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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Jan 24. 2021

실수는 상황을 오판하는 데서 온다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현대편 - 빌 포셋 외 지음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연합군 전략의 승리가 아니라 행운의 결과인지 모른다. 독일군은 연합군이 노르망디로 상륙할 걸 알고 있었고, 아프리카 전선에서 사막의 여우로 불리던 전차군단의 롬멜 장군을 배치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6월 5일 기상악화로 롬멜은 연합군이 상륙작전을 실행하지 못할 거라고 판단하고 6월 6일 와이프 생일을 위해 독일로 날아갔다. 또한 연합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는 최정예 4개 사단을 투입하려고 했으나 불규칙한 수면습관이 있었던 히틀러가 마침 그때 잠을 자고 있어 투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리 급한 상황에도 독재자를 깨우지 못했던 것이다.


다 읽은 후 느낌은 책 제목이 좀 잘못됐다. 흑역사라기보다는 실수의 역사고, 세계사가 아니라 미국사에 가깝다. 실수가 역사가 된 것은 실수한 이들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권력자이고, 이들의 실수가 여러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세계사가 아니라 미국사가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갔기 때문이거나 저자가 미국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2차 세계대전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결론적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히틀러를 잘 몰랐던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1938년 영국 수상 체임벌린이 독일 히틀러와 맺은 뮌헨협정을 저자는 굴욕적이라고 말한다. 평화를 구걸했지만 결국 전쟁이 일어났으니 오히려 처음부터 강하게 대응하는 게 옳았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직접 겪었던 많은 이들이 전쟁만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상대방이 어떤 자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그게 어디 쉬운가?


1939년과 1940년 프랑스의 실수는 전차와 항공기 때문에 1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전쟁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아르덴 숲으로 독일군이 진격하지 못할 거라고 오판한 것이라고 한다. 이전의 경험만 생각하면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적들이 자신의 바람과 기대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1941년 일본의 가장 큰 실수는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한 것이었다. 책에서는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유리한 조약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미국의 루스벨트는 전쟁을 원했지만 의회나 국민을 설득할 명분이 없었는데 그걸 해결해 준 셈이 되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유럽전선이 정리되기 전에 미국을 공격하는 게 맞았고, 독일이 모스크바 코 앞까지 진격해 승리를 목전에 두었고, 미국을 선제공격해 회복하는 동안에 동남아시아 유전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실수는 현재 상황이나 상대방을 오판하는데서 온다. 오판은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바람 또는 기대하는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수는 이전의 승리 때문에 오기도 한다. 이전의 경험이 득이 되지 못하고 이전의 승리가 상대방을 과소평가하게 되면 독이 된다. 또한 실수는 순전히 몇 개의 불운이 겹쳐서 일어날 수도 있고, 개인의 이기심이나 욕망 때문에 일어날 수도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는 관종기가 있었다고 한다. 평양까지 함락하고 동해안 항구들을 탈취하는 걸로 끝냈다면 중국군이 참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맥아더는 트루먼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국군의 인해전술로 대패하고 원자폭탄을 쓰자고 애걸했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쏠 생각이 없었고 결국 맥아더를 해임시켰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의 전통적 가치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또한 반공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국익 우선이 베트남이나 헝가리 등을 희생시키고 결국엔 더 큰 문제들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프로그램이 지금의 핵위기를 가져왔고, 클린턴 대통령의 ‘새로운 평화 배당금’이 국방력의 약화와 911 사태를 불러왔다고 말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1929년 미국 대공황을 저자는 후버 대통령의 자유방임주의 때문이라고 본다. 후버는 자유시장은 자기 치유력이 있다고 강하게 믿어서 대공황이 악화되는데도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대공황 이전의 개인주의나 자본 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저자는 그리워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수조 원의 정부예산을 선제적으로 투입하는 지금 상황에도 그런지 궁금하다.


1945년 트루먼 행정부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세상에 착한 공산주의자 같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의 투쟁은 전 세계 공산주의와의 싸움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미국의 국익만 중요했고 베트남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안중에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가 끝나고 미국 중심의 팍스 아메리카나가 최근까지 이어져 왔던 게 사실이다. 아마 이 책은 일련의 역사적 실수들을 통해 미국에 훈수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과 하필 이 시점에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적 위기에 처한 지금의 상황들을 보면 팍스 아메리카나가 오래가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바람을 현실에 투영하면 오판하게 된다. 거기에 몇 가지 우연들이 겹치면 큰 실수가 된다. 전략을 짤 때는 확실한 것만 기초하고, 각 단계별로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최선의 결과들만 각 단계에서 이루어져야 성공할 수 있다면 백전백패다.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전망하면 마음은 편하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면 내가 못 산다. 결론은 비관적 현실에 기초하여 낙관적 미래를 찾는 것인데 어렵다.


- 이 책은 다산북스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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