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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Oct 11. 2021

한국사회 불평등의 핵심

쌀 재난 국가 - 이철승

저자 이철승은 현재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시카고 대학교 종신교수로 2017년까지 근무했다고 한다. 전작인 2019년에 발표한 ‘불평등의 세대’는 386세대가 어떻게 세대 간의 불평등을 야기했는지 밝히는 책이라고 한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2021년 1월에 발표한 이 책은 벼농사를 주로 짓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왜 품앗이 같은 협업체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는지, 코로나 같은 재난에 어떻게 국가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현재 한국사회의 불평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밝힌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인 유학생들은 서로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이사 품앗이를 해서 여러 사람이 짧은 시간에 끝낸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정말 친한 사람들 몇 명이서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씩 나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저자는 이런 협업 체제를 발전시킨 이유를 벼농사 때문이라고 본다. 벼농사는 밀이나 보리와 달리 물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협업이 필수적이다. 거기에 유교의 형님 동생 하는 위계구조가 더해지면서 효율성이 극대화되었다는 것이다.


완전식품에 가까운 쌀에 비해서 밀은 비타민 D가 부족하고 단백질 함유량도 부족해서 육류와 유제품을 함께 섭취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따라서 밀은 느슨하게 분업화된 상품교환경제를 탄생시켰고, 서구의 개인주의는 밀생산에서 비롯되었는 것이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이유도 행복의 기준이 자기 내면에 있지 않고, 긴밀한 이웃 관계 속의 비교에 있기 때문이고, 경쟁이 심한 이유도 공동 생산하지만 결과물은 개별 소유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같이 일했는데 왜 저 집은 더 많이 수확하지’ 같은 차이가 경쟁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생기게 된 원인도 벼농사는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가 안 올 때를 대비해서 저수지 같은 것이 필요하다. 대규모의 저수지를 만들려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데 이런 국가시스템을 운영하거나 이에 편승할 수 있는 운과 능력을 보유한 자들과 아닌 자로 갈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의 핵심으로 저자는 연공제를 들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조의 전투적 경제주의와 연공제가 맞물려 임금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차에 따른 연공제가 실력에 따른 연봉제보다 공정성이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공감하지만 불평등 문제의 주원인인지는 모르겠다. 저자가 말했듯이 연공제 자체가 급속한 경제개발 시대에 기업이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산물이며, 지금 문제가 되는 이유도 기업이 효율성이나 비용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기업이나 사장들이 컨트롤하기 쉽고, 비용절감을 위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기 때문 아닐까?


청년 실업 문제는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는 감소하고,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는 증가하는 노동의 이중화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이것도 비용 감소를 위해 기업들이 그렇게 유도하는 게 아닌가?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벼농사 체제에서 출발한 협업 네트워크가 재난을 국가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그 산물로 나타난 연공제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한국 자본주의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해치고 있으니 연공제를 쳘폐해야 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다.


저자는 ‘구조를 탈출할 수 없다면,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라고 말하며 모든 조직의 의사결정기구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다루었던 주제에 비해서는 약하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복지를 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복지가 약하기 때문에 보험이나 부동산에 집착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 보편적 복지를 하기 어려워진다는 주장은 새로웠다.


결론적으로 안정적인 직업과 소득이 보장되면 알아서 연애하고, 집 장만하고, 아이를 낳을 거라고 말한다.


벼농사로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협업체제를 설명한 점은 좋았으나, 불평등의 원인으로 연공제를 꼽은 점은 공정성이나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수긍이 되나, 기업들이 자신들의 비용 감소를 위해 불평등을 조장한 측면을 보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동산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도 공감한다.


내 생각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얼마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복지국가를 원하느냐인데, 남 잘되는 꼴 못 보면 어렵다. 또한 기업처럼 효율성과 이윤만 따지면 이룰 수 없다.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벼농사 체제의 효율적인 협업이 동시에 경쟁과 질시를 유발한다는 모순이 이제는 조금씩 바뀌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민들은 정부를 감시하고, 정부는 기업을 적절히 견제할 때 조금은 이루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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