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청년 Nov 21. 2020

한발 걸음이 아니라 두발 걸음

담론 - 신영복

‘담론’은 신영복 교수의 강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펴낸 책이다. 1부는 동양고전, 2부는 감옥생활에 대한 얘기가 주다. 신영복 교수는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감옥생활을 하다가 풀려나서 성공회대 교수를 하셨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선생님이 질문하고 답하신 두 가지는 ‘우리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와 ‘관계가 왜 중요한가?’라고 봤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진리의 다른 면을 보고, 균형 있게 실천하기 위해서이고,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세계의 본질은 관계이고, 내 정체성은 관계를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보면, 아들이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했을 때 처음엔 무척 당황했지만 심사숙고해서 생각해 낸 나의 답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공부란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한다.


공부는 한발 걸음이 아니라 두발 걸음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성 공부만 하지 말고 감성 공부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론과 실천이 함께 가야 한다. 결국 공부는 한 방향으로만 보던 것을 다른 방향으로도 보게 해서 삐뚤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공부의 목적은 균형 있게 걸어가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방점은 걸어가는 데에 있다.


보통 사람들은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는데, 목수가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실제 집을 만들어본 사람들은 그림 그리는 순서도 다르다. 마찬가지로 이론에서 실천이 나오는 게 아니라, 실천의 경험이 모이면 이론이 된다는 말에 머리를 한 방 맞은 느낌이 들었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써도 현실에서 실천이 되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이었는데 순서가 잘못됐는지도 모른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는 말씀도 현실이나 실천에서는 생각했던 것과 반대되는 면을 보고 행동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했다.


그래서인지 기존 통념이나 인식이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게 인과론, 정반합, 이원론이다. 근대적 패러다임 중 가장 완고한 것이 인과론인데 문제는 이런 인과관계가 현실에서는 드물다. 인간 역사를 바라볼 때도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진화해 간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이원론으로 세계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보완하는 개념으로 봐야지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면 안 되고, 그렇게 보는 것이 결정론적 사고라고 한다.


동양고전을 통해 서양 철학에 기반을 둔 이런 통념들을 비판한다. 동양고전에 나오는 명언들을 잘 살펴보면 반대되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있다. 대표적으로 주역에 나오는 “역이불역(易而不而) 불역이대역(不易而大易)”이란 문구가 있다. 같은 문구를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바로 그 변하지 않는 것이 참다운 역이다.”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변하지 않는 것도 크게 보면 변한다.”


보통 진리라는 것은  가지 상반되는 성질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같다. 그리고 그게 진리가 역설인 이유 같.      




다음으로는 ‘관계가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인간관계는 사회의 본질이라고 한다. 맹자가 강조한 ‘의(義)’가 바로 ‘수오지심'인데 이는 부끄러움을 말한다. 그런데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관계, 즉 만남이 지속될 때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학교 다닐 때 같이 운동하던 진짜 정열적으로 열심히 한 선배들 중에 아직까지 운동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지금까지 운동하고 있는 이들은 앞에 나서지 않았지만 묵묵히 일하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양심적인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올바르게 나아가게 하는 힘은 부끄러움에서 나오고, 부끄러움이 곧 양심이다. 양심은 자기 혼자 독립적으로 자생하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동정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동정(同情)'의 한자 뜻은 ‘함께 하는 정’이다. 친구가 비를 맞고 가고 있을 때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우산을 접고 함께 비를 맞고 가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하지만 친구와 함께 비를 맞으면 덜 처량하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마음은 어렴풋이 알 거 같다.


내가 요새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관계 속에서 감정이 나온다는 거다.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느냐 사랑하느냐에 따라 지옥을 맛보기도 하고 천국을 맛보기도 한다. 행복도 관계 속에서 나온다. 나와의 관계, 가족 친구와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가 나의 행복을 좌우한다.


선생님은 ‘관계'가 세계의 본질이며, 세계가 곧 관계라고 한다. 결은 좀 다르지만 작가 채사장도 ‘우리는 언제가 만난다'라는 책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다. 깨달음이란 우리의 관계가 곧 세계라는 걸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최고의 관계는 나를 보다 좋은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관계라고 한다. 가끔 와이프를 통해 이런 면은 참 배워야겠다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애들을 통해서도 아직 내가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독서모임을 통해서도 매번 내가 아직 준비가 많이 부족하구나 느낀다.


선생님이 20년의 감옥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한 힘은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다고 한다. 아직은 나의 작은 깨달음과 공부가 경험화되지 못한 것 같다. 하루하루 정진해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안의 비겁함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