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 후안 엔리케스
무엇이 옳은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있어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저자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데, 현실은 가장 힘없는 시민에게 최소한의 자원도 제공하지 않고 있고, 그렇다면 ‘미래세대는 지금 사회를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사회라 평가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그 정도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돈이 없어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뉴스가 반복되는데도 우리는 도덕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경우에든 사회의 다수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만큼은 명백하게 옳은 거라고 저자는 말하는 데 여러분도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난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옳음과 그름은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이지 진실 또는 진리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보통 이것이 진실이고 진리이기 때문에 옳다고 착각한다.
“진실은 언제나 변한다. 과학처럼 끊임없이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이다. 오늘의 진리는 내일은 죽은 이론이 된다. 우리는 탈진실의 세상에 살고 있다.”
저자의 이런 진단은 정확해 보인다. 변하지 않는 진실이나 진리가 없기 때문에 그 자리를 느낌을 기반으로 한 거짓말들이 채우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팩트와 증거, 과학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믿음에 도전장을 내밀지 않을 때에만 살아남고, 그러다 보니 느낌을 기반으로 하는 거짓말들이 퍼져 나간다.”
느낌을 기반으로 하는 거짓말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큰 거짓말일 때이다.
“대중들은 오히려 사소한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큰 거짓말을 지어내겠다는 생각이 대중의 머릿속에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진실을 그토록 거대하게 왜곡할 정도로 뻔뻔스러울 거라고 도저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큰 거짓말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분노와 공포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분노와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는 sns와 인터넷 게시글, 뉴스에 의지한다. 특정 대상을 비난할수록 조회수와 좋아요 수가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굳이 상대에 대한 비난 강도를 낮출 이유는 전혀 없다. 분노는 트래픽을 높이고 수익은 그와 비례하여 늘어난다.”
저자는 또 묻는다. 이런 탈진실의 세상, 이런 진공 상태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우리 모두는 의미를 찾고, 의미를 원한다.”
“인간은 아주 작은 원자에 불과하고,
우주는 광대하고 텅 비어 있으며
목적이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두려움을 느낀다.”
인간은 의미를 찾지만, 세상에는 의미나 목적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런 두려움은 근본주의가 판을 치기 딱 좋은 세상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세상은 새로운 근본주의의 주요 파도들이 밀어닥치기에 적합하다.
모든 사람이 온갖 관계망 속에서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이런 근본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대처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 같다. 저자의 해답이 너무 평범한가? 항상 해답은 내 주위에, 평범한 것에 있다. 엄청나게 신박해 보이는 것은 사기일 확률이 높다.
겸손은 내가 잘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 같다.
“오늘날 여러 윤리적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절대주의를 버리고 하나의 개념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겸손 말이다. 모든 종교와 윤리, 영적 전통의 중심에는 연민의 원칙이 있다.”
겸손은 특히 정치가나 권력가, 사업가 같은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 같다. 선택할 때 최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 기준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겸손하면 우유부단 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겸손하지 못한 정치가나 권력자를 선택한 피해는 시민이 받는다.
겸손은 ‘내 옳음이 모두 틀릴 수 있다.’라고 생각할 때 나올 수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좋은 놈들도 때로는 나쁜 놈들만큼이나 당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저자는 말하는 것 같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좋은놈이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뒤통수 맞는 일은 흔하다.
무엇이 옳은가? 내가 어디에 어떤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다르다. 혹은 내가 속한 사회나 문화가 어떤 도덕이나 윤리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내 가치나 도덕이나 윤리가 틀릴 수 있다는 겸손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겸손은 완성된 어떤 상태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틀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