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미국적인" 가치
이민자로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을 뽑아보자면, 11월 넷째 주 목요일마다 찾아오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 아닐까 싶다. 크리스마스도 큰 명절이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기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종교와 민족이 다양한 미국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명절이 있으니, 바로 "이주민들이 첫 수확을 감사하면서 원주민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기념한 날"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알려진 추수감사절이다.
특히 타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뿌리내린 이민자들에게는 감회가 새로운 날일 거라 생각한다. 이민 '1.5세대'인 나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한 나는 어느덧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내겐 오지 않을 것 같던 정체성의 변화—'미국에 사는 한국인'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가 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모국어가 바뀌지 않았듯이 내가 이민자라는 사실 또한 잊히지 않는다. 여전히 이맘때쯤이면 이민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이 기억나고, 이제 그것을 지나갔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예전엔 몰랐던 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감사한 일들이 참 많다고 느껴진다.
물론 나는 성숙해지기엔 멀었는지 아직도 불평이 잦다. 과거에 아쉬운 점만 보이고 감사할 줄 몰랐던 것이 후회되는데, 미래에도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해야겠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게 가족이란, 모든 것이 변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해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버팀목이다. 우리 가족은 원래도 친밀했지만, 미국에 살면서 더욱 끈끈하게 뭉치게 되었다. 내가 외국에 있었을 때를 제외하곤 매년 추수감사절을 가족과 함께 보냈는데, 평소에도 항상 시간을 같이 보내기 때문에 언제나 가족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이 멀리 있거나 사정상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와 닿을 것이다.
요즘은 가족 대신 친구들끼리 보내는 "프렌즈 기빙(Friendsgiving)"이 젊은 세대 위주로 인기를 얻고 있으나, 추수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 비슷하게 온 가족이 모여 만찬을 즐기는 것이 전통이다. 아직도 가족 중심주의가 강한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home"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날로 여겨진다. "Home"은 집이나 거주지뿐 아니라 고향 또는 가정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의 생김새가 제각각이듯이 미국에 존재하는 가족의 형태도 다양하다. 남들이 보기엔 이상적이지 않은 가정일지라도, 자신만의 "home"이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원주민의 관점에서
대다수의 미국인에겐 훈훈하게만 느껴지는 추수감사절이 원주민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사실 추수감사절이 "정착에 어려움을 겪던 청교도들이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첫 수확을 거둔 후 그들과 음식을 나누며 기념한 날"로부터 시작됐다는 일반적인 설명에는 많은 논란이 있다. 실제로 초기 추수감사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추수감사절에 배부르게 만찬을 즐기는 풍습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의 기독교 문화(금식 후 식사)에서 유래했고, 19세기에 들어 재발견된 청교도들과 왐파노아그 족의 일화를 이미 미국에 자리 잡은 추수감사절 전통에 맞춰 짜 맞춘 것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미국 원주민들 시각에서 추수감사절은 백인이 주인공이 되어 역사를 미화시키는 날이다. 모두가 믿고 싶어 하는 "최초의 추수감사절"의 평화로운 공존 이야기와 현실은 거리가 있다. 알고 있다시피, 아메리카의 '개척'이 시작됨과 동시에 원주민들에게는 폭력과 수탈의 시대가 열렸다. 이주민들이 가정을 꾸리고 그들만의 "home"을 만드는 동안, 원주민 가정은 해체되기 시작했고 그들의 "home"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나마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우리를 기억한다"는 원주민의 말처럼, 그들의 존재는 오랫동안 잊혀 있었다.
나도 학교에서 "최초의 추수감사절"에 대해 배우긴 했다. 초등학생 때는 어두운 역사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서인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북아메리카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인 수확을 거둔 뒤 사이좋게 만찬을 즐겼다"는 식으로 포장된 이야기를 배웠다. 물론 학년이 올라가면서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미국 역사를 배우게 됐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원주민들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에 비판적인 시각을 자주 접하지만, 이 곳과 성향이 다른 지역에서는 "원주민들도 싸웠으므로 백인만 악마화 되는 것은 불공평하고, 과거의 일에 현대의 백인들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약육강식은 모든 문명이 겪은 역사의 일부"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원주민들을 '패배자'로 보는 쪽과 '희생자'로 보는 쪽 모두, 그들이 '생존자'라는 사실은 자꾸 잊는 듯했다.
대학에선 필수 과목으로 문화적 다양성의 이해를 돕는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마침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우는 수업도 있어서 수강하게 됐다. 인디언 카지노로 수입을 얻는 원주민 단체가 지원을 했다. 당시 수업에 참여한 원주민 학생들과 방문 강사인 원로 원주민 어르신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일부나마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컬럼버스의 날* (Columbus Day)에 대해서는 모두 모욕스럽게 생각하며 폐지하거나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추수감사절을 기념해야 할지 반대해야 할지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었다. 그냥 넘겨버린다는 사람, 애도한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다른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족끼리 모여 음식을 나누긴 하지만 축하하는 의미는 아니며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친다는 대답이 많았다. 비록 추수감사절의 배경은 원주민들에게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지만, 어쨌거나 취지만 놓고 보면 감사함을 느끼자는 날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감사한 일을 생각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되돌아본다고 했다. 그들에게도 역시 가장 소중하고 고맙게 여기는 대상은 "home"이었다.
추수감사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않는 경우, 현실적인 이유는 가정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수업에 참여한 원주민 학생들은 원주민 보호구역이 아닌 도시 지역에 살며 상대적으로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여전히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과거 미국 정부는 "주류사회에 동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격리시키고 기숙학교에 보내 뿌리와 단절시켰다. 세대를 거듭하며 계속된 차별과 빈곤 때문에 수많은 원주민 가정이 해체됐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주인의식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박탈감과 무기력은 대물림되어, 아직도 많은 원주민들이 실업, 마약중독, 범죄, 가정폭력, 정서적 학대 등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오랜 소외 속에서, 다른 미국인들과 달리 자신들의 "home"에서조차 보호를 받지 못하는 원주민들은 미국의 모든 인종을 통틀어서 가장 자살률이 높다. 그들의 미래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원주민 수업에서 땅을 잃고 가족의 일부를 잃었어도 여전히 "home"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음을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가정을 지키는 것은 그들의 미래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 주인"으로서
아무래도 불편한 역사를 자세히 파헤치며 느껴지는 무거움보다는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과식하는 날"이라는 설명이 주는 포근함에 더 집중하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좀 더 넓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다시 "최초의 추수감사절"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청교도와 왐파노아그 족의 만찬을 돌아보자.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왐파노아그 족은 손님이 아니라 "공동 주최자(co-host)"였다.
원주민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미국도 없었을 테지만, 1년에 한 번씩 감사하는 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고마워하는 것을 잊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이민자기에, 낯선 나라에서 혼자 힘으로 새 삶을 개척했다는 뿌듯함을 가지는 것이 이해 간다. 하지만 다시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보면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는 것이 보일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주민들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지식은 새로운 인구가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됐고, 그들이 천연자원과 자연을 잘 보존한 덕에 미국이 현재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원주민뿐 아니라 자의로든 타의로든 미국에 건너온 이주민들 또한 노동력과 재산, 아이디어 등으로 기여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노예, 노동자, 주부, 예술가, 교사, 과학자, 사업가... 당시에 인정받았던 아니던, 모두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하며 지금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고마운 이들이다.
평범한 아시아계 이민자 중 한 명일 뿐인 내 존재감은 작지만, 그래도 나 역시 정당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주인의식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느낀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원주민... 같은 나라에 살지만 서로의 다름 때문에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이곳은 나의 "home"이자 그들의 "home"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인들을 포함, 주류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도 엄연한 미국 사회의 구성원들이기에 모두 "공동 주인"으로서의 주인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또 그만큼 서로를 인정해줘야 한다.
지금 미국은 분열되어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다른 의견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대립을 통해 균형을 맞추며 성장할 수 있었고,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의 "home"이 될 수 있었다. 미국 정부가 원주민들을 완전히 지워버릴 순 없었듯이, 외면당하던 소수자들도 살아남았고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으며 지금도 한 걸음씩 더 권리를 쟁취하고 있다. 당장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크지 않더라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서 자신의 "home"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미국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home"이 있게 해 준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
*컬럼버스가 유럽인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을 기리는 공휴일로, 이제 일부 지역에서는 원주민의 날 (Indigenous People's Day)로 고쳐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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