼 돌담의 풍경은 한층 더 고급스러웠다. 그렇게 올레길을 돌아 돌다 보면 지나가던 할머니께 인사도 나누고, 그토록 바라던 새콤달콤한 귤도 한 아름 얻는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목마름에 껍질을 홀랑 벗긴 후 통째로 입안으로 틀어넣었다. 함께 한 시간도 어언 3시간이 넘었다. 어색함을 던져버리고 볼록 튀어나온 볼을 마주 보며 웃는다. 입술로 귤즙이 줄줄 새어 나왔지만, 우정은 점점 쌓였다. 그렇게 한동안 둘은 잡다한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고, 하논 분화구에 이르렀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다시 나무가 우거진 한적한 길로 들어섰다. 언덕 아래 수확을 마친 들판이 펼쳐졌고 바다 한가운데 문섬이 떠있다. 짐작컨대 깡마른 들판이 하논 분화구로 여겨졌다. 주변은 풍경은 오직 하논 분화구를 향했고 마음은 급해졌다. 성큼성큼 뒤따른 형님을 부르면 걸었다. 내리막길을 거의 내려왔을 때쯤 우측으로 절 하나가 보였다. 이름은 “봉림사” 최혜봉 스님에 의해 처음 용주사라는 명칭으로 세워졌다. 많은 세월을 겪으며 몇 번의 이름이 바뀐 끝에 일경 스님에 의해 봉림사로 전해져 왔다. 시간은 조급했지만, 사찰이 궁금해 쏜살같이 들어갔다. 생각 외로 규모가 작았으며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듯 조용하다. 사찰 입구 앞에 지나가는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귤 박스가 누군가 있음을 알렸다. 작은 사찰이지만 그 위용만큼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가까워질수록 알 수 없는 힘에 기가 빨렸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다. “4.3 때 잃어버린 마을” 글이 보인다. 눈에 보이는 건 귤밭뿐 마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연유는 이랬다. “100여 명의 주민들이 농사와 축산업에 종사하며 살았다. 1948년 4월 3일 사건의 전말이 이어진 11월 무장대의 습격으로 주민 1명이 사망에 이른다. 주민의 죽음으로 인해 소개령이 내려지고 경찰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소각된다. 그런 비극에 살아남은 마을 주민은 제주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마을이 하논 마을이다.” (소개령 : 공습이나 화재 등에 대비하기 위해, 한곳에 집중된 주민이나 물자, 시설물 등을 분산시키는 명령) 아무래도 힘이 빠졌던 이유는 승천하지 못한 영혼의 아픔을 기억해 달라는 손짓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라져 버린 마을 돌담길을 쓰다듬으며 농로길을 따라 화구원 논바닥으로 몸을 옮겼다. 제주에서 벼농사를 짓는다는 말을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제주 지역 내 크나큰 건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왜? 하논 분화구만 벼농사 경작을 할 수 있게 된 걸까. 옆에서 걷던 형님께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하하하” ‘’ 내가 그걸 알 리가 없잖아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드러났다’ 올레길을 걸으며 조사를 하지 않은 나를 탓해야 했다.
수확이 끝난 논바닥 중심으로 걸어갔다. 자세히 들어다 보니 이삭을 거둔 지푸라기는 보리가 아닌 볏짚이다. 눈앞에서 확인하면서 신기하다. 논바닥도 다른 어느 밭과 들과 다르게 쫀쫀함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하논에 대한 모든 정보를 뒤졌다. 휴대폰과 시간을 보낼수록 벼농사를 할 수 있게 된 경위를 조금씩 알아갔다. “하논 분화구는 우리나라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로 칼테라 지형이다.
용암과 화산재의 분출 없이 지하 깊은 땅속의 가스와 증기가 폭발하여 생성된 분화구며, 지표면보다 낮고 화산체보다 분화구가 큰 게 특징이다.” 그렇다고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건 아니었다. 원천적인 물이 필요했다. 정보에 있어 뭔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올레 7-1 코스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휴대폰에 더 매달렸다. “100만 년 전 물이 빠져나갈 수 없는 현무암질 암편과 응회암이(가는 모래로 생성된 돌) 쌓여 만들어진 지층. 벼농사를 지을 정도의 지하수가 지층 위로 솟아올라 제주에서 유일하게 벼농사를 짓게 된 곳이다.” 몇 분을 소비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확실히 알게 되었다. 논둑을 따라 한 바퀴 휭~ 돌고 누른 벼가 익는 가을의 만남을 기약했다. 신비한 하논에서 생산된 쌀밥을 먹고 싶어 졌다. “형님도 신비의 쌀을 드시고 싶죠.” “아니 난 그냥 맛난 육지 쌀 먹을란다.”
하논 분화구를 빠져나와 막바지에 다다른 올레 7-1코스가 끝을 보여 갔다. “하논 분화구 방문자 센터”를 끝으로 하논과 작별이다. 그렇다는 건 처음 만나 웃지 못할 해프닝을 서로 나눈 형과 헤어질 시간이 가까이 왔음을 의미했다. 엉또 폭포, 엉또 다리, 하논 분화구 모든 게 신기로운 올레 7-1코스는 유일의 천국이다. 이처럼 마음을 파고들어 온 한 남자, “박형님”을 유일무이 기억할 것이다. 긴 여정의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다. 서귀포 터미널부터 시작하여 걸매 생태공원까지 15.7km. 작은 공원만 마주하다 규모가 꽤 큰 공원을 만났다. 공원이라기보다 하나의 숲을 연상시킬 만큼 난대림으로 우거진 보호 지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보상을 받는 기분이다. 물줄기가 걸매 생태공원을 가로지르고, 산책로가 뻗은 곳마다 손에 닿을 듯 생명이 숨 쉬었다. “걸매”는 물 도랑이 막혀 메워져 항상 물이 고여 있다는 뜻으로 어류와 조류가 서식 공간이다. 헤엄치는 물고기와 물살을 가르는 원양을 보며 쉬고 싶었다. 막상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산책로를 걷다 순간 발각된 풍경에 걸음을 멈췄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폭포가 저만치에 떨어져 눈물을 쏟아내었다. 1m 크기의 무태장어가 사는 천지연 폭포다. 소나무 어깨 아래로 내려 보이는 천지연의 매력이 심장에 불을 지른다. 가슴에서 눈까지 불꽃이 튀긴다.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전개다. 하지만 “사진 한 장만 찍어줘라” 마지막이지만 썰렁한 형의 한 마디에 처음으로 돌아갔다. 걸매 생태공원이 아쉬움에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공원보다 식물원과 숲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쉬이 끝나지 않을 결정에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방법뿐이다. 몇 달 후 봄을 맞는 매화가 향기를 뿌릴 때 다시 한번 찾기로 한다. 꼬불꼬불 이어진 산책길 오르막길 위. 한라산을 마주하며 5시간의 올레 7-1코스 여정을 마무리 짓는다. “형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만납시다.” “그럴까?”(입가에 미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