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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Sep 05. 2020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기득권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가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단 한편도 버릴 것이 없다. 괜히 수상작들이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최은영과 김초엽 작가는 전작들을 읽은 후라 익숙했지만 다른 작가들은 생소했다. 특히 강화길의 ‘음복'은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느낌이었다.


지금 젊은 한국 작가들의 트렌드인지 모르겠지만 소설의 테마가 여성과 동성애자 같은 소수자를 다룬다. 이 소설들에서 남성은 배제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철부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 부끄럽고 씁쓸했다.


강화길의 ‘음복’은 어찌 보면 진부할 수 있는 시댁과 며느리의 관계를 놀라울 정도의 통찰력으로 한 편의 스릴러로 재탄생시켰다. 집안에 한 사람씩은 꼭 있는 오지랖에 신경 긁는 소리만 하는 고모가, 외가에서 외삼촌과 의절하게 된 자기 엄마와 오버랩되는 장면에선 소름이 돋았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제사상 앞에서 숟가락을 던지는 난리통에도 남편은 평온하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여자들은 다 알지만, 바보 같은 남자들은 모르는 무언의 약속 때문이다.


“나는 그의 걱정이 잠잠해지는 것을 보았다. 서서히, 고요하게, 모든 그늘이 사라진 얼굴.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사실 남편이 이 사실을 모른다기보다 외면한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신경 쓰면 머리 아프니까,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아쉬울 게 없으니까.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는 회사에 다니다가 늦은 나이에 영문학과로 편입한 '희원'이라는 여자 얘기다. 그곳에서 그녀는 똑똑하고 당당한 모습의 젊은 여자 강사를 자신의 롤모델로 여긴다. 하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정교수가 아닌 강사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무시받는 듯한 모습에 분개한다.


작가의 말에서 최은영 작가는 한동안 슬럼프였다고 고백한다. 주목을 받게 되자 부담감이 밀려들었을 거다.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받을까 봐 두려워서 나는 안전한 글쓰기를 택했다. 더 용감해질 수 없었다.’라고 소설에서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쓴 글을 읽을 독자의 판단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인간적으로 지닌 약점과 단점.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수도 있는 감정의 흐름을 적어 내려갔다. 이 사람 뭐지, 호감 가는 사람이 아니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니 그런 반응을 기대라도 하듯이 아무것도 미화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썼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이런 글쓰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강사는 지금, 글과는 아무 상관없이 살고 있다. 자기도 똑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언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 씨가…….” 그래서 마지막에 강사가 끝맺지 못한 말은 이 단편의 제목처럼 ‘아주 희미한 빚으로' 작가의 길을 비춰준다. 그 끝이 어디에 다다를지 모를지라도.


김봉곤의 ‘그런 생활'은 지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대화 내용을 그대로 썼다는 문제 때문에 이 책이 회수되게 만들어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 단편이다. 내용은 남남커플 간의 사랑싸움과 커밍아웃 함으로써 어머니와 겪게 되는 상황에 대한 묘사다. 하지만 난 동성애에 대한 낯섦과 불편함 빼고는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다.


이현석의 ‘다른 세계에서도'는 낙태죄 헌법소원을 계기로 진보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산부인과 의사 ‘지수’의 얘기다.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같은 의사의 길을 걷게 된 여동생이 뜻하지 않게 임신하고 결혼하게 되자, 낙태하라는 말도 못 하고 머뭇거리는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한다.


자신이 대학시절부터 좋아하며 따랐던 ‘희진’ 언니의 요청에 조직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지수는 여기서도 이질감을 느낀다.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더라고.”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그 말을 순화시키고 감정에 호소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원칙과 본질만 주장하다 보면 대중과 괴리된다. 이 딜레마를 좁히는 게 정치다.


임신 중지를 겪은 모든 여성이 동일하게 경험하리라 가정되는 비감은 그들에게 생명을 폐기시켰다는 자기 인식을 갖게 해 스스로를 비윤리적인 존재로 획일화하도록 만든다.

낙태 문제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들었다. 첨예하게 대립된 어떤 문제에서, 내재된 기득권을 의식하지 못하고, 논리와 설득보다는, 윽박지르거나 감정에 호소하는 내 모습을 반성한다.


김초엽의 ‘인지 공간'은 모든 인간의 공동 지식과 사고의 결정체인데 미숙아로 태어나 이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브’가 인지 공간의 한계를 깨닫고 자신만의 ‘스피어’를 만들지만 죽고 만다.


인지 공간은 어쩌면 확장된 인터넷이고 인공지능일 수도 있다. 지금 인간은 굳이 기억하지 않고 검색한다. 핸드폰으로 언제든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테슬라 창업자 엘론 머스크는 얼마 전에 돼지 뇌에 칩을 이식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핸드폰을 통하지 않고 인간 뇌에서 직접 네트워크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초엽 작가는 이 거대하고 인간의 모든 것이라고 불리는 ‘인지 공간'도 사실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고, 개개인에게는 가장 소중한 기억들 조차 경제성이나 유용성이라는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개인의 합이 전체이지만 개인보다 전체가 더 중요한 건 아니다. 인지 공간은 전체를 대변하지만 개인을 대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개성은 전체를 뛰어넘는 힘이다.


장류진의 ‘연수'는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 3년 만에 회계사에 합격한 엘리트 ‘주연'은 운전을 못한다. 큰 맘먹고 지른 외제차로 출퇴근을 하기 위해, 결혼도 안했지만 좋은 정보가 있는 맘카페에서 추천한 사람에게 자동차 연수를 받는 내용이다. 강사로 나온 능숙한 50대 아줌마의 코치는 마치 연애의 고수가 기술적으로 밀당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제야 완급조절을 좀 아는 것 같은데?”


장희원의 ‘우리 축사의 환대’는 호주에서 유학하는 아들 ‘영재’를 찾아가는 아버지 ‘재현'의 얘기다. 가서 보니 흑인 노인과 어린 한국 여자애와 한 가족처럼 허물없이 사는 아들을 보고 불편하고 불안한 느낌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재현은 어릴 적 남성 커플이 나오는 포르노를 보는 아들을 무지막지하게 때린 기억이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자신의 크나큰 잘못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그냥 덮어둔 것이며 언젠가 다른 모습의 형태로 돌아온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고, 가족이란 것도 어쩌면 새롭게 정의될 수밖에 없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다. 미투 운동, 갑질, 동성애 이런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마음이 불편하니까, 불안하니까 본능적으로 무시하고 외면하며 덮어두고 있었던 거다. 내 마음만 편안하면 다가 아니다. 이 세계가 질서 있게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반드시 비 기득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다.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기득권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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