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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Apr 05. 2020

사람 사이의 거리

최은영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

처음 읽은 [쇼코의 미소]는 좋았다. 최은영 작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쇼코의 미소]에서는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왜 멀어졌는지 모르는 그런 관계들에 대해서 말했다면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는 내가 더 사랑해서 상처 받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그런 관계의 상황이나 설정은 미묘하고 예민한데 주인공들은 담담하고 쿨 한 척한다. 얼마 전에 읽었던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 여름]은 나에게는 낯선 레즈비언 얘기다. 두 소녀가 어릴 때 만나서 소설 [소나기] 같은 풋풋한 사랑을 하다가 한 사람은 대학교에 들어가고 한 사람은 정비공으로 일하면서 관계가 틀어진다. 정말 사랑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끌려서 헤어지고, 결국 그 사람과도 오래가지 못한다.


영원할 거 같은 관계도 어찌 보면 작은 일에 쉽게 틀어지고 멀어진다. 아프지만 무덤덤한 척, 별일 아닌 척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희미해진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나면 그립다.


[모래로 지은 집]은 고등학교 때 피시통신에서 만난 여자 둘과 남자 한 명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서로 좋아하면서 말도 못 하고 배려만 하다 헤어진다.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라는 질문에 주인공은 살기 위한 생존방법이었다고 말하지만 한쪽만 이해하는 이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주로 남을 이해만 하다 상처 받은 사람은 관계에 무심하게 되고 나에 대해 애정을 표시하는 사람에게 조차 등을 돌린다. 그 관심을 어찌해야 될지 모른다기보다 다시 상처 받기 싫은 거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고백]은 여고생 세명의 우정과 파국을 다루고 있다. 친구 중 한 명이 자기는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자 한 사람은 대놓고 욕하고 한 사람은 은근히 피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살하고 나자 둘은 서로를 멀리한다.


세 명이서 친한 친구일 때 다른 둘이 더 친한 것 같고 나는 들러리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기분이 들면 질투심이 들고 벽이 생긴다. 진짜 예민한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하기 때문에 둔감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더 큰 상처는 대놓고 욕하는 것보다 은근히 무시하고 피하는 거다.


미주가 보기에 진희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는데 겉으로는 오히려 둔감해 보였다. 자기감정만큼이나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해서 그런 것 같았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진희와 함께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 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잔정 많고, 남 잘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새끼들이라고 챙기며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 타고난듯한 메마름과 무심함 때문에 고민하는 나는 부러울 따름이다.


지금까지 사회 나와서 만난 사람들과 너무 가까운 관계는 부담스러웠다. 적당한 거리에서 내가 원할 때  볼 수 있고 안 봐도 미안하지 않는 그런 관계가 편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이란 결국 적당한 거리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서 상처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그런 사람. 그런데 갑자기 거리를 좁히려 하면 부담감에 밀어낸다. 그래서 이런 관계는 결국 멀어지게 마련이다. 누구나에게 그럴 수는 없겠지만 괜찮은 사람이라면 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반드시 서로의 거리를 줄여주어야 한다.


요새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슈다. 솔직히 말하면 외롭고, 우울하고, 힘들다. 그동안 얼마나 여러 모임들이 나에게 활력소였는지 깨닫게 됐다. 매번 느끼지만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그 일상이 사라졌을 때다.


사람과 가까워지는 걸 너무 두려워 말자. 조금씩 그 거리를 좁혀보자. 사람은 결국 부대끼며 같이 살아가는 존재 아닌가?




p120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

고등학생 공무는 천리안 동호회에 그렇게 썼었다. 그 문장은 며칠이고 내 안에서 구르면서 마음에 상처를 냈다. 나는 늘 이해하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p121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 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p180~181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사랑해. 나는 속삭였다. 사랑해 모래야


p195~196

미주가 보기에 진희는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었는데 겉으로는 오히려 둔감해 보였다. 자기감정만큼이나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해서 그런 것 같았다. ‘나 예민한 사람이니까 너희가 조심해야 돼'라는 식이 아니라, 네 마음이 편하다면 내가 불편해져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예민함을 숨기려고 했다.

진희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을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볼펜을 이리저리 돌릴 때 미주는 자신이 진희를 안다고 생각했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진희와 함께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 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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