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2부]

올레 14의 반코스

by 병욱이

세상은 혼자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이 절실하게 들어맞는 순간이다. 눈알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고 드디어 달달한 야자수를 맛보게 되었다. 금능 해수욕장에서 동쪽 방향으로 야자수 나무가 무리를 지어 이국적인 향기를 뿜었다. 제주에 야자수 나무가 많이 있다고 한들 이런 매력은 처음이다. 한발 늦은 걸까. 두 발을 늦은 걸까. 이미 야자수 나무 아래마다 텐트를 치고 쉬고 있는 야영객으로 가득하다. 이른 아침부터 선수를 빼앗긴 건인지도 모른다. 한 줌의 남은 그늘을 찾아 꼽사리라도 껴볼 심산으로 발을 슬쩍 들여놓는다. 뭔지 모를 따가운 눈초리가 콕콕 찌른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인사를 건네 본다.

“안녕하세요.” 표정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과 함께

“네 안녕하세요. 올레길을 걷나 보네요. 저도 여기 종종 오지만 걷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되네요.”

“아하~ 그러셨구나. 여기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야자수 풍경도 바다도요.”

“그렇죠. 해수욕하다 쉬고 싶을 땐 여기서 쉬면 되니 너무 좋더라고요.”

눈치가 없던 나였을까. 왠지 모를 아픔이 온몸을 타고 흘렸다. ‘자기들 땅도 아니면서 웬 전류가 이렇게 흐르는지 모르겠다.’

에메랄드 쪽빛 바다를 끼고 다시 태양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머리 위에 머물던 태양은 어느새 어깨 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좁은 모래 사구 언덕길을 풀숲을 헤치며 걷다 보면 비양도의 향기가 절로 느껴진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던 마음은 결국 가겠다는 결심으로 굳었다. 3.15km의 짧은 허리둘레를 가진 비양도를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을까. 바다란 녀석이 눈치가 없어도 이 정도일 것이라는 상상도 못 했다. 금능리 앞바다에 빠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협재 해수욕장에 퐁당 빠지고 말았다. 헤어 나올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금능 길 위에서 만난 돌하르방이라도 불러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돌하르방 왜 왜 왜 이런 시련의 곤욕을 치르게 만드는 거죠.’ 적어도 기본적으로 1km 이상은 거리를 두는 게 정상이 아닐까. 한꺼번에 밀려온 바다의 위세는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가 느끼는 공통 된 숙제였다. 금능으로 가려니 협재가 눈에 거슬렸고, 협재에 있자니 금능이 눈엣가시였다. 그 둘의 바다는 어느 누가 한발이라도 물러선다면 금이 갈 유리컵 같은 앙숙의 존재다. 바다만 너무 바라봐서일까? 몸의 기운이 쭉쭉 빨려 나갔다. 에라~ 모르겠다. 신발을 벗고 모래 위를 뚜벅뚜벅, 모래알이 발가락 사이를 들락날락하며 간지럽힌다. 물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운동에 불과하다. 미지근하게 데워진 바닷물이 발을 덮쳤고 오감이 찌릿찌릿 저러온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심장이 두근두근 여자 친구의 손을 맞잡은 느낌이다. 바다는 나를 쓰다듬고 나는 바다를 끌어안았다. 태양보다 더 뜨겁게 나는 맞이한 바다로 달궈진 몸은 점점 식어갔다. 이열치열이라지만 바다의 사랑이 너무나 뜨겁고 차갑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인은 사랑놀이에 바빠 보였지만, 공지영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란 말이 생각난다. 인생은 누구나 혼자란 생각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지만 어느 순간 난 늘 혼자임을 깨닫는다. 삶이란 혼자이지만 늘 둘인 그림자와 나와의 관계처럼 말이다.

연인의 웃음과 즐기는 쾌락은 잠시뿐이다. 그들의 사랑이 태양보다 뜨거워 결혼에 빠질 경우의 수는 반반, 헤어짐의 절차를 밟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올레 14코스 쪽빛 바다를 이룬 해변 길은 해탈을 위한 오작교이다.


몰디브 한 잔

힘을 너무 쏟았다. 기력을 보충할 아니, 그보다 쪽빛 바다와 이별의 시간이다. 태양에서 강탈당했던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잠시 커피숍을 들리기로 한다. 왼쪽, 오른쪽 눈동자를 굴린다. 어딜 봐도 간판마다 ‘coffee’란 글자가 수두룩하다. 한때 누군가가 나에게 진짜 좋은 사업이 있으니 함께 할 의향이 없냐며 제안을 한 일이 있다. 그것이 현재 바라보고 있는 “coffee” 가게였다.

“장사는 뭐니 뭐니 해도 물장사가 가장 많이 남는다니까. 힘든 일도 그리 많지 않고...”

달콤한 유혹은 귓가를 괴롭혔고 당치도 않게 고민이란 것에 빠졌다. ‘할까 말까?’ 결국엔 용기가 없어 거절할 것을 알면서 그 짜릿함을 즐겼다. 커피숍에 들어가지만, 커피를 즐기지는 않는다. 늘 부수적인 망고 주스, 캐모마일 차, 유자차 등을 골라 마신다. 어쩌면 시커멓게 멍든 커피보다 비싼 것을 선호하는 위장이 유별스럽다. 부유하지 않는 나로선 그 선택이 달갑지만은 않다. 투명한 유리컵에 쪽빛을 담아 몰디브 한잔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걸음은 비양도, 나의 에스프레소 첫 키스


드라마 D.P에 주연 구교환의 열혈한 연기에 6부작인 드라마는 한편이라도 빠트린 적이 없다. 구교환의 한호열 상병 캐릭터는 그야말로 유쾌하면서 옳은 말만 읊었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구교환이란 사람에게 매혹돼 버렸다. 나이 40에 맞지 않게 털털한 말투와 외모와 달리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장면에 반했다. 다음의 목표가 정해졌다. 발길은 비양도로 한 손에 에스프레소를 들고 그 에스프레소와 나의 첫 키스를 가져 볼 예정이다.

다시 푹푹 찌는 열기는 아스팔트를 뚫고 온몸을 감싼다. 하늘에 꽂힐 듯 솟아오른 한라산의 남벽이 눈에 선하다. 그나마 위로의 미소를 던졌다. "헉헉~" 이제부터 올레 14코스의 끝, 한림항까지 고진감래의 시간이다. 뭐로 가던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던 말은 끝을 맺었다.




구독 콕콕^^

매거진의 이전글에메랄드 쪽빛 바다, 뭐로 가던 서울만 가면된다[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