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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Aug 19. 2020

기술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단편 소설집

척박한 우리나라 sf소설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신인작가 아닌가 싶다. 주변에서도 많이 추천해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읽고 나니 [회색 인간]의 김동식 작가가 생각났다. 김동식 작가는 외계인이라던지 초능력 같은 설정과 극한 환경에 처한 인간의 모습 속에서 반전을 통해 작은 소름을 주었다면, 김초엽 작가는 워프나 웜홀, 마인드 업로딩 기술과 유전자 조작 같은 과학적인 설정 속에서 인간 감정의 세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완벽한 인간을 만들지만 개조인과 비개조인 사이에 차별이 일어나고, 차별을 없앤 유토피아 마을을 또 만들지만, 그 마을 사람들은 성년이 되면 지구를 다녀오고, 갔던 많은 이들이 되돌아오지 않는걸 궁금해 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지금도 인종, 여성, 성소수자 차별과 계급 차이에 의한 갑질 등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아마 이런 차별과 배제에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가 그 밑바탕에 있는지 모른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다수와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변명만큼 편리한 건 없다.


차별과 배제가 지금까지는 제도와 관습이었다면 점점 그런 것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차별과 배제가 없는 사회일까? 공산주의는 다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세웠지만 실패했다. 작가는 ‘갈등과 고난, 전쟁이 없으면 유토피아인가?’라고 묻고 있다. 실제로 그 마을에서는 차별도 없지만 사랑도 없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유토피아로 가는 길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토피아라는 완성된 결과는 없다. 다만 유토피아로 가는 끝없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고통과 행복, 차별과 공평은 분리될 수 없다. 이 두 상태가 서로 부딪히며 균형을 이루는 길이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공생 가설]은 뉴런 패턴 연구를 통해 동물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다가 아기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분석했더니 도저히 애들이 생각할 수 없는 표현(어떻게 하면 윤리성을 더 부여할 수 있을까? 같은)들이 나오는데, 이것을 고도의 문명이었다가 오래전에 멸망하고 정신만 남은 외계인이, 아기들 뇌 속에서 윤리성 등을 가르치다가 7~8살이 되면, 기억과 함께 빠져나간다는 공생 가설을 통해 설명하는 이야기다.


나도 항상 궁금했는데 왜 3~4살 이전 어릴 적 기억은 사라질까? 보통 7~8살이 되면 60% 넘게 그때 기억을 잊는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뇌세포가 7~8살 때쯤 급격하게 재생되면서 '유년기 기억상실'이 일어난다고 한다. 뇌세포는 평생 동안 재생되지 않는데 해마의 뇌세포만 그 시기에 재생된다고 한다.


미토콘드리아 공생 가설도 재미있는데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만 유전 부호가 다른데, 이 이유를 서로 다른 원핵세포가 공생을 통해 진핵세포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생명 기원설 중 외계 씨앗 가설도 재밌는데 지구 상의 모든 생물의 유전 부호가 같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폐기된 우주정거장에서 동면을 거듭하면서, 가족이 먼저 갔지만 이제는 갈 수 없는 행성계를 가려고 기다리는, 최신 동면 기술을 연구한 170살 넘은 할머니 과학자 얘기다.


우주는 너무 넓어서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도 더 걸릴 수 있다. 그래서 개발된 항법이 공간을 왜곡시켜 거리를 좁히는 워프 기술인데 그래도 수십 년에서 수백 년 걸린다. 이 기간을 견딜 수 있게 동면 기술을 개발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체액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하지만 더 먼 우주를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웜홀 기술이 발견되면서 기존 워프 기술과 동면 기술은 쓸모 없어진다.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인간 사회는 경제성으로 돌아가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이다. 기술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경제성을 따지기 때문에 반드시 소외되는 인간이 발생한다. 작가는 이 점에 주목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주 전체 외로움의 총량은 늘어나는 게 아닐까?'라고 질문한다. 이 단편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다.


[감정의 물성]은 한 문구회사에서 만든 침착, 설렘, 우울, 공포 같은 감정 자체를 조형화해 만든 자갈 같은 물건인데, 온라인 상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부모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여자 친구가 우울체를 모으고 있는 걸 보고 고민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감정은 호르몬 작용이라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불안, 공포 또는 사랑과 같은 감정은 아마 생존에 유리해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여자 친구는 우울체 같은 감정을 모을까?'라고 작가는 질문한다.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있지만 우울은 생존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인간이 자살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다.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기술이 발달하여 유독 우울증이 늘어난 걸까?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을까? 아무튼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 우울증 극복을 위한 가장 큰 해결책으로는 자존감 회복이 유행하고 있다.


마크 맨슨은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별다른 근거 없는 자존감 높이기는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 고통을 직시하고 견뎌야 행복이 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우울증이 정말 심한 사람에게 이런 말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초엽 작가는 이런 부정적 감정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거 같다. 잘 이해할 수 없어도 그것대로 인정해 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관내 분실]은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 개발되어 돌아가신 분들의 뉴런 패턴을 저장하는 도서관이 생기는데 엄마와의 사이가 안 좋았던 주인공이 아기를 임신하게 되면서,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도서관에 가게 되고 아빠에 의해 인덱스가 삭제되어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새로 테스트 중인 기술로 엄마를 찾기 위해서 유품을 통해 엄마를 알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생전에는 도저히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고, 미워했던 딸이 자신이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야 그 두려움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이 아닌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과 아빠의 무관심을 비판하고 있는 건 좀 식상하다 할 수 있지만, 이 단편이 그렇게 가슴 먹먹했던 이유는 도서관 속의 데이터가 구성해 낸 가상의 엄마가 딸의 얘기를 듣고 아무 말 없이 울 때, 죽음을 넘어섰다는 작은 소름 때문이었다.


이렇게 김초엽 소설에는 기술을 넘어서, 인간이 있다. 어쩌면 과학기술이 소외를 만들고, 다수를 위해 소수를 배제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떤 것을 규정하면 반드시 배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한다. 부정적인 어떤 것을 없앤다고 유토피아가 오지 않는다. 조지 오웰의 '1984'나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같이 유토피아인 줄 알았던 획일화된 미래가 결국은 디스토피아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내가 볼 때 '유토피아는 다른 게 아니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고, 그 안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끝없는 과정일 뿐'이라는 걸 김초엽은 말하고 있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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