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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Apr 19. 2020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가난을 미워해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죄라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죄라는 것은 법률을 기준으로 위반했느냐 아니냐로 나뉜다. 하지만 법률이라는 것도 시대나 사회에 따라 다르고, 계속 변하며 상대적이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수천, 수만 명을 죽이면 나라의 영웅이 되기도 한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등급이 있는데 하나는 복종하는 것을 좋아하는 ‘범인’이고, 하나는 현존하는 질서를 파괴하고자 하는 ‘초인’이다. 초인은 자신의 이념을 보급하기 위해 살인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의무도 있다.


이런 초인의 예로는 고대 스파르타의 군국주의를 완성한 리쿠르고스, 솔로몬, 마호메트, 나폴레옹 같은 사람을 들고 있다. 니체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초인 사상은 어쩌면 이 책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겠다.


가난한 대학 중퇴생인 라스콜니코프는 자신만의 초인 사상에 빠져 전당포를 통해 고리대금업을 하며, 세상에 도움될 것이 없이 악행만 저지른다고 생각한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고,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 여동생도 살해한다.


자신의 초인 사상에 의하면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주인공은 죄책감이 몸으로 나타나 사경을 헤맨다. 그러다 길거리에서 마차에 치어 죽게 된 남자의 장례식에 쓰라며 어머니가 어렵게 보내준 돈을 모두 주고, 매춘부로 일하고 있는 그의 딸 소냐를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라스콜니코프를 의심하며 자수하라고 압박해오고, 여동생 두냐가 가정교사로 일했던 집의 남편이었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니코프의 비밀을 약점으로 잡고 여동생과 만나게 해달라고 접근해 온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동생에게 구애하다 거절당하고 자살했을 때 라스콜니코프 자신도 강가에 섰지만 돌아선다. 책에서는 자기 신념 속에 깊은 허위를 예감했다고 하지만 주인공의 자살을 막은 건 새롭게 찾아온 사랑과 가족 때문일 거다.


책에 따르면 죄책감을 느끼는 자체가 초인이 될 만한 그릇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초인이 아니라 사이코패스 아니면 소시오패스일 뿐이다.


20세기까지는 초인 사상이라던지 공리주의 같은 것들이 유효했는지 모르겠지만 21세기에는 좀 다른 거 같다. 소수의 희생을 전제로 한 다수의 행복은 이제 큰 의미를 잃었다. 다수의 행복이라는 게 실재하는지도 의문이다. 개인주의나 이기주의가 극대화돼서라고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개인의 욕구가 다양해졌고 공익의 의미도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다양한 욕구를 어떻게 서로 충돌하지 않게 정리하느냐다. 법률로 규제하는 건 한계가 많다. 결국 기술과 철학이 해결의 열쇠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하라'는 말이 있다. 죄라는 것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게 죄’라는 말도 있다. 가난하면 솔직하기 어렵다. 사장이나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먹고 살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솔직하고 당당하다.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꿀릴 게 없다.


현대 자본주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이라는 거에 동의한다. 어쩌면 미쳐 날뛸 수 있는 자본주의를 민주주의라는 고삐로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라는 큰 위험에 직면해 있고 재난소득 같은 걸 테스트하고 있다. 코로나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 더구나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 인류는 벼랑 끝에 섰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지 인류의 생사가 걸렸다.






죄와벌 1
p31

가난할 때까지는 그래도 타고날 때부터 지닌 선천적인 고결한 감정을 보존할 수 있지만, 적빈 상태에 이르면 아무도 그럴 수는 없거든요


p137

즉 범죄자 자신은 거의 누구나 예외 없이  범죄를 저지르려는 순간 의지와 이성의 상실 상태에 빠질 뿐만 아니라 어린애 같은 경솔에 사로잡히고 말기 때문이다.


p470

이 세상에는 온갖 불법이나 범죄를 행할 수 있는 사람… 아니, 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기에 대한 절대적 권리를 가진 어떤 종류의 인간들이 존재하고 있어서, 그들을 위해서는 법률 따위 없는 것과 같다.


p479

그러나 양심에 비추어 피를 허용한다는 것은, 그것은… 내 생각으로는 피를 흘려도 좋다는 공적인 법률상의 허가보다 더 무서운 일이야.


죄와벌 2

p270

두뇌와 정신이 확고하고 강한 인간이 그들 위에 설 수 있는 지배자라는 걸

누구보다도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는 자가 누구보다도 올바른 인간이 되는 거야

“권력이란 다만 그것을 잡기 위해서 용감히 몸을 굽힐 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


p348

당신은 하나의 이론을 생각해냈지만, 그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너무나 평범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부끄러워진 겁니다.


에필로그

p506

그러나 그는 이미 강가에 서 있을 때 자기 자신 속에, 그리고 자기의 신념 속에 깊은 허위를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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