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락소락 게의 놀이터(올레 19코스 3)

올레 19코스

by 병욱이

소락소락 게의 놀이터


1km 남짓, 북촌 포구에 닿기 전 정자가 바람을 쐬었다. 올레길 위 아저씨, 아줌마의 쉼터다. 그 옆 환해장성 앞 물 빠진 작은 웅덩이가 소란스럽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다. 목을 쭉 빼고 눈을 부릅뜨고 바라봤다. 물 빠진 웅덩이는 구멍이 숭숭 뚫렸고 바닥을 뛰어가는 게가 천지삐까리다. 게가 먹이를 찾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게는 3cm부터 7cm까지 크기도 모습도 다양하다. 가까이서 보려고 난간을 폴짝 뛰어내렸다. ‘쿵’ 하는 발소리에 놀란 게가 야단법석이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돌 밑으로 숨고 집으로 도망을 가고 정신이 없었다. 그중 제법 큰 녀석을 발견하고 다가갔지만 발걸음에 겁을 먹고 돌 밑으로 숨기 바쁘다. 살짝 돌을 들쳤다. 옆으로 쏜살같이 뛰어간다. 100m의 영웅 "우사인 볼트"만큼 재빠르다. 옆으로 뛰기 올림픽 종목이 있다면 금메달을 땃을 정도다. 그렇게 도망친 게는 바보처럼 또다시 돌 밑으로 숨어들었다. 역시 나 또한 돌을 다시 들쳤다. ‘으하하’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좁은 돌구멍이 집인 것처럼 들키지 않으려고 돌에 납작 붙어 꼼짝을 하지 않는 게. 툭 튀어나온 두 개의 눈만 요리조리 움지락거린다. "넌 커다란 내가 보이겠지." 집게발을 툭툭 건드려 보지만 도망칠 기미가 없다. 게는 그저 돌과 한몸처럼 "난 절대 찾지 못 할 거야! 잘 숨었어. 만사 OK" 자신만만히 숨어있는 모양이다.



"야 너 들켰어. 어쩌나“


그렇게 한 마리의 게와 노는 사이 미처 도망가지 못한 게가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줄행랑치는 녀석들을 잡아 보려했지만 잡기란 여간 쉽지 않다. 너희들은 숨바꼭질의 왕, 옆으로 달리기의 승자니 쫄 것 없다. 난 가려니 편안하게 놀아라. 북촌 교회를 지나 일몰이 아름다운 무인도를 지나 북촌 포구에 발을 찍었다. 다려도 주변은 어종이 풍부해 낚시꾼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4.3 사건 당시 일부 북촌 주민이 토벌대를 피해 숨던 아픔이 서려있다. 아름답지만 그보다 더 아픔이 있는 곳이다.

북촌포구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숲이다. 동행이 없는 나. 혼자 갈 수 있을까. 숲은 언제나 두려운 대상이다. 어떤 위험이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본다. 그래 가보자.


6km만 더.


북촌포구를 벗어나며 바다와 당분간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꼬닥꼬닥 이어진 북촌 골목길을 한 바퀴 돌고 싶었다. 그러나 밤이 오기 전 숲을 벗어나야 한다. 급한 마무리를 끝내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한 채 숲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북촌 포구에서 북촌 동굴로 다시 숲이 있는 동북리 마을 운동장까지의 거리는 3km이다. 숲의 어둠을 알기에 모든 걸 제쳐두고 올레 19코스 중간스탬프가 있는 동북리 운동장으로 달렸다. 아무것도 몰랐던 올레 19코스 첫걸음이었다. 그때는 역주행으로 올레 20코스를 지나 동북리 운동장까지의 여정이었다. 20코스의 여정은 너무 좋았고 어느 정도의 체력이 남았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은 시각. 6km의 숲길을 걷기엔 충분한 시간이였기에 김녕서포구에서 복잡한 차도를 지나 농로로 접어들었다. 들판마다 방긋방긋 나에게 미소로 인사를 보내오는 모든 것들이 신기했다. 만나는 족족 관찰의 대상이었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내내 호기심에 빠졌다. 혼자만 빠져던 식물탐구였다.


되찾은 두려운 기억


띵까띵까 놀고 보고 걷다 보니 차츰 밭담 길은 사라지고 우거진 숲이 환영해 왔다. 솔직히 눈앞에 숲을 보니 겁이 났지만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무턱대고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근데 무슨 조화인지 내 노랫말에 맞춰 조용한 숲속엔 산새의 음악 교실이 열렸다. 여기저기 멜로디가 울러퍼졌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이렇게 좋은 길을 혼자 걷기에 아까웠다. 무서움은 어느새 사라졌다. 귀가 즐거웠고 계속 같은 모습에 지루할 법했지만, 그 모든 고정관념을 깨었다. 가끔 길을 헤매었지만 숲길을 억척스럽게 뚫고 갔다. 하지만 꼬불꼬불 쉼터 없는 숲길의 미로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숲은 금방 어둑한 밤의 그림자가 내렸다. 금새 다시 찾아온 두려움에 근육통이 찾아왔다. 풀숲이 쓱쓱~ 작은 소리에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환각마저 들었다. 혼자라는 생각에 심장과 두뇌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숲에서 동행을 찾기란 풀밭에서 바늘 찾기다. 나를 찾아달라며 외치고 싶다. ‘푸드덕’ 한 마리의 꿩의 날갯짓에 찔끔찔끔 오줌을 지릴뻔 했다. 팬티 아래로 줄줄 흘러내리지 않은 게 다행이다. 당장 숲을 빠져나가서 살 수 있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어두워지는 숲앞은 앞뒤 분간이 되질 않을 만큼 무서웠다. 1분 1초가 나에겐 긴급했다. 30분동안을 달려서? 아니면 긴장한 나머지 식은 땀을 흘린 것일까? 온몸은 땀을 뒤집어 쓴채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동북리 운동장에 다다랐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동네를 상상했다. 창문 밖으로 빛취오는 전등불 내가 사는 동네. 바라던 모습이 아니다 아직 난 숲속에 갇혔다. 오직 어둠이 내려앉은 숲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집념뿐이다. 그렇게 무서웠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린 숲길은 발길이 가볍지는 않았다. 그런 기억에 그토록 동반자를 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단 뜨거운 태양이 두려움의 기억을 불태워 재로 날려 보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숲을 빠져나와 김녕 서포구까지. 급히 올레 19코스의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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