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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Feb 16. 2020

우리는 '무지'하게 착하다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는 7개의 중단편 소설 중 하나의 제목이다. 7개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사람 ‘관계’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힘들어지는 이유는 나 자신과 비교하여 잘난 사람, 못난 사람으로 나누는 데 있다. 나보다 잘난 사람한테는 열등감을 느끼고, 못난 사람에게는 우월감을 느낀다.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사람을 흥분시키고 때로는 괴물 같은 자의식을 만든다.


교환학생으로 일본에서 온 쇼코가 엄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소유네 집에 일주일간 머무르면서 벌어지는 일을 시작으로 쇼코와 소유의 삶이 그래프처럼 교차한다.


영화감독을 꿈꾸던 소유는 대학을 졸업하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시나리오를 끄적이지만 자신에게 글 쓰는 재능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재능 없이 꾸는 꿈은 허울이고 천천히 삶을 좀 먹는다’고 말한다. 세상은 보통 꿈이 꼭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압박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말한다. 심지어 ‘노력하는 것이 재능이다'라고 하며 개인의 게으름을 탓한다.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을 잘한다고 착각하며 허황된 꿈이라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짜 재능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씬짜오 씬짜오'에서는 독일에 살고 있는 한국인 가족이 베트남 가족과 정말 친하게 잘 지내다가 친척들이 베트남 전에서 한국군에게 몰살당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멀어지게 된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는 팔촌 언니가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정말 친하게 지냈는데 결혼하고 남편이 간첩죄로 복역하게 되면서 멀어진 얘기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크게 싸우고 멀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천천히 아주 조금씩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천천히 멀어지게 되는 경우를 곱씹어 생각해봐도 특별한 이유는 못 찾겠다. 최은영 소설은 이런 관계의 미묘한 경계를 잘 포착해 낸다. 무언가 생각해 낼 수 없지만 섭섭한 게 있었거나 만나면 불편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관계들로 인한 피로감일 수도 있다. ‘몸이 멀어져서 마음도 멀어진 거야’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가끔 아쉽고 그리울 때가 있다.


‘미카엘라'에서는 교황 얼굴 보러 서울 오신 엄마가 딸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고 거기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를 따라 세월호 집회에 가는 얘기다. ‘비밀'은 말기 암으로 딸 집에 얹혀사는 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워왔던 손녀딸이 중국에 교사로 갔다고 했는데 알고 봤더니 세월호 때 죽은 기간제 교사였다.


소설에 나온 엄마나 할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딸들에게 폐 끼치기 싫은지 기차 타고 서울까지 와서 하룻밤 잠도 안 자고 돌아가거나 찜질방을 간다. 왜 그렇게 궁상일까? 그게 부모의 마음인 걸까? 또한 소설에 나온 남자들은 대부분 운동권이거나 사업에 실패한 뒤 무력한 삶을 보내고 있다. 한마디로 궁상인 엄마, 아빠와 사는 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마 대놓고 자기 마음을 말하지 못하는 이 세상 할머니, 엄마의 모습을 딸들의 시선으로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작가는 소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장 나쁜 건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지도 못하는 그 무지 안에 있었다.’


나쁘게 대하지 못했던 건 착해서가 아니라 무지해서다. 인생은 대부분 영화나 소설처럼 극적이지도 않고 관계가 서서히 꼬이며 할 말 제대로 못하고 서로 오해한 채로 멀어진다. 하지만 한번 꼬여버린 실타래를 풀기란 어렵다. 그건 우리가 무지할 정도로 착해서다. 그래서 쇼코의 미소는 환한 웃음이 아니라 슬픈 미소다.


우리는 '무지'하게 착하다.


p33

반면 영화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늘 그들의 재능과 나의 재능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휩싸였다. 영감은 고갈되었고 매일매일 괴물 같은 자의식만 몸집을 키웠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알코올 중독자가 된 감독 지망생과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며 야근 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을 보며 내가 그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p34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 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p115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p129

우리는 싸움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서로를 견뎠다. 감정을 분출하고 서로에게 욕을 해서 그 반동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싸움도 일말의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고 그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 받지 않았다.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장 나쁜 건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지도 못하는 그 무지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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