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살아남기 (오름 투어 2)

다랑쉬를 오르다

by 병욱이
아끈(작은) 다랑쉬 모습
도로 공사를 한다며 파헤쳐지 예전 길 [화살표가 원래 길의 높이]

오름의 여왕은 건재하다


버스로 타고 오가며 봤던 다랑쉬 오름 입구다. 반가운 풍경이 냉큼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아~ 이제 다 왔구나. 다 왔어.” 안도의 쉼을 내쉬었다. 5.6km가 짧다고 하면 짧지만, 썩 그렇게 짧은 거리도 아니다. 누구에게 “당신 6km를 걸을 수 있겠어요.”라고 묻는다면 선 듯 “뭐 그거야 쉽죠.” 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기 가스의 주범이기도 한 자동차가 많은 도시를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제주의 모습은 그렇게 앞으로 변화할 테고 변화하는 데 있어 걱정이 앞선다.

조금 후면 좀 나아지겠지 하던 하늘은 시간이 흐를수록 어둠은 더 짙어갔다. 곧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다. 언뜻 빗방울이 손등을 때리는 기분도 든다. 앞으로 1.9km, 그까짓 것 20분이면 족하다. 여전히 사람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거리로 다시 난 마스크를 벗고 풀 냄새, 흙냄새를 맡고 싶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다랑쉬로에 큰 변화가 생겼다. 비포장도로가 어느새 까만 아스팔트 냄새를 풍기며 검은 형체를 드러냈다. 나의 어리둥절한 표정과 달리 바뀐 다랑쉬로는 어색함 하나 없이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일지 모른다. 자연은 그렇게 그들을 서서히 받아들였다.

인간은 다랑쉬로의 길이 그렇게 불만족스럽웠을까? 교통이 복잡했던 걸까? 자연과 상반 된 난 당최 이해되지 않는 모습에 심히 화가 났다. 무슨 이유로 이렇게 자연을 파괴해야만 했던 걸까? 편리함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을 지켜야 할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갈림길에 있는 지금의 제주다. “인생의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 사이이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세상은 살면서 끝없이 결정을 내려야 하듯 제주도 또한 결정의 순간이다.

길가를 수놓았던 여러 야생화의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모습을 감췄다. 아니 사라져 버렸다. 걸음을 걸으면서도 여기가 어딘지 헷갈릴 정도로 바뀐 탓에 정신이 혼미하다. 변화를 시도하는 제주의 결정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보기로 한다.

감상할 거리도 없다. 뻥 뚫린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그냥 앞을 보며 한참을 걸었다. 익숙해질 만한 풍경이 눈앞에 다가온 듯 뒤엎어진 공간에 머리가 멍해진다. 그렇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를 정도로 멍한 머리로 다랑쉬 입구에 다다랐다. 굴삭기에 패고 부서지고 남모르는 곳에 구멍이 생겼다. 제주가 비명을 지른다. 저러다 돌 갈라지듯 제주가 또각또각하며 반으로 갈라질까 봐 겁이 난다.

주위가 쉼 없이 변화하는 것과 다르게 다행히 다랑쉬 오름만큼은 오름의 여왕의 명성답게 여전히 건재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연신 입 밖으로 한 단어만이 튀어나왔다. 오름마저 손을 댄다면 제주도청, 시청을 찾아가 따질 참이었다.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긴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니 의미가 새롭다. 오랜만에 만난 나무의 시선들이 나를 주목한다. 부끄러워서 후끈하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시야가 탁 트인 다랑쉬 오름의 중간, 서둘러 올랐더니 숨이 머리까지 차올랐다. 헉헉대며 보는 풍경이 더욱 달콤하고 꿀맛같다. 이래서 오름은 여왕이란 이름이 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름은 원뿔 모양으로 해발 382m이며, 비고 227m로 다른 오름에 비해 높다. 정상을 밟으려면 지그재그 길을 네 번 통과해야 한다. 그 사이 아래로 아끈 다랑쉬 오름이 마음의 끈을 끌어당긴다. 오름 같지만 그렇다고 딱히 오름 같지 않다. 신기해하며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날씨는 잔뜩 울상을 짓고 있어도 풍경은 그렇지 않다. 멀리 성산 일출봉, 은월봉 등 풍경에 빠지기 딱 좋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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