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 오름을 오르다
숨을 헐떡이며 20분을 앞만 보고 올랐다. 잠시 쉬어도 될 정상에 도착했지만, 정상 아닌 정상으로 아직 150m 정도 더 올라야 한다. 이번에 소나무 숲길이 마중을 나와 환대했지만, 처음처럼 부끄러워할 여유가 없다. 돝오름을 올라가기 위해서 지체된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해야 한다. 휘리릭 억새 같은 여린 몸을 날렸지만 20m도 못가 작은 풀꽃에 발목을 잡혔다. 잡풀로 뒤엉킨 틈에 얼굴을 내밀 듯 말 듯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롱꽃”과 비슷하지만, 그녀가 아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처럼 좀 더 가까이 좀 더 면밀히 살펴야만 했다. 잎은 없고 줄기에 꽃만 대롱대롱 매달린 것이 안쓰러워 보인다. 잎이 없는 꽃이라니 난생처음 보는 녀석이다. 정체를 알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전파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 뿐이다. 눈 깜작 할 새 찾긴 그녀의 이름은 “야고”이며 억새와 같은 풀에 기생해 살아가는 기생식물이다. 국내에서도 남부 지방 일부 섬에서만 발견된다는 희귀식물로 야고를 본 건 제주 생활 5년 만에 첫 만남이다. 보고 있으면 자꾸 훔쳐보고 싶은 색과 모양은 관상용으로 제격이다.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작은 새색시다. 10월쯤 씨방에 작은 아기가 몇십개 입양이라도 해야겠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릴 수 있을까?
허리를 펴고 정상으로 향했지만 몇 걸음 못가 다시 찾게 되는 야고다. 뒤따라오던 꼬마 숙녀의 손길을 먼저 받는다. 손길보단 막대기로 툭툭 찌르는 모습이다. 자기에게 무슨 해라도 되는 독풀이라도 되는 양 꺼리는 걸까? 희귀함에 겁이 났던 걸까? 그녀의 비정한 대접에 왠지 안쓰러운 표정을 짓게 만든다. 시간은 흘러가고 계속 지켜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음에 다시 찾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리를 벗어난다.
다랑쉬 오름의 가장 높은 곳 227m 정상, 360도 빙그르르 돌며 풍경을 눈에 담는다. 일찌감치 온 일행이 추억을 남기기 여념이 없다. 들판 위로 봉긋 솟아오른 오름은 저마다 각각 다른 빛을 발한다. 시원한 바람은 오름이 쉬는 콧바람이 아닐지 생각된다.
오름을 잠시 등지고 다랑쉬 오름의 분화구를 내려다봤다. 젊음의 뜨거운 열정보다 어머니의 마음처럼 깊고 넓은 따스함이 느껴졌다.
다랑쉬 분화구 둘레길은 1,500m로 높은 오름 500m에 비하면 3배나 크다. 완만한 능선이기에 그리 어렵고 힘들지 않다. 앞서가는 키가 135cm쯤 될 법한 초등학생도 거뜬한 트래킹 코스다. 누구나 그렇지만 그 길을 걷는다는 건 행운일지 모른다. 엄마를 뒷전에 두고 폴짝폴짝 뛰어가는 뒷모습이 높은 오름에서 봤던 강아지의 모습과 흡사하다. 입가에 발그스레한 초승달이 행복하게 누워 잠잔다. 그 아이 앞으로 잠자는 안돌 밧돌 오름, 체오름 등과 지나쳐왔던 백약이 오름까지 손이 닿을 듯 아련하다.
산보다 족은 오름이지만 풀꽃도 풍경도 즐기고 볼거리가 다양하다. 이젠 내려갈 시간이 다가왔고 아쉬움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무엇을 빠트려버린 허전함이 마음을 꽤찼다.
돝오름을 갈 생각에 몸을 급하게 움직인 탓에 무릎에 이상이 발생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쉼 없는 걸음에 적잖은 피로의 누적으로 보인다. 삐걱댔지만 오래 걸었던 만큼 조금 쉬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오름을 내려오는 내내 통증을 퍼부었고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왔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마지막 목적지인 돝오름을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쉬움의 끈을 놓기가 너무 싫었다. 재차 무릎의 상태를 확인하며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애꿎은 무릎만 매만지며 타일렀다. “가자. 가자. 제발 가볼 수 있게.” 톡톡 바늘로 무릎을 찔렀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끝내 방법은 쉬는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내 제일 싫어하는 포기란 단어를 꺼내 들었다. 하루의 끝마침이자 눈물의 고배다.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상황을 겪는다. 어쩔 땐 뼈아픈 고비의 쓴맛도 맛본다. 그렇다고 포기는 하지 않는 건 포기란 곧 마지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포기가 아닌 “NEXT”의 시간을 기다려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