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와 내 이야기

나는 아빠보다 엄마를 더 닮았다.

by Kawaii Hawaii

나는 삼 형제 중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큰 형은 아버지를 똑 닮았고, 나는 어머니를 똑 닮았다.

외모도 외모지만, 성격도 그렇다.

음 동생은 잡종이다. 내가 봤을 때 주워온 것 같다.


어머니는 우리를 철저히 자유방임주의로 키우셨다.

자식들에 대한 믿음이 기본적으로 있으셨고,

어린 나이에도 분명 알 수 있었기에 감사했다.


거금의 세뱃돈도 스스로 관리하게 두셨고,

바지가 헤지도록 산과 들을 쏘다니며 곤충 채집을 해도 그대로 두셨고,

구석에 처박혀서 꼼지락꼼지락 하루 종일 뭔갈 만들어도 그대로 두셨다.

조금 커서는, 이거 배울래. 저거 배우기 싫어. 하는 것도

우리가 정할 수 있게 내버려 두셨다.

한없이 어린 아기들이지만

우리의 판단에 확실히 무게를 두셨고

인격체로써 존중하셨다.

그렇게 자립심을 배웠던 것 같다.


물론 공부하란 소리를 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전교에서 놀았던 큰형에 비해서 부족했을 뿐이지

나도 공부는 머리빨로 곧 잘했었으니까.

남동생은 GnB 영어학원 땡땡이를 많이 쳤었다.

어릴 때는 라면 발음도 못해서 마녀라고 불렀다.

커서는 제일 똑똑하고 공감력도 제일 높고 습득력도 빨랐지만

어렸을 때는 한글도 늦게 떼고 뭔가 멍청했다.

(엄마는 첫째와 둘째가 자연스럽게 빨리 익혀서 원래 놔두면 배우는 건가 싶었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 보니 주워온 게 틀림없다.


여하튼 어머니는 학업을 독려했지, 강제로 시키시진 않으셨다.

아니면 성격상 신경 쓰이는 걸 절제하셨을 확률이 크다.

어쩌면 이 눔 자식 그냥 포기했는데 나 혼자 착각한 건가?

어쨌든 어머니는 쿨했고, 많은 부분에서 존경스럽다.


문득 부모님과 관련된 일화를 기록하고 싶었다.

사실 그렇게 쓰게 시작한 글이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마음 가는 대로 짤막하게 써 봐야겠다.


#1. 컴퓨터 절제가 안 되는 우리에게 둔 초강수

한창 컴퓨터 게임을 많이 했던 시절.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걸어도,

몰래카메라, 컴퓨터 안전모드, 키로그, 형광물질 볼펜 등등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몰래 컴퓨터 하기는 쉬웠다.

창의력도 없는 엄마. 비밀번호는 기껏해야 성경, 교회, 예수님.

어머니는 결국 초 강수를 두었다.

컴퓨터를 하든 안 하든 우릴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

살판나던 하루하루는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조금씩 얼룩졌고,

2주가 채 안되었을까?

결국 우리가 게임이 시들시들해졌다며 시간을 알아서 컨트롤 한 기억.


나중에 어머니가 통화하는 걸 들었을 때,

컴퓨터를 마음껏 쓰는 우리를 의식하실 때마다

잔소리를 무척 참기 힘드셨었다고 한다.

아직도 어머니는 우리가 질릴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하실 것 같다.

또, 어린 맘에 무관심이 무서워서 그랬다고 생각하시겠지.

음.. 그 나이 때 게임은 질릴 수가 없다.

수천 가지의 게임이 있는걸?

우린 미안해서 서로 합의하고, 알아서 정신 차린 것뿐.


#2. 엄마한테 빼액 소리 지른 기억

무슨 사건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소파 앞에 나란히 앉아서 서로 언성이 높아졌었다.

내가 화를 못 이겨서 어머니 면전에

소리를 빼액! 질렀던 기억.

보통은 당황할수록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려 하신다.

그렇게 자녀 앞에선 초연함을 유지하고,

불완전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어머니이지만,

처음으로 얼굴이 상기되고 당황하셨던 모습이 생생하다.

나도 놀랐고 어머니도 놀랐다.

가족 내에서는 상하관계가 뚜렷해야 하는 법.

어머니가 무슨 버릇이냐며 바로 호되게 손찌검 한 기억.

어머니가 꼬리 내리지 않고 날 혼쭐 내셔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욱 해서 소리를 먼저 질러놓고선

미안함에 엉엉 울면서 한대 쳐 맞고 혼났던 그날.


#3. 자석 바퀴벌레

어머니는 열심히 바닥을 닦고 계셨다.

요즘은 다 막대걸레로 바닥을 닦는진 몰라도

어머니는 항상 기어 다니면서 구석구석 걸레질을 하셨다.

그 당시 어머니는 피아노 밑을 걸레질하고 계셨고,

나는 냉장고에서 납작한 굵은 자석으로 놀고 있었다.

동그란 자석 옆면을 냉장고에 대고 손을 놓으면

좌르르륵 하며 굴러간다.

장난기 발동.

방향은 엄마 쪽이다.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까만 자석.

“엄마 바퀴벌레!!”

괴상한 비명과 함께 머리를 박고 뒷걸음질 친 이후로

배꼽 잡고 웃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 불쌍한 엄마.

그 이후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기절하도록 쳐 맞았나 보다.

이후에도 산에서 잡아 온 도마뱀이

걸레질할 때 피아노 밑에서 기어 나와 놀란적이 또 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피아노 밑에 먼지가 방치된 게..


#4. 고구마와 아버지.

삶은 고구마 한 쟁반을 앞에 두고

둥그렇게 앉은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고 계셨다.

여하튼 아줌마들 그렇게 먹으니까 살이 찐다.

고구마 하나를 보고 어린 내가 말했다.

“아빠 고추 같다.”

순식간에 자지러지는 아줌마들.

이 아줌마들이 미쳤나?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떴던 기억.


#5. 엄마 눈알 밟은 기억

우리 형제들 방에는 침대 밑을 꺼내면 계단식으로 나오는 2층 침대가 있다.

그날 큰방에 할아버지가 계셨었나?

우리 방 밑에 침대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부모님과,

위에서 자고 있던 나.

화장실이 급했는지, 늦은 밤에 눈 비비며 내려오던 그때

발 뒤꿈치가 어머니 눈과 퍼즐처럼 맞아떨어졌다.

촉감을 느낀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어머니 성대에는 힘이 한껏 들어갔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눈을 감싼 어머니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아버지.

시력 나쁜 눈은 안경을 찾지 못 한 채로

괜찮냐고 재차 물으시며 사태 파악을 하려는 아버지.

공포에 질렸던 그 순간이지만, 분명 머릿속엔 애꾸눈 해적이 생각났었다.


#6. 수학선생님, 책을 읽던 엄마. 주택관리사 시험

중학생 때 수학 과외를 하던 어머니.

어머니 친구 아들내미가 속 썩이고 뛰쳐나가서 따라나간 내가 혼냈던 기억.

드라마를 많이 봐서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치워버린 사건이 있었지만,

정말 항상 독서를 하시던 아버지와,

그에 못지않게 독서를 하시던 어머니.

나도 어릴 때 정말 책벌레였는데, 부모님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내 자랑이지만 어두운 데서 책 읽는다고 참 많이 혼났었다.)

내가 남동생한테도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를 많이 했었는데,

얘는 정말 더럽게 안 읽었다. 확실히 주워온 티를 많이 냈었구나.

그리고 40대가 훌쩍 넘어서 젊은 사람들도 잘 떨어지는

자격증 시험을 보란 듯이 통과하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소장님.

역시 우리 엄마다.


#7. 패딩에 좋아하던 엄마

절약정신이 투철하신 아버지와

그 정신에 입각하여 살아가는 어머니

두 분 다 사치의 사짜도 모르고 살아가신다.

두 분 다 사고 싶은 건 많으실 텐데..

아버지는 워낙 근검절약 이시지만,

어머니는 아쉬움이 좀 있으신 것 같다.

롱 패딩을 사드리겠다고 세일 백화점에 데려갔을 때,

활짝 웃으시며 고등학생 마냥 이것저것 입어보시던 모습에

나도 설레고 또 미안했던 기억이 선하다.

이때의 기억은 여운이 짙다.


#8. 미국에서 이것저것 보내 달라고 한 기억

반년이 넘는 긴 훈련이 끝나고,

하와이에 주둔된 지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

옷가지 몇 벌과 낚시도구가 사고 싶었다.

강태공이 되고 싶은 꿈과

새 옷을 산다는 설렘을 가득 안고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결제, 배송, 무게, 크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들.

만만치 않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비용을 정산하기 위해 돈을 어떻게 드리나 하는 내 물음에

오랜만에 네 뒷바라지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 시간이 행복했었노라고,

아무것도 안 줘도 된다고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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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만,

이 이후에 문장은 완성하지 못했다.

사랑의 화살을 맞은 그 느낌을

글로써 형용하는 게 가당키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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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저쨌거나 어머니는 내 친구이자 선생님이다.

현명하고 순수한 우리 어머니.

사치는 없어도 가끔 이상한걸 돈 주고 사는 멍청한 우리 엄마.

전화하면 항상 사랑과 애교 섞인 목소리로 받는 우리 엄마.

난 우리 엄마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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