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좋은 일 - 정혜윤
“지옥은 내가 간다”
허클베리 핀이 배신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허클베리 핀에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인생에서 뭔가를 선택해야 할 때마다 ‘더 힘든 쪽'을 선택해 버리고는 이 말을 되뇌인다고 한다. 작가 정혜윤은 이 문구를 읽고 책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책 읽기는 교양이나 지식이 아니라 삶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준비라고 말한다. 책 읽기는 그래야만 삶을 위한 무기가 된다고 말한다. 나도 작가처럼 그 말을 되뇌어보지만 공허하다. 그동안 쉬운 길만 찾아가려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책에서 읽은 것을 현실에서도 만들어보려고 시도해야 하고,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살아내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감동과 깨달음을 한순간의 일로 만들지 않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기만 하면 그래서 공허한 것이다. 반성하게 만든다.
안다는 것은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라 말한다. 무엇에 복종하고 무엇에 반항해야 할지 늘 헷갈리는 이유는 구별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안다는 것은 무엇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구별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잘 모르는 것과 같다.
변화라는 것은 그동안 잘못 봤고, 잘못 말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알아야 변화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변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절망한다. 나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어. 역부족이야 하면서.
그래서 희망이 필요하다. 희망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큰 고통을 안고서도 힘을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희망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마치 땅 위에 길과 같은 것이라,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이 되어버린 것이다라는 루쉰의 말을 전한다.
변화는 그만큼 힘든 것 같다. 그만큼 오래 걸리는 것 같다. 혼자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인간은 희망을 만들어 내고, 안될 줄 알면서도 힘을 내는 것이며, 다른 사람과 같이 계속해서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작가 역시 자기가 한 모든 좋은 일은 누군가와 함께한 결과물이며, 자기가 전보다 나아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정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내 시간과 삶, 운명을 누군가와는 반드시 나눠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연대 아닐까. 인간은 연대할 수밖에 없고, 연대해야 희망도 가질 수 있고, 변화도 이끌어 내는 게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면, 지켜야 할 것도 없는 법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족? 행복? 깨달음? 딱 집어 말하기 쉽지 않다. 그동안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증거다.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을 맞춰가면서 자신을 창조한다고 말한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과 가치가 없다면 상황만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난 원칙이나 가치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차례차례 다 버리고도 내게 남게 되는 것. 내게 그것은 무엇인가?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 내게 있는가?라고 묻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별게 없다. 속물만 남아 있을 뿐이다. 짜증날 정도다. 그래서 나 자신을 직시할수록 현기증이 나며, 나에 관한 진실을 내 입으로 내게 말한다면, 내가 입을 피해가 크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자신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게 진짜 용기다.
하지만 인생에 거창한 의미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가볍게 웃게 만드는 것이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말한다. 많이 동감하고 위로가 됐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무얼까? 사랑하는 사람과 많은 추억을, 이야기를 만드는 걸까? 삶을 가볍게 웃게 만드는 것은 무얼까? 삶은 힘들어도 그 사람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걸까?
우리는 뭔가를 잃어야 그것이 소중했음을 알고, 그래서 모든 순간은 소중하다라고 말한다. 잃고 난 다음에 소중함을 아는 것은 소용없다. 그래서 순간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인간은 유한한 존재지만 무한한 것을 품을 수 있는 존재라고 작가가 말한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와의 이야기가 좋게 기억될 수 있을 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