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뭐길래?

짠돌이 철수와 된장녀 영희

by Kawaii Hawaii

유유상종이라 했다.

결국 끼리끼리 만난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그저 배타적인 입장만을 취한다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점이 너무 많다.

효율성에 대한 문제라는 소리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서 같이 있으면

특별한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익숙하고 당연하고 소화하기 쉬운 일들의 연속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시야가 좁아질 수는 있더라도,

그 그룹 내의 소수의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는다던지 하는

이해관계에 있어서 큰 오류가 일어나진 않는다.


잘난 사람끼리 친해지는 것도

돈 많은 친구끼리 놀러 가는 것도

상류층, 서민들끼리 뭉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예를 들자면,


신앙의 정도가 천차만별인 교회 공동체에서

한 방향을 바라보고 걷기에는 속도가 너무 다르다.

같은 섬김을 하여도,

누구는 부족함과 갈급함을 느낄 테고,

누군가는 벅차고 힘이 들 것이다.

각각 신 앞에 내려놓은 정도와 그 열정이 다르니까.


평균 8등급의 수험생들부터 전국구 공부벌레까지

무작위로 모아놓은 학급이 있다면

어떠한 난이도와 분량의 숙제를 준다 한들

반응과 결과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서론이 너무 조잡했다.

오늘은 돈과 소비에 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행복의 기준은 돈이 아니지만,

인생에 있어서 돈이 원동력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명예와 사랑같이 추상적인 가치들과는 다르게,

시간과 돈은 객관적이며 절대적이다.

실질적이고 모두가 수학적으로 동의하는 가치이다.


재미없겠지만 내가 정의하는 돈.

나의 소비 철학을 한번 찌끄려 보겠다.


소비의 정도에 있어서 영향을 주는 것에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 절대적 부의 양

두 번째, 타고난 성격 (미래 지향적, 현재 지향적. 혹은 현실적, 감성적)

세 번째, 인지하는 돈의 가치와 소비하는 것의 가치


소비의 정점에 있는 영희와,

저축의 왕 철수가 연애를 시작했다.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


첫 번째. 절대적 부의 양.

이것은 매우 간단하다.

한마디로 돈 많은 사람이 보다 많이 쓴다.

돈이 없으면 먹고살기 바쁘다.

평범한 유학생인 철수와 금수저 유학생 영희 사이에

서로 다른 씀씀이 수준에서 갭이 생기는 경우가 이 첫 번째에 해당한다.

몇천, 몇만 불이 되는 학비와 교재비를 일시불로 결제하는 영희.

반면에 철수는 학생대출 이자율에 대한 검색이 한창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도 돈 많은 사람보다 돈을 펑펑 쓰는 사람도 많다.

그건 나머지 2개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타고난 성격.

철수는 뭔가 소비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미래의 결혼이나 거주지 마련에 대한 생각에

좀처럼 돈을 쓰지 못한다.

또 나중에 목돈이 들어갈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반면에 영희는 대범하다.

졸업 후 부모님의 지원이 끊긴다고 하지만,

미래보다는 현재의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한창 이쁠 나이에 예쁜 옷을 사 입어봐야 한다.


이런 영희가 결혼 전 연애시절에

꼭 화려한 해외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가지 않으면 영희는 두고두고 후회할 테고,

가면 철수는 요긴하게 쓰일 수백만 원이 깨질 테니 말이다.


지불한 대가로 받은 행복한 감정과 평생 가져갈 추억에 취할 수 있다면,

혹은 구입한 물건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돈을 잘 썼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좋은 경험이나 물건의 쓰임새가 준 정도보다

그 금액의 크기가 준 현실의 무게가 더 무겁다면,
자기 전에, 밥을 먹을 때, 일을 할 때 그 금액이 계속 밟힌다면,

안 쓰거나 다른 곳에 쓰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세 번째. 인지하는 돈과 소비의 가치.

철수와 영희는 둘 다 시간당 10달러를 받으며 알바를 한다.

고된 일이 끝나고 영희가 제안한다.

“아 너무 배고프다. 오랜만에 초밥정식 먹으러 가자!”

10달러짜리 애피타이저 하나와 인당 25달러의 초밥 정식.

세금과 팁을 합치니 도합 75달러가 나와 버렸다.

거의 둘 중 한 명이 하루 일한 값이다.


영희는 맛있게 먹고 나와서 기분이 좋다.

그럼 된 것이다. 돈을 쓴 것보다 음식이 준 행복감이 크다.

매번 이렇게 먹는 것이 아니니, 크게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돈의 가치보다 소비의 가치가 컸다.


철수는 머리가 아프다.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이럴 바에 한 명이 일을 쉬고 말지.

집에 가는 길에 맥도널드가 보인다. 저것도 배고플 때 먹으면 똑같이 맛있는데.

돈과 시간의 가치가 소비의 가치보다 컸다.


만약 초밥이 그렇게 당기지 않았는데,

그냥 배고픈데 눈에 띄어서 들어간 일식당이었다면,

혹은 돈이 부족해서 모아야 할 상황이었다면,

영희는 돈과 소비의 가치를 떠나서

경제관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또 만일 짠돌이 철수도 초밥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어서

한번 꼭 먹었어야지 했던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면,

혹은 같이 먹는 사람과의 경험과 행복을 중요시했다면,

철수는 소비의 가치가 돈의 가치보다 컸을 수 있다.


또 다른 예시로 초밥은 같이 안 먹어 주면서,

700달러나 하는 기타를 사려고 돈을 모으는 철수.

영희는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너 기타 있잖아?”

손 아프고 버징도 심하고 탁한 소리가 나는 기타이지만,

영희가 듣기엔 거기서 거기다.

철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가격대에 더 나은 기타가 있나 검색해본다.

사람이 이렇게나 다르다.


이 세 가지를 통합하여 나를 정의해 보자면,

나의 부는 나이에 비하여 평범하며,

타고난 성격은 미래지향적 이어서 펑펑 쓰지 못한다.

돈의 가치는 크게 느끼기에 쉽게 소비하지 못하지만

원하는 곳에는 가성비 따져가며 어느 정도 소비한다.


사람끼리 모이면 소비의 연속이다.

그래서 나 같은 일명 짠돌이는 불편함을 겪는다.

소비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들로 인해 불편을 겪는다.

미안할 따름이다.


교회 사람들끼리는 심심하면 꼭 커피집에 간다.

그 돈이 그렇게 아까울 수 없다.

가끔 아무것도 안 사마시는 나를 의식하는 착한 사람들이 있다.

사준다고 얘기해도 나는 고맙지만 미안하다.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돈을 쓰려니 되려 내가 아까워서 사양한다.

어차피 마시면서 아까워할 테니.


군부대 내 식료품점 쇼핑할 때도 불편하다.

계산대에서 물건을 담아주는 저 사람들은

팁이 유일한 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담고 돈 안 내고 싶지만, 밀치고 내가 담을 수도 없다.

쇼핑할 때 작은 돈도 더 아끼려 하는데,

원치 않은 2-3달러 지출이 그렇게 아깝다.

그 돈이면 식용유 한 사이즈 업인데.


이 외에도 일명 n빵을 할 때에도 불편할 때가 있다.

음식 먹은 양은 항상 다르고,

무작정 막 사서 1/n 할 때도 있고,

노래방에서 부를 곡 수도 다르니까 말이다.

돈에 쓸데없이 예민한 내가 나도 싫다.

거침없이 쓰고 후회 없으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속에서는 끝없는 돈과 시간과 소비의 가치에 대한 저울질.

나도 너무 피곤하다.

너무 미워하지 마라.

나도 이러고 싶지 않으니까.

적어도, 남에게 쓰는 돈은 자신에게 쓰는 것보다 더욱 관대하다.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주는 데서 오는 내 가치에 대한 하락보다는,

돈의 가치가 더 적다고 느끼니까.


가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항상 근검절약하던 철수는 나이를 지긋이 먹었다.

그는 역세권의 넓은 아파트에서 테슬라 끌고 다닌다.

뿌듯하다. 그럼 됐다.

많은 소비와 경험을 한 영희는 그럭저럭 산다.

그녀는 지방에서 전세로 살고 10년 된 소나타 탄다.

후회는 없다. 그럼 됐다.

아마 철수가 영희처럼 살았다면 후회막심할 것이다.

영희도 마찬가지이다.

과정과 결과는 오롯이 본인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