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아기에게서 시아버지의 얼굴이 스치다.

나의 출산 무용담

by 아임파인


출산을 두 달 앞두고 퇴사를 시원하게 날린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몇 년 만에 직장인 생활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취해있었다.

둘째 딸 디스어드벤티지를 논하기에 퇴사 후 찾아온 무한의 자유와 앞으로 엄마가 될 기대감에 기분이 꽤 좋은 상태였고,

혼자 놀기를 잘하는 나에게 출산 예정일까지의 낮 시간은 매일매일을 모 하고 놀지 생각하며 설레었던 순간으로 가득했다.


웬일로 국악 태교 음악을 듣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점심시간 즈음에는 그 당시 남편 직장이 있었던 여의도까지 가서 남편은 안 만나고 여의도 공원을 산책하고 오는 나만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은 넘사벽으로 유명해지신 오은영박사님의 강연이 동네에서 열린다길래 가서 열심히 받아 적고 손뼉 치고 왔던 것도 추억이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산책을 한 탓일까?

예정일보다 2주나 앞선 어느 날 밤, 출산가방도 전혀 준비해놓지 않고 있던 그날 밤.

갑자기 시작된 약간의 진통에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보자고 했던 우리의 가벼운 발걸음은

일주일 후, 새로이 만난 생명체를 안고 어찌할 줄 몰라 종종 되는 부모의 발걸음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남성들의 군대 이야기와 버금가게 여성들의 출산 이야기도 꽤나 흥미진진하고, 각 종 경험담이 무수한데

나의 경우도 친구무리 중 가장 먼저 출산을 한 까닭에 마치 인터뷰를 하 듯 나의 출산경험담을 한동안 열심히 풀어내던 기억이 난다. (너희가 게맛을 알아? 느낌으로..)


재밌는 것은, 진통만 10시간가량 무통주사 없이 생으로 했을 당시의 아픔은 내 평생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라, 절대 절대 잊지 않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었는데,

그 고통은 한 달 정도 지나니 싹 다 기억에서 지워지고 만 것이다. 진짜 아팠는데.. 진짜 기억이 안 나더라.

사람들이 그래서 둘째, 셋 째도 낳는 걸까?


하지만 여전히 잊히지 않는 강력한 기억이 있으니..

세상에 처음 나온 아가를 딱 내 옆에 데려다주셨을 때의 순간이다.


드라마에서 보면 갓 엄마가 된 배우는 세상 감동한 표정과 함께 고운 눈물을 흘리고, 그런 부인을 남편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 장면.

그런데 나의 모먼트는 사뭇 달랐다.

’………. 안녕하세요… 아버님이 어인일로…..?‘


우선 그동안 상상해 오던 뽀얀 아가가 아닌 불그스름 쭈글쭈글한 아가인 것도 살짝 충격이었는데 심지어 아버님과 흡사한 얼굴로 나를 향해 있었던 것이다.

밤샘 진통으로 너무나 지쳐서 당장이라도 기절할 느낌이었는데 잠시동안 온몸의 놀람세포가 동시에 각성하는 기분이랄까?

감동의 눈물은 넣어두고 짧은 1-2분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중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나는 2가지 생각은

1. 나는 모성애가 없나? 왜 눈물이 안 나지, 왜 덤덤하지?… 2. 어떻게 이 생명체는 남편을 넘어 아버님 느낌이 이렇게 물씬 날 수가 있지?



다행히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출산을 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그리 특이한 경험을 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구든 아이와의 첫 만남에서 감동을 느끼기에는 출산과정이 너무 충격적으로 힘들며,

엄마의 모성애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과 비례해서 제곱배로 증가한다는 것을.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아가와의 첫 만남에서 시어머니나 시아버지 모습을 만난다는 것도 나름 재밌는 공통점이었다.


덤으로 더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정말 부모 마음은 아이를 낳아봐야 200% 정도 이해가 잘 된다는 것이다.


“너도 애를 낳아봐야 부모 맘을 알지! “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 말은 정말 진실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그래서 나도 지금 내 아이에게 이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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