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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viar Nov 28. 2018

목요일에 뭘 먹었냐고요?

11월 넷째 주 목요일은 "먹요일"

미국인에게 지난 목요일에 뭘 먹었는지 물어본다면, 아마도 대다수가 비슷한 대답을 할 것이다. 지난 목요일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추석 하면 송편이 떠오르듯이, 미국인들의 추수감사절 식탁에도 단골로 올라오는 몇 가지 음식이 있다.


대표적으로 오븐에 통째로 구운 칠면조 요리가 있다. 추수감사절은 "칠면조 먹는 날 (Turkey Day)"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징적인 음식이다. 미국 칠면조 연맹의 자료에 의하면 작년 추수감사절에 요리된 칠면조는 약 4500만 마리라고 한다.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먹게 된 이유는 청교도들이 야생 칠면조를 사냥해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들이 사냥한 새가 칠면조인지는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몸집이 크고 느린 칠면조가 잡혀먹었을 거라는 추측이 정설로 굳어졌다. 칠면조 외에도 돼지 넓적다리로 만든 햄 같은 육류를 주 메뉴로 간단한 애피타이저와 몇 가지 사이드 디쉬, 그리고 펌킨 파이나 피칸 파이 같은 디저트를 먹는다. 단 것을 좋아하고 디저트를 중요시하는 미국인들의 명절 식단에 파이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물론 반드시 이렇게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만큼이나 추수감사절 전통음식 또한 유래가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 그리고 미국은 민족과 식생활이 다양한 만큼, 같은 명절이어도 각 가정마다 먹는 음식이 다르다. 예를 들면 멕시코계 미국인들은 따말레스를 먹고, 채식주의자들은 식물성 음식을 먹는 식이다. 그냥 각자 좋아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면 된다. 사실 추수감사절 저녁식사의 핵심은 뭘 먹느냐가 아니다. 식곤증이 올 때까지 배를 채우고 행복한 돼지가 되어 곯아떨어지는 것을 "Thanksgiving nap"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추수감사절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우리 집 추수감사절 저녁상은 이러했다:


① 로스트 치킨  Roast Chicken
꿩 대신 닭? 칠면조 대신 닭!

추수감사절 칠면조와 관련된 전통이 있는데, 가슴 부분을 먹을 때 나오는 V자형 뼈 위시본(wishbone)의 양 끝을 두 사람이 잡고 서로 잡아당겨 긴 쪽을 갖게 된 사람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닭이나 오리 등 다른 조류도 위시본이 있기 때문에 칠면조를 먹지 않아도 소원을 빌 수 있다.


사실 칠면조는 덩치가 커서 굽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특유의 비린내가 있어 손질과 요리가 까다로운 편이다. 워낙 크다 보니 대가족이 모이지 않는 이상 먹다 남기기 십상이라, 남은 칠면조는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천덕꾸러기가 된다. 우리 가족은 칠면조를 별로 안 좋아해서 닭으로 대체했다. 그동안엔 주로 닭튀김을 먹었으나 올해는 좀 더 전통적인 느낌을 내고 싶어 오븐에 구웠다. 비록 칠면조 구이는 아니지만, 추수감사절 느낌을 내기 위해 닭의 발목에 종이로 만든 프릴을 씌워줬다. 이게 신발처럼 보인다 해서 "turkey booties"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냥 보기에 안 좋은 뼈 부분을 가리기 위한 장식이다. 초간단 종이 프릴 만들기 동영상을 보면 정말 쉽게 만들 수 있다.


어떻게 만들었나: 닭의 내장과 꼬리 부분의 지방을 제거하여 잡내가 나지 않게 손질하고 깨끗이 씻은 후 촉촉한 육질을 위해 염지 했다. 습식 염지(wet brine)와 건식 염지(dry brine)가 있는데, BigOven의 Brined Roast Chicken 레시피를 참고하여 요리하기 전 하룻밤 동안 닭을 소금물에 담가놓아 습식 염지를 했다. 닭의 몸통 속에 마늘과 허브를 넣고, 닭 껍질 안쪽과 겉에도 허브가 섞인 버터를 듬뿍 바른 뒤, 두 다리가 위로 가도록 묶었다. 500°F(260°C)로 예열된 오븐에서 겉 부분이 갈색빛을 막 띠기 시작할 때까지 20분 정도 구운 뒤, 온도를 350°F(177°C)로 낮추고 20-30분간 더 구웠다. 오븐에서 꺼낸 후, 자르기 전 10-15분간 실온에 두고 레스팅(resting)을 해야 한다. 육수로는 그레이비를 만든다.


② 콘브레드 Cornbread
아메리카 원주민의 선물, 옥수수.

씹을수록 고소함이 느껴지는 콘브레드는 말 그대로 옥수수로 만든 빵이다. 미국 남부의 "소울푸드"이기도 한 콘브레드는,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추수감사절에 빠질 수 없는 음식 중 하나다. 한국에서도 즐겨먹는 옥수수의 기원지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럽인들을 통해 세계로 퍼졌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에 콘브레드를 먹게 된 배경은 이렇다: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이 기후에 맞지 않는 작물을 재배하다 실패했으나, 원주민들로부터 옥수수 재배법을 배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옥수수 활용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옥수수를 가루 내어 물과 소금을 넣고 반죽해 빵을 만드는 것을 보고 배운 이주민들도 만들기 시작했다. 콘브레드 및 옥수수가루를 활용한 요리는 주로 남부의 가난한 사람들, 특히 흑인 노예와 그 후손들이 생존을 위해 먹기 시작했지만, 차츰 더 맛있게 발전했고 남부 식단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만들었나: 콘브레드는 만들기 쉽고 많은 재료도 필요하지 않지만, 굳이 직접 만들어야 하는 음식은 아니라 그냥 한 팩에 50¢로 저렴하고 간편한 "Jiffy" 믹스를 사용해서 구웠다.


③ 더치스 포테이토 Duchess Potatoes
다소 아쉬운 감자 요리.

공작부인(duchess)이 먹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더치스 포테이토는 미국이 아닌 프랑스 요리다. 이렇게 말하니 꽤 거창하게 들리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추수감사절에서 가장 아쉬웠던 요리라고 할 수 있다. 다 좋았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모양을 망쳐 실패했다.


원래는 평범하게 미국 밥상의 단골 사이드 디쉬인 으깬 감자(mashed potatoes)를 준비했으나, 만들다 보니 괜히 욕심이 생겼다: "으깬 감자를 구우면 더치스 포테이토가 되잖아?" 사실 더치스 포테이토는 손은 더 많이 가지만 맛이 특별하진 않은데, "있어 보이는" 모양새 때문에 허세 부리려고 만들었다. 그러나 계획대로 되진 않았다. 으깬 감자 반죽을 짤주머니에 넣고 파이핑 팁을 통해 예쁘게 짜야하는데, 그러려면 감자 덩어리가 남지 않도록 곱게 갈거나 체에 걸러야 한다. 난 이미 블렌더로 충분히 곱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았는데, 파이핑을 시작하자마자 덜 으깨진 작은 감자 덩어리가 파이핑 팁에 끼어서 빠지질 않았다. 이런 아마추어 실수를 하다니... 아마추어는 맞지만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모양내는 것을 포기했고, 결국은 저렇게 못난이가 됐다. 다음부터는 그냥 시간을 아끼고 으깬 감자를 만들어야겠다.


어떻게 만들었나: 익힌 감자에 버터와 헤비 크림 (없으면 우유), 달걀노른자, 소금, 후추, 육두구 등을 섞어 곱게 으깬 뒤, 파이핑 백에 넣고 보기 좋게 짜낸다. 달걀물을 발라 400°F(204°C)로 예열한 오븐에 20분간 굽는다.


④ 크랜베리 소스 Cranberry Sauce
가운데: 크랜베리 소스. 왼쪽부터 시계방향: 무 초절임, 올리브, 허니 머스터드 소스, 오이 피클.

크랜베리 소스 또한 추수감사절에 꼭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여기에 오렌지나 레몬 제스트를 뿌리면 상큼한 맛이 확 살아난다. 기름진 요리를 새콤달콤한 크랜베리 소스와 함께 먹으면 잘 어울린다. (IKEA에서 스웨덴 미트볼을 주문하면 같이 나오는 링곤베리 잼과 비슷하다.)


왜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다른 추수감사절 전통과 마찬가지로 확실히 아는 것은 없다. 오래전부터 북미대륙에 자생하던 크랜베리를 원주민들이 활용해왔고 이주민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에 아마 "초창기 추수감사절"에도 크랜베리를 먹었을 거라 추측된다. 그리고 크랜베리는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유일한 재래 과일인 데다, 마침 9월에서 11월이 수확철이다.


크랜베리 소스 자체도 그 유래만큼이나 의문점이 많다.

1. 왜 통조림을 먹나?

크랜베리 소스는 신선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대부분 통조림으로 된 것을 사 먹는다. 크랜베리를 대량 수확하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품질이 떨어지는 크랜베리를 통조림으로 만들어 팔았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다른 요리는 직접 만들어도 크랜베리 소스만큼은 사 먹는 사람들이 많다. 왜인지는 미국인들도 잘 모르나 "어릴 때 먹었던 추억의 맛이라서" 혹은 "식감이 좋아서"라는 이유 등이 있다.

2. "소스"라고 부르는 게 맞나?

크랜베리 소스는 묵처럼 생긴 젤리 형태와 통 크랜베리가 들어있는 콩포트 형태, 이렇게 두 종류다. (내가 산 것은 후자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소스를 "액체나 반액체" 그리고 "다른 음식에 뿌리거나 찍어 먹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젤리형 크랜베리 소스는 이런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어쨌든, 전체적인 맛의 균형(단-짠-느끼한-매운-신)을 맞추기 위해 크랜베리 소스 외에도 시큼한 피클류를 곁들였다. 특히 무 초절임은 "치킨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듯이 닭고기와 아주 잘 어울렸고, 다른 양식 요리와도 잘 어울렸다.


⑤ 매콤한 로스트 고구마 Spicy Roasted Sweet Potatoes
인기 많았던 메뉴 중 하나.

미국에서도 고구마를 먹지만, 한국 고구마보다 더 무르고 속이 주황색인 미국 고구마를 주로 먹는다. 그런데 고구마(sweet potato)와 마(yam)를 헷갈려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먹는 것은 고구마다. 추수감사절 레시피에 yam이라고 쓰여있다면 고구마를 뜻하는 것이다. 추수감사절에는 마쉬멜로우를 얹어 오븐에 구워낸 고구마 카세롤(candied yam이라고도 알려져 있다)을 많이들 만들어 먹지만, 나는 단 것보다는 매콤한 사이드 디쉬가 하나쯤 필요한 것 같아서 다른 방식으로 요리했다.


어떻게 만들었나:  고구마를 적당히 두껍게 썰어서 올리브유와 카이옌 페퍼, 소금, 후추, 허브, 마늘가루를 뿌리고 버무렸다. 400°F(204°C)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15분쯤에 한번 뒤집어 준 뒤 15분 더 구웠다. 허니머스터드소스에 찍어 먹었는데, 소스 없이도 맛있었다.


⑥ 오븐에 구운 방울양배추 Oven Roasted Brussels Sprouts
생긴 것도 귀엽고 맛도 좋은 방울양배추.

탄수화물과 지방으로 가득한 추수감사절 식탁에도 초록색 채소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껍질콩 혹은 줄기콩이라고 하는 green beans를 추수감사절 사이드 디쉬로 많이 먹지만, 우리 집은 방울양배추를 선호한다. 오븐이나 프라이팬으로 아주 쉽게 조리할 수 있어서 편하다. 바싹 구울수록 맛있다.


어떻게 만들었나: 방울양배추를 깨끗이 씻고 반으로 잘랐다.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를 뿌리고 골고루 잘 섞은 뒤, 잘린 부분이 아래로 가게 펼쳐놓고 400°F로 예열한 오븐에서 15분간 구운 후 뒤집어서 5분 더 구웠다.


⑦ 하와이식 마카로니 샐러드 Hawaiian Macaroni Salad
마성의 마카로니, 그 맛을 내는 날까지...

치즈가 들어가 조금 무거운 느낌의 맥 앤 치즈(Mac n cheese) 대신 마요네즈가 들어간 마카로니 샐러드를 만들었다. 하와이 음식점에 가면 꼭 먹는 사이드 디쉬다. 그 맛을 완전 똑같이 재현하고 싶은데 집에서 만들면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카피캣 레시피를 따라 하면서 계속 시도 중이다.


어떻게 만들었나: 마카로니를 삶은 후 큰 보울에 식초, 양파 간 것 (혹은 양파가루), 설탕, 소금, 후추, 우유, 얇게 채 썬 당근, 그리고 Best Foods "리본 표" 마요네즈를 넣고 버무린다. 냉장고에서 하루 동안 숙성시킨다.


 ⑧ 진저브레드 펌킨 파이 Gingerbread Crust Pumpkin Pie
추수감사절의 하이라이트, 펌킨 파이.

추수감사절의 또 다른 주인공은 단연 펌킨 파이라고 할 수 있다. 칠면조는 안 먹어도 펌킨 파이는 빠질 수 없다. 펌킨 파이는 주로 호박 퓌레 통조림을 사용해서 만드는데, 퓌레를 직접 만든다면 슈퍼마켓에서 호박을 살 때 잘 보고 골라야 한다. 가을에 장식용 호박이 많이 나오는데, 말 그대로 장식 목적으로만 개량한 품종이기 때문에 그런 호박을 사용하면 맛이 없다.


특별히 이번 레시피는 올해 추수감사절 최고의 성공이었다. 일반적인 레시피보다 필링에 설탕을 덜 넣었더니, 미국 디저트의 강한 단맛을 안 좋아하는 부모님도 맛있게 드셨다. 크리스마스에도 또 만들기로 했는데, 레시피는 다음에 따로 자세히 포스팅하겠다.


원래는 가족들이 음식을 나눠서 담당하지만, 올해 추수감사절엔 내가 모든 요리를 하기로 자원했다. 손님 없이 우리 가족끼리라 양이 많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여러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 힘들기보단 즐거웠다. 요즘 왠지 기분이 싱숭생숭했는데, 바쁘게 요리하면서 잠시나마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요리가 지겨우신 분들도 많겠지만 말이다. 평소에도 가사분담 없이 매일 밥상을 차려야 하시는 분들은 명절에 고생이 더 많으실 것이다. 다음 명절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평화로운 날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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