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Jul 26. 2020

삶은 역설이라는 게 본질?

신경 끄기의 기술 - 마크 맨슨

제목에서 느껴졌던 첫 느낌은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 짜증 나는 현대사회 속에서 스위치처럼 버튼만 누르면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줄 수 있는 비법이 담겨있을 듯했지만 물론 그런 내용이 아니다.


저자는 학창 시절 마약 문제로 퇴학을 당했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친구 집 소파를 전전하던 백수였다고 한다. 지금은 2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파워블로거이며 CNN, 뉴욕타임스 등의 언론에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든 느낌은 저자가 불교를 공부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역설을 통해 본질을 깨닫게 하는데, 기존 상식을 뒤엎는 깊은 통찰력에 무릎을 치며 감탄을 했다. 꼭 읽어 보길 강추한다.


우리는 보통 삶의 목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다 보니 ‘삶의 대부분은 항상 어느 정도 고통스럽다’는 걸 잘 까먹는다. 이것만 인정해도 마음이 상당 부분 평온해지는데, 작가는 이를 ‘실용적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공리주의에서는 고통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고통 없는 행복은 없다. 행복은 고통을 견뎌야 온다.


저자가 말하는 신경 끄기는 무심함이 아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따르는 역경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에 신경을 써야 하고, 말아야 할지 정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되는 것이 가치관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 소위 오노다는 필리핀 작은 섬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에도 30여 년 동안 혼자 투쟁했다. 그의 가치관에 따르면 힘들었지만 행복했다고 한다. ‘메탈리카’ 멤버였던 데이브 머스테인은 밴드에서 쫓겨나고 ‘메가데스’라는 밴드를 만들어 성공했지만 평생 메탈리카보다 유명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불행해했다.


이처럼 가치관이 내 행동을 결정한다. 가치관에 따라 결과에 상관없이 성공한 인생이 될 수도, 실패한 인생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친구의 죽음을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좀 더 나은 가치관의 기준을 잘 모르겠으면 죽음을 생각해보면 좋다. “자신이 결국 소멸하리라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해보는 게 중요한 이유는, 그 행위가 덧없고 피상적인 엉터리 가치를 삶에서 싹 없애주기 때문이다.”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며, 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나온다. 여기서 저자의 중요한 통찰력이 나오는데 “행복은 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나온다. 여기서 핵심은 ‘해결'이다. 문제를 피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해도 불행해진다. 행복하려면 우리는 뭔가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므로 행복은 일종의 활동이며 행동이다.”


최근에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를 읽으면서 깨달은 점은 행복과 만족을 혼동하고 있었다는 거다. 행복은 상태가 아니고 행동이며,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행복과 만족이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자존감에 대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미국은 4~50년 전에 유행했나 보다. ‘모두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은 헛소리'라고 말하면서 그럴듯한 이유 없이 자신에게 만족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고 말한다. 


자존감이 과도하면 허세에 빠지곤 하는데 작가는 허세꾼들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허세꾼들은 늘 자신한테 만족감을 느껴야만 한다.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말이다. 허세에 빠진 자는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이들은 망상 속에서 우월감을 충족하는 데 몰두한다.”


"많은 사람이 ‘내 문제는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내 책임이 곧 내 잘못'을 의미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임과 잘못이 일반적으로 붙어 다니는 건 사실이지만, 둘은 같은 게 아니다. 그래 당신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당신 책임이다."


확신만큼 위험한 게 없다. 어릴 때 내가 옳다고 믿었던 건 지금 대부분 틀렸다. “난 살아오면서 오판에 오판을 거듭했다. 그게 내 삶이 개선된 이유다. 성장은 끝없는 반복 과정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 ‘틀린'것에서 ‘옳은'것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틀린 것에서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 또 다른 것을 알게 되면 약간 덜 틀린 것에서 그보다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진리와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실제로 거기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행복도 진리도 과정이다. 이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행복과 진리의 과정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신경 끄기가 필수다. 신경 끄기의 다른 말은 몰입이다. 역설적이지만 몰입 안에 자유와 해방이 있다. “몰입할 때 자유를 얻는 까닭은, 더는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흔들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


어떻게 보면 삶 자체가 역설이다. 전혀 다를 것 같고 반대되는 개념 두 개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는 게 삶의 본질일 수 있다. 고통 없는 행복이 없고, 자유를 얻으려면 몰입해야 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계속 묻는다면 행복할 수 없다.
-알베르 카뮈-



작가의 이전글 남의 불행에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