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실수하고 후회하는 이들에게.
말, 말, 말.
조그마한 두 입술로 만드는 소리와
잔망스러운 열 손가락으로 빚어내는 글 들.
그 둘의 끊임없는 하모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말과 글은 의사전달, 의사소통을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다들 텅 빈 큰 정원을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태어난 장소는 랜덤이다.
우리는 그 주위를 쏘다닌다.
산과 들 이름은 다양하다.
가정환경, 경험, 인터넷, 친구, 학교, 주위 환경 등등..
그곳에서 가져온 작은 씨앗들로 정원들을 꾸미기 시작한다.
개중에는 옷에 묻어온 씨앗이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어릴 땐 어떤 것들이 좋은 씨앗인지 모른다.
그저 태어난 주위의 장소에서 가져온걸 수동적으로 심기 시작한다.
능동적으로 심는 건 나중 얘기다.
20대, 30대가 되었다.
슬슬 정원이 가득 채워져 간다.
유독 크고 웅장한 친구들이 보이는가?
그래. 그것들이 바로 가치관, 혹은 신념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아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당신의 가치관, 신념인 줄 알았던 그것들은
편견과 그릇된 생각이라는 탈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아주 맛없는 열매, 혹은 고약한 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제 사람들끼리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는,
자기 정원 안에 있는 식물들에 기반해서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 정원 식물과 열매로 요리한 음식들을 나누어 먹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저 사람의 정원 한가운데 뿌리내린 나무는,
어릴 적 가정환경에서 얻어온 가정폭력이라는 씨앗이 뿌리를 내렸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뒤늦게 대화와 경험들 속에서
당신의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화들짝 놀라서 정원에 있는 그 거대한 나무를 베어버리고 싶지만,
오랜 시간 속에 뿌리를 내렸는지 도무지 뽑히질 않는다.
급하게 잘라내도 어느새 보면 다시 새순이 솟아나 있다.
줏대 없고 귀가 얇은 사람들은
뿌리가 얕은 식물들이 많다. 그만큼 쉽게 뽑고 쉽게 다시 가꾼다.
고지식하고,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의 정원에는
크고 굵직한 식물들이 많다. 뿌리가 너무 깊은 친구들.
정말 조심해야 한다.
하물며 본인이 느끼고 제거하려 해도 힘이 드는데,
편견, 혹은 그릇된 생각임을 모르는 이들은 오죽할까?
본인이 자주 따먹는 열매에서
유독 다른 이들이 시큰둥하거나 뭔가 이상한 반응을 보인다면
"엥? 나는 맛있는데 왜 그러지?" 하며 넘기지 말기를 바란다.
유독 남들과 부딪히는 그 이유를 "익숙한 싸움"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지 않길 바란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정의라고, 향기롭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제로는 고약한 악취가 나는 열매일지도 모른다.
가끔 같은 식물이 정원에 있는 사람들은
(특이한 입맛이라고 칭하겠다.)
맛있다고 맞장구 쳐주고 말이 잘 통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그 음식이 맛있는 건 아니니까 조심하자.
또한, 향신료를 어마어마하게 쳐서 맛있게 보이려 하지 말아라.
뛰어난 언변가, 히틀러가 그랬듯이.
성인이 되고 나면
정원이 가득 차 있을 확률이 높다.
꾸미고 새로 심어대던 단계는 이미 지났다.
정원의 테마는 이미 정해졌다는 소리다.
각기 식물들도 적잖이 깊은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잘 가꾸어 주는 일만 남았다.
과거의 내가 신중히 심었길 바란다.
태어난 장소도 중요하니 너무 하늘을 원망하진 말자.
나도 모르게 심어지는 식물들이 너무 많으니까.
당신의 입술과 글을 배출하는 행위는
곧 많은 요리를 만들고 정원을 자랑하는 행위이다.
내면의 고찰과, 역지사지하는 시간들은
곧 나만의 정원을 가꾸는 시간이다.
정원이 가득 찼다고 하더라도,
잘못 심은 식물이 자꾸 새순을 내밀더라도,
자의적으로 계속 가꾸고 잘라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식물의 그 뿌리가 말라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정원이 엉망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군가에게 분명히 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