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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청년 Oct 04. 2021

자기 삶을 살고 있는가?

2021 제12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이전에 읽었던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최고였다. 작품 하나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특히 대상 수상작인 강화길의 ‘음복'은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듯했다.


11회에도 여성과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12회는 더 강화된 느낌이고, 요새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주류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12회 대상 수상작인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좀 아쉬웠다. 젊고 낭만적이며 음울한 남자 교수와 이쁜 여자 제자 사이에 끼인 평범한 여자의 시선이라는 설정은 식상했다. 남자 교수의 위선을 폭로하고, 여성이 이혼 후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거 같지만 나에겐 설득력이 떨어졌다.


내가 가장 좋았던 작품은 김지연의 ‘사랑하는 일'과 서이제의 ‘0%를 향하여'라는 작품이다.


김지연의 ‘사랑하는 일'은 레즈비언인 딸과 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직설적이면서도 유머스럽게 표현한다. 할 말 다하는 딸의 대사가 시원해서 오히려 아버지의 입장보다도 더 공감되었다.


“가족들은 서로서로 잘 몰라. 너무 잘 알아도 이상하지"라는 대사나 “우리 가족은 서로를 잘 모르는 한에서만 사이가 좋았다"라는 대사에서 현재 가족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딸은 남보다 구성원의 행복을 가장 보호해야 할 집단인 가족이나 국가로부터 왜 가장 방해를 받아야 하는지 되묻는다. 그 이유가 '자기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말할 땐 뼈아팠다.


부모의 입장에선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간섭하고, 고치려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이데올로기는 강력하다. 하지만 비난하면 안 된다. 비난은 상처가 된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가족은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꼽고, 후회하고를 반복한다.


작가의 말에서 “나는 형식이 진심에 우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의도나 진심이라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있어 자신의 욕망이나 진실을 숨기는 도구처럼 사용된다는 점에서 맞는 말이다.


서이제의 ‘0%를 향하여'는 독립 영화판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다. 영화감독 지망생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글을 쓰지 못하고, 알바를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절망보다는 ‘이런 사람 좀 있으면 어때’하는 위로를 주는 느낌이었다.


“윤성호 씨는 요즘 아무것도 안 하는데, 계속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 이런 표현은 기가 막혔다. 서이제는 상반된 상황 속에서 진실을 드러내는 재주가 있다. “모순적 이게도,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를 하면 안 되었다.” 라던가 “너무 많은 정체성이 있어서 정체성이 없어"라는 표현들이 그렇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주인공 요조처럼 우리는 많은 역할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


“돈을 벌 때, 나는 종종 내 노동력을 파는 게 아니라 내 시간을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은 이혁진의 ‘누운 배'라는 소설에 나온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라는 문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인식은 내 직장생활을 되돌아보게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찾아갈 수도 있는 거야.” 이런 대사는 이유나 능력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단 시작하고 진행하면서 찾을 수도 있다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아닌가 싶었다.


한마디로 돈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연가이며, 정답 없는 인생에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다짐 같아서 좋았다.


다른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언어장애가 있는 인물의 대사체가 낯설었던 김멜라의 ‘나뭇잎이 마르고', 남자애들의 게임을 통해 드러나는 뿌리 깊은 여성 혐오가 충격적이었던 박서련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나는 내 삶을 살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되묻게 한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은 읽을 때마다 신선한 충격과 감동이 있어 꼭 챙겨 볼 만하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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