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 쉬었다.
아침이 밝기 전이다. 꿈속을 헤매다 잠에서 깨어 반쯤 정신이 돌아왔다. 배가 쪼여오듯 아파왔다. 화장실로 달려가 엉덩이를 비집고 속이 비워지는 소리가 변기를 뚫고 와르륵~ 들려왔다. 밤늦게 먹었던 밀가루 빵이 문제였다. 시간은 5시 20분, 아직 해가 뜨려면 2시간 정도 남았다. 2시간이 지나 알람이 나를 깨웠지만 잠결에 비몽사몽이다.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아침의 상쾌함을 느낀다는 관념은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일 뿐, 녹록하지 않은 일상이 나를 깨웠다. 한동안 방구석을 뒹굴던 근육은 늘어져 펑퍼짐해졌다. 근육을 예전으로 돌리기 위한 방법은 몸을 혹사시켜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몸을 과시해야 할 계절도 아니고, 왜 지금에 와서 그래야 했을까? 대답은 단순 명료하다. 과시할 이유도 없고 덥지 않다는 이유이다. 자~ 근육아 달려볼까.
하모 체육공원에서 무릉 외갓집까지는 올레 11코스로 거리는 17.3km이다. 오랜만의 외출이라지만 무리일 수 있다. 출발에 앞서 심장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지만, 내심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평탄한 길을 주로 이룬 11코스지만, 17.3km란 거리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태연하게 놀던 근육이 무리하면 탈이 날게 확연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믿을 수 있었던 건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쇠심줄 같은 근육이다. 난 어찌 될까? 골목길을 돌아서니 하모항이 나타났다.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몇 척의 어선과 항구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음식점. 맛난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고 위장을 벅벅 긁었다. 점심을 먹기에 이른 시각, 말썽인 위장을 달래야 했기에 항구 앞에 앉아 챙겨 온 김밥을 뜯었다. 김밥 한 줄로 다가오는 유혹을 뿌리치기란 무리였을까? 연신 고개는 식당을 향해 시종일관이다. 항구를 벗어나야 했지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입안은 침만 가득 고였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 사람은 누굴까. 시작이 끝인 것처럼 고통의 압박이다. 먹고 싶어도 그림의 떡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 위장은 미련을 버리고 모슬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모항을 빠져나와도 여전히 바다는 곁을 맴돌았다. 훤칠한 외모의 바닷길은 마음 깊은 곳 사랑의 불씨를 집혔다. 사랑이란 단어도 모른 채 살았던 인생. 불쑥 들어온 사랑은 멈추질 않았다. 한때 사랑보단 짝사랑이었다. 선머스마처럼 털털하고, 호탕한 성격에 짧은 단발머리를 가진 여자아이. 덩치도 크고 몸도 통통했다. 예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지만 묘한 매력에 끌렸다. 태양 빛을 머금은 푸른 바다는 부드러운 여인이었지만, 바다는 선머슴이고 짝사랑이었다. 유전에 불이 붙은 듯 마음은 바다로 이끌렸고 더욱더 깊은 사랑에 빠졌다. 모든 이들을 사랑할 바다. 짝사랑은 이제 그만해야 하는데, 이 또한 혼자만 바라보는 짝사랑 일지 모른다. 야자수를 친구 삼아 모슬봉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일 1리 마을을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슬포 북쪽에 위치한 131m의 모슬봉을 만났다. 농로 길을 따라 이어진 능선 길 위, 가을의 향기 대신 파릇파릇 봄의 정령이 찾아온 듯하다. 보고 있음에도 신기한 풍경이다. 마음 깊은 곳 감정이 솟구친다. “왈왈왈~” 까무러칠 듯 이방인을 향해 짓는 익숙한 목소리에 심장이 움찔거렸다. 그 녀석이 나타났다. 몸은 직감적으로 몇 걸음 뒤로 후퇴했다. 애절한 감성은 사라지고 공포가 온몸을 휩쌌다. 사방팔방을 돌아보지만, 유령 같은 모습에 식은땀이 등골로 흘렀다. 지나가는 사람을 기다릴까? 그냥 모른 척 뚫고 지나갈까? 무사히 빠져나갈 궁리만 머리를 채웠다. 5분, 10분을 기다려도 주변은 태평스럽게 나 몰라라 외면했다. 방법은 이제 단 하나, 직진만이 살길이었다. 마음속으로 외치고 외쳤다. ‘제발 없어라...’ 발은 가볍게 걸음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심장이 손에 쥐어있는 듯 쿵쾅거림의 뜀박질이 전해왔다. 숨도 쉴 틈도 없이 내달렸다. 개가 튀어나와야 정상이지만 너무 조용했다. 유령의 환청이었을까? 입을 멍하니 벌린 바보 같은 표정, 10분을 머뭇거리는 동안 어디로 가버렸던 것이다. 몸은 지쳐 기진맥진했지만, 평화로움에 힘을 얻었다.
대정 여자 고등학교를 지나 대정읍이 보이는 소로를 지나 숲길로 들어섰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해송과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의 푸름이 눈빛을 감쌌다. 같이 걷자며 나를 유혹해 왔다. 숲 속에 취해 비실비실 어느새 숲길을 빠져나와 정상으로 오르는 길. 올레 17.3km 중 5km를 지점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모슬봉 능선 길옆으로 묘지가 늘어선 공동묘지였다. 왠지 두 손을 곱게 모아 예의를 갖춰야 할 것 같다. 길을 허락해준 감사의 표현으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묵념을 올린다. 묘를 지나 정상부에 다다라 제주를 손에 넣었다. 동쪽으로 한라산과 산방산, 바굼지 오름이 손 닿을 듯 다가왔고, 올레 10코스의 송악산과 섯알 오름이 내려다보였다. 형제섬을 품은 푸른 바다의 시원한 바람도 품 안으로 안겨 왔다. 공포의 싸움에서 견뎌내어 주는 선물일까? 내가 주인공인 듯 모두가 나를 바라봤고 내가 왕이었다. 행복에 젖은 모든 감각이 사르르 녹았고 기쁨에 살결이 파르르 떨렸다. 잠시뿐이었을까? 바람과 춤을 추는 억새 사이로 바스락거림은 공포에 휩싸였던 30분 전이 떠올랐다. 잔뜩 얼어버린 심장은 긴장의 끈을 쥐고 한 곳을 주시했다. 들개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멧돼지가 모슬봉에 살고 있을까.
짧은 몇 초에 열 개의 추리를 했다. 올레지기란 것을 알고 나니 몸에서 힘이 쫙 빠졌다. 별 탈 없이 모슬봉 정상까지 왔지만, 바랄 땐 그림자도 없던 모습에 괘씸했다. 독한 구석이 없던 나로선 금세 마음을 풀었다. 서울에서 온 여성 한 명과 경기로의 남자 두 명으로 세 명의 동료가 함께였다. 서울, 경기 서로 다른 지역에서 모인 친구로 서로 인사를 나눴다. 당분간은 공포에서 떠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모슬봉의 북쪽 숲길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내려가는 내리막길, 다시 수많은 공동묘지를 다시 마주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맞는 10월의 가을이었다. 모슬봉을 오르고 내리며 마주한 수많은 묘의 주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묘의 수만큼 많은 생각을 하며 모슬봉을 벗어났다. 중간 스탬프 지점에서 잠시 얘기를 나눈 셋과 함께 걷기로 했다.
도로를 만나나 싶더니 다시 농로 길로 접어들었다. 귤밭 저편에서 누군가의 부름이 들렸다. “귤 하나 드시고 가세요.” 귤밭의 요정이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요정의 마법에 걸린 듯 발걸음 멈췄다. 귤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밭으로 들어갔고 노랗게 익은 귤이 박스에 한가득 담겨있다. 보는 것으로 침이 식도를 타고 꿀꺽꿀꺽 넘어갔다. 인사와 함께 건네주는 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달콤 새콤한 향은 체면도 차릴 겨를도 없이 반응했다. 눈보다 빠른 손은 순식간에 껍질을 벗기고 귤을 입으로 넣었다. 목마르던 찰나 삼킨 귤 한 조각은 씹을 때마다 과즙이 톡톡 터졌다. 제주에서 만난 상냥한 오아시스다. 삽시간에 서너 개를 먹고 나니 목마름은 어느 정도 가셨다. 귤의 종류를 말하자면 조생 귤, 극조생 귤, 만생, 만감류로 나뉘었다. 먹었던 귤은 극 조생과에 속하며 농약을 치지 않은 노지 귤이었다. 귤에 대해 많은 것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길 바랐지만, 가야 할 길이 구만리다. 더 지체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위기였다. 새콤하지만 끝 맛은 부드러우며 달콤한 귤처럼 따뜻한 정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 뒤 올레길로 올라섰다.
계속 이어진 밭담 길에 지루할 만하지만, 눈앞의 펼쳐진 평원은 모든 지루함을 지웠다. 밭담 너머 모험의 바람이 실랑이를 벌어왔다. 지루함과의 전쟁, 두려움과의 전쟁, 호기심과 시간의 전쟁이다. 어떤 변화무쌍한 일들이 벌어질지 벌써 궁금해졌다. 등 뒤에 바짝 붙은 산방산은 어디서부터 따라왔을까. 뜨거운 태양 아래 모자를 산방산 모자를 쓴다. 조용한 들판 위에 그림자 셋이 따랐고 밭엔 하얀 찐빵이 폈다. 밭을 수놓은 메밀꽃은 찐빵이 생각나는 설원이다. 뒹굴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음에 슬펐다.
오른쪽 밭담 너머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 상이 눈에 들어왔다. 들판에 교회가? 뜬금없는 상황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황량한 길 위에 “모슬포 천주교 공동묘지”란 표지판이 어떤 곳임을 알려줬다. 다소 궁금함은 풀렸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궁금함이 생겼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묘지뿐 허허벌판이다. 그저 바라보면서 눈만 껌벅껌벅할 뿐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의문을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어느새 사라진 산방산이 그립기도 전, 밭길을 따라 15분 동안 걸었을 때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답은 “정난주 마리아 묘” 천주교 대정 성지가 존재였다. 변비로 막혔던 장(대장. 위장)이 뻥 뚫린 기분이다. 무엇보다도 막혔던 숨구멍이 뻥 뚫렸다.
정난주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묻히게 되었을까? 정난주의 본명은 정명련으로 정약용과 형제인 정약현의 딸이다. 그녀는 정조의 신의를 받던 황석범의 아들 황사영과 혼인을 맺게 된다. 그때까지는 아름다운 인생이었다.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이 황석영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천주교로 영입한다. 정조가 죽고 순조(1년) 1801년 주도 세력이 바뀌며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조정 대신의 힘에 세상은 급물살을 탄다. 당파 싸움으로 인해 천주교는 조선 땅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교인은 체포되거나 유배길에 오른다. 황사영과 정난주. 아들 황경헌도 벗어날 수 없었다. 황사영은 충북 제천 베론에 숨어 있다 잡혀서 사형을 당한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정난주와 두 살배기 아들 황경헌은 제주도로 유배된다. 근데 왜 하필 대정이었을까? 대정은 제주에서 가장 열악한 마을로 유배지로 최적화였다. 그렇다고 딱히 정난주가 힘든 생활을 보낸 것 아니다. 유배를 왔지만 정난주는 유배의 삶보다 주민들을 학문의 길로 이끌었고, 풍부한 지식과 교양을 가르쳤다. 주민들이 그녀를 “한양 할머니”라고 부르며 따를 정도였다. 파도는 거칠지만, 순항에 돛을 단 배와 같은 삶이다. 정난주는 66세 되든 해 삶을 마감하며, 동일리에 묻히게 되었다. 정난주를 비롯해 기구한 삶을 살다 간 가족의 모습이 그려졌다. 눈시울이 빨개지고 가슴이 활화산처럼 뜨거워졌다. 그를 받아준 대정 주민의 따뜻한 온기가 천주교 대정 성지를 품었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봐야 할 정난주 마리아 묘를 바라보라는 메시지가 전해왔다. 정난주의 삶에 비하면 나의 삶은 천하태평한 삶이다. 정난주 마리아 묘를 빠져나와 올레길로 다시 올랐다. 길 위의 하찮은 돌멩이조차도 새롭게 다가왔다. 귓속을 파고드는 새들의 노랫소리에 발걸음은 더욱 가벼웠다. 숲이 가까워졌음을 허파로 들어오는 공기가 소곤거렸다.
귤을 까먹으며 시간을 잡아먹을까 노심초사 걱정했는데 대정 성지의 온기에 빠졌다. 다른 사람이라면 지나쳤을 곳에서 시간을 허비해버린 생각이 든다. 인생의 길이 평단만 하지 않듯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조금이라도 습득함에 후회는 없다. 밭담을 걷고 다시 아스팔트 위를 걷고 무한 반복되는 길 위에서도 행복이 찾아왔다. 반복된 길은 다른 만남을 위한 몸과 마음도 잠깐의 휴식이다. 신작로로 빠져나와 사거리를 지나 비닐하우스를 끼고 두 번째 골목길로 들어갔다. 경운기와 농기구가 밭 여기저기 널브러진 흔적은 마을이 곧 보일 거란 뜻이었다. 모슬포를 지나 단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마을은 생소하게 다가왔다. 밭마다 다른 작물이 자랐다. 마늘이 자라는 밭을 지나면, 콜라비가 나왔고 손만 뻗는다면 뷔페를 차려도 될 판이다. 그림의 떡, 입맛을 다시며 길을 서둘렀다.
예상 적중. 700m에 달하는 농로 길을 돌아서니 신평리다. 고대했던 만큼 기쁨도 컸어야 했지만 인기척 하나 없다. 야자수와 돌담 사이로 바람만 지나갈 뿐이다. 말없이 걷던 셋도 황당했던지, 넋 놓은 얼굴에 웃음이 터졌다. 걸음을 멈춘 남자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오늘 최종 목적지가 여기까지입니다. 오면서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입을 연 이유가 마지막 인사였다. 서로 의지가 되었던 시간이 소중함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뭔지 모를 슬픔이 마음을 적셨다. “저기 연락처라도 주세요. 다음에 어찌...”
남은 거리는 6.3km 혼자 걸어야 할 구간이다. 길 건너편의 편의점으로 달려가 떨어진 식량을 보충한다. 물과 빵 그리고 주전부리로 과자 한 봉지. 가방을 채우니 한결 마음도 편해져 왔다.
신평리 마을을 떠나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 돌담이 그리는 각선미에 잡혔다. 10분 만이라도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발에 땀이 나도록 걷고 뛰었다. 점점 현대식으로 변하는 마을에 비해 제주의 옛 마을 모습이 잘 보전되었다. 연신 태풍에 쓰러지지 않은 돌담에 놀라며 신기한 눈초리가 바라볼 뿐이다.
신평리의 식도(농로길)를 지나 제주 서쪽 중산간의 허리쯤 허파로 들어갈 입구다. 언제나처럼 모험이 기다렸고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혼자란 두려움이 앞서서일까. 아드레날린이 마구 샘솟는다. 신평 곶자왈이란 간세를 지나 숲으로 향했다. 신평 곶자왈은 신평리에서 무릉리까지 이어진 지구의 허파를 파헤쳐 볼 생각이다. 크게 숨을 들이신 뒤 숲으로 향했다. 숲이라 해서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공포를 조심해야 할 뿐이다.
역시나 곶자왈은 숲이었다. 숲의 의미하는 "곶"과 자갈을 의미하는 "자왈"이 모여 만들어진 숲으로 나무만 빼곡한 숲으로, 총면적이 705만㎢에 이른 아마존 열대우림에 비교될 정도로 우람했다. 4.2km에 달하는 곶자왈의 시작부터 나무 그늘 아래에선 무형의 빛이 빛났다. 돌을 버팀목 삼아 나무는 뿌리를 내렸다. 넝쿨을 나뭇가지를 감고 올라 자연이 빚어낸 숲 속의 터널을 만들었다. 숲속의 매혹에 빠져들수록 미친 존재감이 숨겼던 발톱을 세웠다. 발길에 차이는 돌은 언제 태어났을까? 식물은 또 언제부터 곶자왈에 잎을 피웠을까? 그들의 속삭임은 모든 생명의 뿌리는 곶자왈이라며 일말의 여지도 없다. 공포도 잠재운 곶자왈이 품은 생명의 밧줄이다.
어디쯤일지도 파악이 어렵다. 살길은 오직 빨강, 파랑 리본을 끈을 잡아야 했다. 울퉁불퉁한 숲길에 피로가 급격히 밀려왔다. 무릎이 아프고 발바닥은 뜨겁고 몸 구석구석 말썽을 부린다. 숲이 주는 피로제가 아니었다면 정신마저 사라져 버릴 상태다. 정신을 가다듬는다. 혼자지만 밧줄을 따라 “영차영차” 힘을 끌어모은다. 바람을 타고 온 감미로운 향기에 취한다. 지난 2월 내 몸을 감쌌던 백서향꽃의 향기다. 그때의 순간을 기억한다. 어떤 명품 향수보다 자극적이지 않고 사람을 홀리는 향. 꽃이 피기 전 나뭇잎이 코를 자극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숲의 그늘은 더욱더 어두워졌다. 인기척이 없는 혼자만의 숲이 좋았지만 두려움을 씻어내기에 역부족이다. 걸음은 더욱더 빨라지고 숲 속의 여운을 남긴다. 늘 그렇지만 숲은 조용한 듯 생명이 숨 쉬었다. 조릿대가 깔린 숲 중턱 길을 파헤쳐 놓은 흔적을 발견한다. 사람의 짓이 아니다. 땅의 헤집어 놓은 상태로 멧돼지이란 것을 확신한다. 평온했던 심장도 발악하며 뛰었고 작은 소리에 걸음아 날 살려라. 달리기 시작했다. 가쁜 숨을 가다듬는 중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한 사람 공포를 씻어냈다. 무릉 곶자왈이 이어지고 얼마 가지 않아 곶자왈은 이별이 시간이 왔다. 곶자왈을 헤맨 지 1시간 10여 분만이다. 올레 11코스의 마지막 무릉리를 향해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