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 김상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윤동주 시의 제목이다.
김상욱 교수는 하늘과 바람과 별은 이 세상이고,
시는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인간과 시는 비슷한 점이 많다.
상징적이고 비유적이고 몽환적이고 압축적이다.
행간과 맥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를 이 세상에 빗대어
물리학자는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지
이 책은 설명해 준다.
물리라는 것이 곧 사물의 이치라는 뜻이고,
과거에 종교나 신화가 했던 역할을
현재는 과학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작가의 글이 좋은 것은
의미 없는 세상에
우연이라는 의미와 감동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우연과 확률에 의해 움직인다.
이 책을 읽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1.
이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졌다.
나와 같은 생명들 모두 원자들의 집합이고,
나를 이루던 원자들은 죽으면 흩어지지만
다른 집합의 부분으로 ‘영원불멸’하다고 말한다.
만약 원자가 힌두교에서 말하는 ‘아트만’이라면
내가 곧 우주라는 ‘범아일여’가 이해가 된다.
나를 이루던 원자가 곧 우주를 이루는 원자와 같기 때문이다.
2.
물리학자가 보는 생명은
유지와 복제, 이 둘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하며
번식을 통해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리학자가 보는 죽음은
정의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원자의 집단이 갖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죽음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가 보기에 죽음이 자연스러운 상태고 생명이 특별한 상태다.
“에너지는 변환될 뿐 창조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즉, 이 세상 모든 것은
살거나 죽는 것이 아니라
변화할 뿐이다.
불교의 윤회설과도 비슷하다.
원자의 입장에선 그렇다는 것이다.
3.
물리학자에게 사랑이란?
무한과 비슷하다.
무한은 숫자가 아니라 과정이다.
따라서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말한다.
사랑은 우연이 누적되어 시작하고
결혼은 우연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우주에는 의미가 없다.
필연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의미는 우연에서 나온다.”
이 의미 없는 세상에서
정말 놀라운 확률을 뚫고
우연이 누적되어 사랑을 시작했다.
이 우연이야말로 의미고 감동이라는 것이다.
“우연이 필연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동전을 백만 개쯤 던지면
대략 50퍼센트는 앞면,
나머지 50퍼센트는 뒷면이 나올 것이다.
이것은 필연이다.
이 필연의 이유는 확률이다.
이렇게 나올 확률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결국 이 세상은 우연과 확률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게 양자역학이 말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4.
물리학에 의하면 모든 것은 우연이다.
“우주에 의도나 목적이 없다”
다만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뿐이다.
“이런 필연적 과정을 ‘비가역적 과정’,
즉 거꾸로 돌이킬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개개의 변이는 우연히 일어나며
복구되기도 하지만,
변이가 누적되면
결국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이것을 진화라 부른다.”
“진화에는 방향이나 목적이 없다.
우연이 쌓여 필연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우주에 의도나 목적이 없는 것처럼
진화에도 방향이나 목적이 없다.
하지만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됐다.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되는 이유는 확률 때문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나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아무 이유나 의미 없음을 깨닫게 되면
허무주의나 쾌락주의에 빠지기 쉽다.
룰루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그랬고,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그랬다.
김상욱 교수는 필연뿐인 이 우주에서
우리가 존재하게 된 우연이
바로 의미이고 감동이라고 역설한다.
우리는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된 존재다.